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신상사 (문단 편집) === 신군부 집권기 === 1980년 신군부가 집권하자 조직폭력배에게 철퇴를 가했다. 당시 신상사파 부두목 구달웅은 군사재판에서 사형 구형을 받고 1심에서 15년형을 받았다. 이에 신상사가 그를 구명하기 위해 당대 [[제5공화국]] 권력의 핵심이었던 [[노태우]]를 직접 만났다. 결국 노태우가 박재명 육군본부 법무감에게 써준 의견서 덕분에 구달웅의 형량은 6년 4개월로 감형되었다.[* 교도소에 수감된 구달웅은 출소하면 자신에게 사형을 구형한 담당 검사를 살해하겠다고 다짐했고 실제로 그 검사에게 살인을 예고하는 편지를 보냈다. 하지만 교도소 종교행사에서 만난 [[천주교]] 사제로부터 원수를 용서하란 이야기를 듣고 마음을 고쳐먹었다고 한다.] 1980년 말 [[삼청교육대]]에 끌려간 신상사는 2개월 동안 훈련을 받았다. 일부 그를 알아보아 위로의 말을 건네는 지휘관과 조교들이 있었지만 일체의 차별 대우는 없었고, 새파랗게 젊은 교육생들과 악명 높은 봉 체조 등 모든 훈련을 동등하게 받았다. 신상사는 이때의 경험을 지옥 같은 2개월이라고 묘사하며 수치감을 동반한 심신의 피폐함을 경험했다고 한다. 굳이 특혜를 꼽자면 모든 훈련이 끝난 뒤 대대장이 따로 불러 자신에게 라면 하나를 대접한 것이었다. 이후 신상사는 이태원 [[미합중국 육군]] [[제8군]] 사령부에서 다른 조직들이 큰 피해를 본 것과는 달리 신상사파는 유흥업소 갈취 등 서민 대상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고 정권 인맥을 잘 이용해 별 피해가 없었다고 밝혔다. 어느 정도였냐면 당시 검경에서 흉악범죄를 저지르고 수배를 피해 잠적한 조폭들을 자수시키기 위해 신상사를 찾아갔다고 전해진다.[* 그도 그럴 것이 신상사의 말 한마디에 움직이는 건달, 그것도 어중이 따중이도 아니고 두목급만도 그 숫자가 얼마인지를 생각하면 당연한 수순이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