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신생당 (문단 편집) === 창당과 38년만에 성공한 정권 교체 === 1993년, [[리크루트 사건]]으로 치명적인 내상을 입은 자민당은 크게 흔들리고 있었다. 이미 일본의 고도 성장기가 끝나고 [[잃어버린 10년/일본|장기 경제 침체]]가 시작되면서 [[미야자와 기이치]] 총리가 대규모 공적 자금 투입을 시도했지만, 극도로 보수적인 정계와 경제계의 반대로 실패하고 크게 휘청이고 있었는데 리크루트 사건까지 터지면서 자민당 정권이 [[레임덕]] 상황에 봉착하고 만 것. 이 상황에서 자민당 내에서 개혁파 역할을 맡았던 [[하타 쓰토무]] 전 대장대신과 [[오자와 이치로]] 전 간사장이 손을 잡고 개혁포럼21 계파 소속 36명 중의원들과 손잡고 탈당을 선택한다. 내각불신임결의를 당한 미야자와 기이치 총리가 일본국 헌법 제69조에 따라 중의원을 해산시킨 후 치러진 제40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정치 개혁을 외치며 의석수를 55석으로 불리며 선전했다. 비슷한 시기 신생당과 마찬가지로 정치 개혁을 명분으로 자민당을 탈당하고 창당한 [[호소카와 모리히로]]의 [[일본신당]], [[하토야마 유키오]]의 [[신당 사키가케]]까지 선전하면서 자민당이 과반 의석을 상실하는 [[55년 체제]] 성립 이후 첫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자민당은 이 신당들과 연정을 구성하여 정권을 유지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는데, 신생당 간사장이었던 '''오자와 이치로'''가 이 발상을 뒤집어 국민적으로 인지도가 높았던 [[호소카와 모리히로]]를 신임 총리로 세우는 것을 골자로 신생당, 일본신당, 신당 사키가케와 함께 [[일본사회당(1945년)|사회당]], 민사당, 사회민주연합, 민주개혁연합, [[공명당]]까지 자민당도 그렇다고 공산당도 아닌 8개 정당을 합쳐 전후 최초의 비자민-비공산 연립내각을 성사시키며 무려 '''38년만에 정권 교체'''에 성공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