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신선우 (문단 편집) === [[창원 LG 세이커스]] === [[파일:신선우 LG 감독 시구.jpg]] [[파일:신선우 LG 감독.jpg]]] 2005-2006 시즌 이적 이후 3년간 연봉 3억이라는 당시 최고 대우와 함께 [[LG스포츠]]의 형제 야구단인 [[LG 트윈스]]에서 시구를 하면서 새로운 도전을 하게 되었다. 창원 LG 감독에 새로 부임한 신선우는 현대-KCC의 프랜차이즈였던 [[유도훈]] 수석코치, [[이지승]] 코치와 함께 동행하면서 새로운 도전을 하게 된다. 그러나 [[황성인]]이 문제가 있었는데 가드 라인 보강을 검토하면서 [[신기성]]을 영입할려고 했으나 구단과의 상의 끝에 높이 보강 차원에서 2002 부산아시안게임 금메달 멤버로 20년만에 한국농구의 아시안게임 우승을 이끌기도 했던 당시 최고의 올어라운드 포워드인 [[현주엽]]을 FA로 영입을 하면서 새 출발을 시도했다. 역시 평가는 우승후보였는데 전임이었던 [[박종천(1960)|박종천]] 감독 시절 가드에 문제가 있는 [[황성인]] 선수가 있지만 기존의 [[조우현]] 선수가 있는 상황에서 아주 높은 높이는 아니지만 포인트포워드라는 별명을 얻은 [[현주엽]] 선수를 [[신기성]] 선수를 대신해서 영입한 것도 바로 신산의 계산 중 하나다. 미디어는 신선우와 현주엽의 만남만으로 우승후보로 띄웠다. 외국인도 드미트리우스 알렉산더라는 최고의 올어라운드 빅맨을 통해 높이를 높이는 데 성공하게 된다. 남은 관건은 바로 신 감독이 현대-KCC 시절부터 강조한 "조화"였다. 그러나, 새 팀에서의 첫 번째 결과는 썩 좋지 않았다. 알렉산더의 반대의 헥터 로메로와 로먼 롤란 사이의 외국인 문제가 있었고 현주엽 또한 토털 농구 대신 추일승 시절과 그 이전의 약팀 시절 에이스 모드만 고집하면서 공수조화를 찾지 못했다. 그로 인해 결과는 정규리그 8위라는 부진과 함께 6강 PO에서 탈락하면서 최고 명장으로서의 체면을 구기고 말았다.[* 사실 신 감독은 현대-KCC 시절부터 매번 인터뷰 때 조화를 언급했는데 개성강한 스타군단인 LG에는 이런 토털 바스켓볼의 구성을 하기에는 현주엽과 황성인의 공존문제가 컸는데 그나마 드미트리우스 알렉산더라는 최장신 외국인의 높이와 득점력 덕분에 그나마 6강 경쟁을 할 수 있었으나 그것만으로는 한계였다.] 그것도 자신의 친정으로 허재가 부임한 전주 KCC 이지스와 김동광 감독의 안양 KT&G 카이츠 그리고 김진 감독의 대구 오리온스와 공방율 경쟁까지 갔으나 홈 최종전인 KCC전에 패하면서 LG는 자신의 후배였던 전임 감독인 박종천 시절을 포함해서 2년 연속 플레이오프 탈락의 비극을 당하게 된다. 추가로 전임 감독이었던 김태환 감독의 서울 SK 나이츠도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사실 05-06 시즌은 각 팀간의 전력차이가 크지 않았는데[* 최하위 인천 전자랜드가 단 8승 46패로 꼴찌를 거둔 것을 제외하면, 9위 서울 SK 나이츠도 24승 30패를 기록하는 등 모든 팀이 최소 40% 이상 승률을 기록했다. [[안양 KT&G 카이츠|사상 첫 5할 승률 PO 탈락팀]]도 이 때 나온 것이다. 1위 울산 모비스도 성적이 36승 18패에 불과해 당시 1위팀 중 가장 낮은 성적으로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그나마 서울 SK는 부상 악재라는 면죄부가 있었던 반면, LG는 초호화 멤버를 갖추고도 시즌 내내 조직력 문제로 삐걱거리며 끝내 팬들을 실망시켰다.] 당시 4강 후보였던 LG와 SK는 그야말로 농구팬들에게는 충격과 같았다. 이로인해 신산이라 부르는 신선우는 KBL 최고 명장의 자존심에 다시한번 상처를 입게 된다. 이 과정에서 현주엽은 신선우의 계산 대신 나홀로 [[매직 존슨]] 모드로 가끔씩은 팀워크와 반대의 농구를 하면서 비판을 받게 된다. KTF 매직윙스 시절만 보면 추일승 감독의 경우 자신을 맞추도록 하는게 아니라 살리도록 하는데 정작 신선우는 그것을 하지 못했다. 절치부심한 신선우는 LG 세이커스의 창단 10주년이었던 2006-2007 시즌을 앞두고 LG의 창단 첫 KBL 통합우승을 위해 LG라는 이름을 제외하고 팀 자체를 대폭 개편하게 된다. 시즌 개막 전에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전자랜드]]와 시간차 트레이드를 단행하면서 대폭적으로 팀 개편을 신호탄을 쏘아올렸다. LG는 당시 2002 부산아시안게임 금메달 시절 막내였던 ~~[[방성윤]]~~을 보내는 3대3 트레이드의 핵심으로 KTF 소속이었던 99-00 SK 나이츠의 창단 첫 플레이오프 우승과 2002 부산아시안게임 금메달 멤버 중 하나인 슈터 [[조상현]]을 FA가 되자 즉시 영입했다. 추가로, 그를 영입하는 과정에서 알짜 선수들을 보상으로 내주지 않기 위해 벌인 일종의 계산같은 거래였다. 먼저 1999-2000 SK 나이츠 시절 자신에게 아픔을 주었던 2002 부산 아시안게임 금메달 시절 대표팀 슈터였던 [[조상현]]을 영입하기 전인 4월 30일, LG는 현금 3억원을 받으면서 [[조우현]], 정종선, [[정선규]]를 전자랜드로 보낸 후 6월 1일에 마침내 FA 최대어 슈터였던 [[조상현]]을 영입했다. 문제는 LG가 이런 식으로 사전에 로스터를 대거 정리하는 바람에 KTF가 지명할만한 선수가 거의 남아있지 않았고 어쩔 수 없이 [[추일승]]의 KTF는 울며겨자먹기 식으로 보상선수로 전년도 평균득점 0.9의 [[임영훈]]을 지명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6월 13일에는 다시 전자랜드와 트레이드를 하여 [[황성인]]과 3억원을 주고 [[박지현(1979)|박지현]], [[박규현(농구)|박규현]], [[박훈근]], [[임효성]]을 데려오게 된다. 결과적으로 시간차를 두고 전자랜드와 4:4 트레이드를 한 것이다.[* [[황성인]]+[[조우현]]+정종선+[[정선규]]↔박지현+박규현+박훈근+임효성.] 이 트레이드는 신선우만이 할 수 있는 역시 신산(神算) 다운 극한을 보여준 트레이드로 평가된다.[* 이 트레이드가 논란이 되자 이후 5라운드부터 챔피언 결정전 종료 시까지, 그리고 FA 협상 기간에는 트레이드를 할 수 없게 바뀌었다.][* 참고로 당시 전자랜드의 감독은 신선우와 연세대 동기이기도 했던 [[최희암]]이었다.] 어쨌든 이렇게 트레이드와 FA 영입으로 전력을 보강하고 외국인 선수도 2003-2004 시즌과 2004-2005 시즌 KCC 이지스에서 함께했던 영리한 스코어러 출신인 [[찰스 민렌드]]를 다시 데려오고, [[퍼비스 파스코]]라는 괜찮은 수비형 센터를 데려온 뒤 2년간 성적부진과 함께 KBL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3순위로 경희대 출신 땅꼬마(?) 포인트 가드이자 이해 LG의 창단 첫 신인왕이었던 [[이현민(농구)|이현민]]을 지명하면서 전년도와 다르게 전력을 대폭으로 보강하는데 성공하게 된다. 2006-07 시즌에는 [[현주엽]]-[[조상현]]-[[이현민(농구)|이현민]] 트리오와 [[찰스 민렌드]]의 득점력과 함께 마침내 성적을 내게 된다. 그것도 2위 경쟁을 했던 KTF 매직윙스와의 4강 플레이오프 홈 코트 어드벤티치를 놓고 시즌 막판까지 경쟁하다 최후의 승자가 되었다. 하지만 4강 PO 3차전에서 상대의 거친 수비에 말린 파스코가 심판을 폭행하는 초유의 사태에 휘말리면서 퇴출되었고, 결국 KTF에 골밑 수비를 막아내지 못하면서 자동으로 진출했던 4강 PO에서 그대로 탈락하면서 기대 이하의 1승 3패라는 충격으로 이어지게 되면서 KBL 파이널 진출에 실패하게 되었고, 창단 10주년에 챔피언을 노렸던 창원 LG의 꿈은 순식간에 물거품이 되었다.[* 그런데 LG가 플레이오프에 진출하기 전 [[유도훈]] 수석코치가 도중 KT&G 카이츠에서 감독으로 선임되었고 [[이지승]] 코치가 수석코치를 맡게 되면서 팀을 꾸리게 되었다.] 2007-08 시즌[* 이 시즌에는 [[원주 DB 프로미|동부]]와 [[전주 KCC 이지스|KCC]]의 독주와 리빌딩에 들어간 [[울산 현대모비스 피버스|모비스]]을 제외하면 [[부산 kt 소닉붐|KTF]]와 [[고양 오리온 오리온스|오리온스]]가 초반부터 떨어져 나가는 바람에 전반적으로 승수들이 높은 시즌이었다. 하지만, 정규리그에서 강세를 보였던 전자 라이벌인 [[서울 삼성 썬더스]]를 고르기 위해 6라운드 막판부터 경기를 느슨하게 하는 등 팬들의 비판이 있었다.]에는 29승 25패를 기록하며 간신히 6위로 PO 진출에는 성공했으나 6강 플레이오프에서 전자 라이벌인 [[서울 삼성 썬더스|삼성]]에게 0:2로 패하면서 탈락했다. 그리고 [[창원 LG 세이커스|LG]]는 우승이라는 목표가 어긋나자 KBL 명장인 신산 신선우 감독은 결국 LG와 이별을 선택하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사실 신선우 감독은 12년간 감독생활로 인해 지쳐있었고 구단과의 면담 끝에 재충전을 스스로 원했는데 절대로 경질이나 사퇴가 아닌 계약만료에 따른 퇴임이었다.[* 여기에 같은 계열사 구단인 야구 [[LG 트윈스]]의 감독이었던 [[김재박]] 감독과 함께 형제인 현대의 최전성기를 열었던 감독들이 이적한 팀이 LG인데 모두 우승에 실패하면서 쓸쓸하게 감독직에서 물러났다.][* 당초 LG는 역대 감독 재계약 기준이 최소 KBL 파이널과 KBL 정규리그 우승으로 매우 까다롭다. 시즌 중 자진 사퇴는 단 한번이 없지만 우승을 못하면서 새로운 감독의 무덤으로 등극하게 된다. 그 기준은 [[서울 SK 나이츠]] 이외는 없다. 남은 팀들은 재정이나 명성에서 LG와 SK급은 되지 못한 편이다.] [* 후임 감독은 [[김진(농구인)|김진]]과 [[전창진]] 사이로 예상외의 카드였던 고려대 출신이지만 당시 명지대 감독이었던 온전 대학 출신의 [[강을준]]이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