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신선우 (문단 편집) === [[서울 SK 나이츠]] === [[파일:신선우 SK 감독.jpg]] 잠시 야인으로 지내며 KBL 위원장으로도 활동하던 신선우는 몰락을 거듭하던 KBL의 레알 마드리드라 불리우는 SK 나이츠의 부활을 맡게 된다. 2009-10 시즌 중 연말에 자진 사퇴를 했던 KBL 대표명장인 [[김진(농구인)|김진]] 감독의 후임으로 서울 SK 나이츠 6대 감독으로 예상보다 [[KBL]] 감독으로 일찍 부임을 했다. 하지만, 회의적인 시각도 있었다. 현대-KCC 시절 우승트리오였던 [[이상민(농구)|이상민]]과 [[조성원]] 그리고 [[추승균]]만 아니라 이적생이었던 [[양희승]]과 [[전희철]]과의 마찰이 있었고 LG 시절만 해도 [[현주엽]]과 [[조상현]] 및 [[박지현(1979)|박지현]]과 [[이현민(농구)|이현민]]을 장악하는 데 실패하면서 과거 카리스마형 농구로 인해 전임 [[김진(농구인)|김진]] 감독 시절 자율 속 체계에도 불구하고 부상과 슬럼프가 깊은 SK를 구해낼 지는 반신반의하기도 했다. LG 시절에 함께했던 [[이지승]] 수석코치와 함께 명예회복을 위해 지휘봉을 잡게되었다. 2009년 12월 26일, 신산은 LG 세이커스 감독 시절 이후 무려 1년 8개월만에 복귀전을 치렀다. 그러나, 2009-2010 시즌 중도에 선임이 된 나머지 [[김진(농구인)|전임]] 감독 시절부터 이어진 연패 기록을 그대로 이어가 구단 역대 최다인 12연패를 당했다.[* 실제로 신선우 감독은 그 이전부터 부상병동으로 인해 시한폭탄과 같았던 슈터이자 스코어러였던 ~~[[방성윤]]~~을 기다리기 시작했고 훈련부터 모범을 보였던 [[주희정]]이라는 포인트 가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선수단 자체가 로스터가 두터운 데 비해 부상기사단으로 인해 토털 농구 시도를 해보았지만 바꾸는 데는 실패를 하게 된다.] 외국인 또한 사마키 워크와 조셉 데버트를 모두 교체하면서 조 크래븐호프트와 크리스토퍼 가넷으로 변화를 주었으나 기량미달의 외국인이었고 이로인해 ~~[[방성윤]]~~과 [[김민수(농구)|김민수]]에게 몸싸움과 스크린 등 궂은일을 타임아웃 때 강조하면서 탈출구를 찾을려고 했으나 실패하고 말았다. [[김진(농구인)|전임]] 감독 체제에 적응된 베테랑들인 [[문경은]]과 [[주희정]]도 그 이전 시절에 비해 달라진 팀 분위기 적응에 끝내 실패를 하면서 최악의 시즌으로 마무리하게 된다. 결과론으로 연말에 충격적인 사임을 선택했던 [[김진(농구인)|김진]] 감독의 사퇴는 큰 의미가 없게 되었다. [[파일:SK 신선우 감독 문경은 선수 은퇴식 회견.jpg]] 이미 SK 구단은 SK 프런트에서 이미 영구결번과 함께 차기 감독으로 세우기 위해 준비중이었던 [[문경은]]은 2009-2010 시즌 이후 선수로서 은퇴를 한 이후 SK D 리그 코치로 준비하면서 신선우 감독은 그나마 있었던 최고 슈터 하나마저 잃게 된다. 이 여부와는 별개로 신선우 감독은 마치 조성원처럼 유종의 미를 원했던 문경은을 배려했다. 문경은은 이미 은퇴 이후 인터뷰에서 밝혔는데 출전시간은 오히려 김진 감독 시절보다 더 많은 기용을 했다. [* 알고보면 SK 프런트의 계산 중 하나로도 볼 수 있다. 이미 SK는 김태환과 김진의 후임으로 유재학을 원했는데 이미 모비스는 그 움직임을 눈치채고 장기계약으로 못가게 했다. 유재학은 SK 빅스의 사령탑이었지만 향후 전자랜드 블랙슬래머로 인수되며 당시 빅스 직원들은 나이츠로 이전했다.] 하지만, 그 자리에는 취약점인 슈팅 가드에서 마치 [[조성원]]으로 생각했던 [[울산 현대모비스 피버스|모비스 피버스]]에서 통합우승을 했던 스윙맨인 브라이언 킴이라 불렸던 테크니션 가드인 [[김효범]]을 SK 레전드였던 [[문경은]]의 은퇴와 SK 간판이었던 ~~[[방성윤]]~~의 부상문제로 인해 FA로 영입하게 되었다. 2010-2011 시즌을 앞두고 [[주희정]], [[김효범]], ~~[[방성윤]]~~, [[김민수(농구)|김민수]] 등 국가대표팀을 구성할 만한 호화멤버들이 여전하면서 시즌 전 전망에선 늘 우승후보로 꼽힌다. 외국인도 [[테런스 레더]]와 [[마퀸 챈들러]]라는 검증을 찾으면서 이 정도면 재건이 아닌 우승도전이었다. [* SK 나이츠의 별명이 한 때는 KBL의 레알 마드리드였다. 화려한 스타에 비해 수비와 집중력이 부족한 흑역사도 있다.] 초반엔 반짝 상승세를 타는 것도 최근 2~3년간의 패턴이 반복되었지만, 시즌 중반만 되면 뒷걸음질을 쳤고, 부상 후유증에 걸린 방성윤은 시즌 중반 코트에 복귀했지만 특급 선수에서 평범한 선수로 후퇴했다. 실제로 3 라운드에서 4 라운드까지 5할 승률에 6강 플레이오프 권을 유지했으나 끝내 누적된 부상과 체력문제를 극복하지 못하게 되며 재임기간 동안 2년 연속으로 21승 이상을 거두지 못하더니 2년 연속 7위의 성적과 함께 굴욕을 피하지 못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서 SK 나이츠는 KBL 통합우승 출신 2명의 감독을 연속으로 선임하고도서도 시련사만 반복하는 암흑기로 또 이어지게 되었고, 결국 이렇다 할 전력 향상을 보여주지 못한 채 20승 34패 정규리그 7위를 기록하며 차기 시즌 외국인 영입을 위해 출장 중 구단으로 부터 경질 포함 1년 총감독직을 주면서 불의의 퇴진을 당했다.[* 하지만 문경은은 10-11 시즌 중 감독대행으로 시험을 치르게 되었고 11-12 시즌 19승 9위라는 성적부진에도 불구하고 애초부터 프런트에서 감독을 만들려고 했고 1년 뒤 정식 감독으로 승진되었다.][* 이 해 [[SK스포츠]]단은 야구에서도 [[SK 와이번스]] 명장인 [[김성근]] 감독도 프런트와의 간극 끝에 해임되는 초사태가 나오게 된다.][* SK의 전력 자체는 어느 감독이 맡아도 매 시즌 6강이 가능한 전력으로 화려한 이름값을 가진 선수들은 많았지만 그걸로 끝이었고, 신선우 자신도 이를 팀으로서 재조합하는 데는 끝내 실패했다. 한 때, 프로농구 정규시즌 최다승에 빛나는 감독이었지만 SK에서의 신선우는 전성기였던 현대-KCC 시절과 선전했던 LG 시절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황금의 드래프트라는 2010 드래프트에서 [[변기훈]]과 2011 드래프트에서 [[김선형]]을 뽑았다는 점이 있었지만 알고보면 [[문경은]]을 위한 큰 그림이라는게 문제였다. 어쩌면 이 LG와 SK에서의 잇따른 [[실패]] 때문에 신선우 감독을 보는 시선이 [[과거]]보다는 좀 더 냉정해졌는지도 모른다.][* 감독의 무덤이라는 오명답게 최인선 이후 계약만료로 퇴임한 감독은 아직까지는 없다. 오히려 최인선 감독 또한 연장계약을 놓고 구단과의 차이 끝에 스스로 사임했다. 김태환 감독은 경질과 함께 총감독이라는 굴욕을 당했고 김진 감독은 자신은 슬럼프라며 SK 스포츠단의 인사단행이 있었지만 자진 사퇴 형식을 빌리면서 모두를 아프게 했다. 또 하나의 감독의 무덤은 KBL 10개 구단의 지원을 보면 다른팀보다 한 때 몸담았던 LG였다.] 사실 신선우 감독은 10-11 시즌 정규리그 종료 이후 차기 시즌 외국인 영입을 위해 해외출장을 갔는데 돌아온 것은 뒤통수였다. 마치 [[김성근]]을 뒤통수 친 [[SK스포츠]]단의 흑역사와 SK 나이츠 프런트의 계산에 자신이 부메랑을 당한 격이었다. 09-10 시즌 16승과 10-11 시즌 20승 그리고 [[문경은]]이 감독대행이 된 11-12 시즌 19승과 9위에도 불구하고 SK 프런트의 [[문경은]] 감독 만들기에 희생양이 되고 말았다. 대학과 실업 선수시절과 프로 감독 시절 평생의 라이벌이었지만 알고보면 대표팀의 동료이자 동갑이었던 [[안준호]] 감독도 삼성에서 퇴진한 뒤 자신으로 인해 신산이 물러나게 되었던 점에 씁쓸함을 보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