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신앙주의 (문단 편집) == 사례 == [[파스칼의 내기]]로 유명한 블레즈 파스칼(Blaise Pascal)이 자신의 저작에서 신앙주의적인 주장을 한 사례가 있다. [[독일]]의 [[시인(문학)|시인]]이자 사상가였던 요한 게오르크 하만(J.G.Hamann)이 신앙주의의 범주에 포함될 수 있다는 의견이 있다. 그는 당대에 유행하던 [[계몽주의]]와 [[합리주의]]를 거부하고 개인 내적인 신앙의 확신을 통해서만 종교가 이해될 수 있다고 보았다.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과 함께 [[철학]]과 신학 양쪽에 공헌한 인물로 꼽히는 [[쇠렌 키르케고르]]는 매우 엄격하게 신앙주의를 따랐던 인물로 꼽히고 있다. 그는 "[[신뢰의 도약|신앙을 향한 이성의 거대한 도약]]" 이라는 표현을 처음으로 제안한 인물이기도 하다. 즉, 이성의 영역에서 아무리 애를 써 봐야 신앙으로 이동해갈 수 없고, 이성을 초월하는 다른 무엇인가의 도움을 받아서, 내지는 이성을 극복하는 용기를 통해서 신앙의 영역으로 옮겨갈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1세대 [[심리학]]자로 유명한 윌리엄 제임스(William James)는 자신의 저서 《믿으려는 의지》(Will to Believe)에서 신앙주의적 도약을 강조했다. 이 때문에 그는 동료 학자들에게 많은 공격을 받기도 했으며, 일례로 [[1907년]]에는 미시건 대학교의 한 교수가 제임스를 비판하는 《의심하려는 의지》(Will to Doubt)라는 책을 펴내기도 했다. 한편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역시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사석에서나 강의 중에서는 언뜻언뜻 신앙주의의 차원에서 종교의 가치를 평가했다는 후학들의 후문이 전해지고 있다. 현대 들어 가장 흥미로운 신앙주의의 사례는 바로 항목 상단에도 언급된 [[마틴 가드너]](Martin Gardener)일 것이다. 그의 이력은 [[마이클 패러데이]]의 이력만큼이나 매우 독특하다. 그는 한편으로는 '''[[과학적 회의주의]]자'''로서 CSICOP 회원이며, 소위 [[흉가|귀신들린 집(haunted house)]]에서 뜬눈으로 밤을 지새기도 하고, 교양지 《사이언스 픽션 매거진》에 정기적으로 [[수학]] 퍼즐을 연재하기도 했던 인물이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그와 동시에 [[유신론]]자다.'''(…) 이 때문에 가드너 본인 및 그를 여러 모로 칭찬해 마지않는 동료 회의주의자 [[마이클 셔머]] 등이 상당한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그러나 가드너의 신관(神觀)은 일반적인 제도권 [[개신교]]와는 약간 결이 다른 것으로 보이며, 셔머의 언급을 인용하면, Credo quia consolans 개념의 한 종류에 가깝다고 구분할 수 있다. [[장 칼뱅|칼뱅주의]] 계통의 유신론자이자 분석철학자인 [[알빈 플란팅가]](Alvin Plantinga)는 칼뱅주의 [[장로회]] 변증학에 신앙주의를 이끌고 들어간 인물로 꼽히며, 이로 인해 코넬리우스 반 틸(Cornelius van Til)과 같은 칼뱅주의 변증학에서도 그에 대한 일련의 반응이 나오기도 했다. 국내에서 가장 유명한 사례는 한때 세속적 인본주의(secular humanism) 계통의 [[무신론자]]였다가 [[개신교]]인으로 전향하여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이어령]]을 예로 들 수 있겠다. 그의 저서 《지성에서 영성으로》는 그 제목에서부터 신앙주의의 냄새가 진하게 풍기고 있음을 알 수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