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신앙주의 (문단 편집) === 비종교적 비판 === 신앙주의는 [[합리주의]]와 상극이다. 이 때문에 [[무신론]]이나 신(新)합리주의 및 과학주의 계통의 무신론자들이 굉장히 싫어하는 논증이기도 하다. 사실 신앙주의는 유신론이 과거와 달리 무신론에 대해 적극적으로 신 존재증명 같은 문제에 대해 [[포기하면 편해|이성과 논리의 차원으로 도전하는 것을 자제하기 시작했다]]는 의미이기도 해서, 대개의 경우 무신론자들이 유신론자들을 설득시키지도 못하고 그 역도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 하지만 신앙주의의 가장 큰 약점은 이성의 잣대를 회피했을 때 직면하게 되는 [[패러디 종교]]에 대한 판단의 문제로, [[날아다니는 스파게티 괴물]]과 같은 가상의 이야기는 실제로 신앙주의의 맹점을 잘 공격할 수 있다. 인지철학자 [[대니얼 데닛]](Daniel Dennett)은 "신앙을 향한 이성의 도약" 이라는 신앙주의적 표현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일갈을 날린 바 있는데, 즉 '''이성의 힘만으로 문제의 해결이 가능한 평소 같았어도 이성을 뛰어넘는 도약 같은 것을 운운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보라'''는 것이다. 즉 이를 다시 부연하면, 평소에는 이성이 워낙 효과적이라 신앙은 거의 묻혀 있다가, 그 신앙이 이성에 의해 위협받는 순간 뒤늦게 억지로 이끌고 들어온 개념이 "이성을 뛰어넘는 도약" 이 된다는 것이다. 데닛에 따르면 "신앙을 향한 이성의 도약" 이라는 입장은 사실 신앙의 가치가 이성에 의해 위협당하는 순간에만 유효한 것이며, 실제로는 이성과 신앙이 크게 마찰을 일으키지 않을 때에는 신앙에 아무런 가치가 부여되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그걸 은폐하려 하는 것이라는 지적이다. 한편 Credo quia Consolans 역시 혹독한 비판을 받고 있는데, 어쩌면 가장 온건한 비판자일 [[마이클 셔머]]는 심리학자로서의 자세를 견지하면서 ''''[[인간]]은 본성적으로 자신에게 만족감을 주는 설명을 좋아하는 행태를 보이며''', 이는 인간으로서 지극히 정상적인 반응' 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아마도 자신이 추켜세웠던 마틴 가드너에게 가해지는 비판을 의식했을 그는 이에 덧붙여서 "...이러한 만족감을 찾고자 하는 욕구는 [[과학적 회의주의]]자라 해도 다를 바가 아니다" 라고도 해명했다. 현대논리학의 거장 [[버트런드 러셀]](Bertrand A.W.Russell) 경은 아마도 가장 강력한 비판자 중 하나일 것인데, 그는 기존의 자신의 비종교적 성향에 덧붙여서 다음과 같은 강경한 의견을 피력한 적이 있다. 이는 실제로 [[반기독교]] 관련 커뮤니티 등에서 흔히 떠돌곤 하는 [[유명 어록]]이기도 하다. > "사람을 안이하게 만들어 주는 꾸며 낸 이야기의 도움 없이는 삶의 위험을 정면으로 대하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연약하고 상당히 비열한 면이 숨어 있다. 그의 어떤 부분은 거의 필연적으로 그것이 꾸며 낸 이야기에 불과하며, 그것을 믿는 이유는 단지 편안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그는 감히 이런 생각에 정면으로 맞서지 못한다. 게다가 [[열등감|희미하게나마 스스로의 의견이 비이성적이라는 것을 자신도 알고 있기 때문에]] [[열폭|자신의 의견이 논박당하면 굉장히 화를 내게 된다.]]" > > - 버트런드 러셀 그 외에도 [[반신론]]적인 반박도 가능한데, "내게 위안이 되므로 믿는다" 는 발상은 단순히 '''행복한 [[노예]]'''에 지나지 않을 뿐이라는 것이다. 신앙주의 자체가 그나마 조금 더 유화적인 종교적 입장이라고는 하나, 인간의 주체성과 자율성을 강조하는 반신론과는 여전히 극단적으로 상충되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자유사상]]의 관점에서 보아도 신앙주의는 특정 도그마를 의심 없이 신봉하기 때문에 타협이 불가능하다. [각주] [[분류:종교]] [[분류:사상]]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