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이동문서 삭제토론 신원사 (문단 편집) === 배경 === 책이 완성되자 [[일본 제국|일본]]에서는 커샤오민에게 [[도쿄제국대학]] 명예박사학위를 수여하고, 당시의 북양정부는 정식으로 이 책을 정사(正史)의 반열에 들도록 명령하였다. 다만 이것은 표면적으로 관찰한 결과이고, 위의 문단에서 지적하듯 심층적으로 들어가면 오류나 결점이 많이 발견된다. 이 책이 정사의 반열에 들고, 일본으로부터 찬사를 들은 이유는 당시 일본이 중국의 반일감정을 완화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중국에서는 '''[[5.4 운동]]'''이 일어난 이래로 반일 감정이 극도에 치달았다. 일본은 이런 반일 감정을 감소시키기 위해 신축조약으로 약속된 배상금을 중국의 문화사업에 투자하기로 결정했다. 일본은 이러한 목적을 위해 [[북양정부]]와의 협약을 통해 '''동방문화사업위원회'''를 발족했다. 위원으로는 중국인 11명, 일본인 10명으로 일본 외무성 문화사업국에 예속했다. 이를 일본의 중국에 대한 문화적 침략으로 여긴 중국 지식인들은 분분히 반대했지만 1925년 정식으로 설립되어 베이징에 총회를 두고 상하이에 분회를 두었다. 커샤오민은 이 동방문화사업위원회의 총회장을 맡았다. 실제로 위원회에 속한 중국인은 대부분 친일 중국인이 발탁되었다. 다만 이는 《신원사》의 우열 문제와는 별로 관련이 없는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