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신잔 (문단 편집) == 종마 생활 == {{{#!wiki style="word-break:keep-all;" || 연도 || 교배[br]두수 || 자마[br]두수 || || 1966 || 34 || - || || 1967 || 33 || 23 || || 1968 || 78 || 31 || || 1969 || 77 || 64 || || 1970 || 76 || 61 || || 1971 || 37 || 63 || || 1972 || 43 || 28 || || 1973 || 117 || 33 || || 1974 || 107 || 89 || || 1975 || 74 || 63 || || 1976 || 53 || 50 || || 1977 || 37 || 36 || || 1978 || 35 || 30 || || 1979 || 66 || 24 || || 1980 || 51 || 51 || || 1981 || 50 || 37 || || 1982 || 40 || 38 || || 1983 || 29 || 32 || || 1984 || 26 || 21 || || 1985 || 25 || 19 || || 1986 || 20 || 19 || || 1987 || 5 || 8 || || 1988 || 0 || 0 || }}}[*출처 [[https://www.jbis.or.jp/horse/0000008661/sire/generation/thorough_s/|#]]] 은퇴 이후 홋카이도의 타니가와 목장에서 종마 생활을 시작하지만, 당시 일본산 종마는 약하다고 기피되었기 때문에 신잔은 주로 주변 목장의 암말들과 교배했다. 하지만 점점 중상을 차지하는 산구가 나왔고, 1972년엔 리딩 사이어 17위를 차지하며 20위 이내의 종마 중 유일한 일본산마가 되었다. 신잔을 시작으로 "일본산 종마도 강하다"는 인식이 생기자 [[애로우 익스프레스]], [[토쇼 보이]] 등 일본산 종마도 본격적으로 번식 기회를 얻게 되었고, [[미스터 시비]]와 같은 부내국산마가 태어날 기반이 되었다. 때문에 신잔은 '''일본산 종마의 발판을 깔았다'''고도 평가된다. 1969년부터 1992년까지 산구 '''24년 연속 승리''' 기록을 세울 만큼[* 이 기록은 훗날 [[노던 테이스트]]가 넘는다.] 산구들의 저점은 높았으나 유독 팔대 경주를 제패하는 산구만은 나타나지 않았다. 때문에 그 신잔마저도 후계 종마를 낳는 것은 어려운 일인가 생각되었으나, 종마 생활 말년에 가까운 1981년에 미나가와 만나가 [[킷카상]]을 우승하면서 처음으로 팔대 경주를 우승한 산구를 배출했고, 1985년에는 대표 산구가 되는 [[미호 신잔]]이 나타나 2관을 제패했다. 1987년에 종마를 은퇴하고, 타니가와 목장에서 여생을 보내다 1996년 7월 13일에 35세의 나이에 노환으로 죽었다. 이는 당시 일본 서러브레드 최장수 기록이었다. 이후 2014년 [[애로 하마키요]]가 일본 서러브레드 최장수 기록을, 2019년 [[마이네르 다비드]]가 중상마 최장수 기록을 깼지만, GI급 우승마로 한정할 경우 여전히 신잔이 최장수 기록을 갖고 있다.[* [[킷카상]] 우승마로 한정하면 아예 신잔과 미호 신잔 부자가 최장수 기록 1위와 2위를 나란히 차지하고 있다.] 이처럼 장수한 덕에, 자마인 미호 신잔의 은퇴 당시 같이 불려나와 사진을 찍기도 했다.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umamusme&no=1291053|#]][* 이러한 이벤트가 가능했던 것은, 신잔과 미호 신잔의 방목장이 서로 이웃하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umamusme&no=1544314|#]]] 신잔의 손자인 밀키 웨이(경주마 명칭은 실버 타이세이)는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서 [[https://olympics.com/ko/olympic-games/seoul-1988/results/equestrian-jumping/individual-mixed|승마 장애물 종목]]에 출전하기도 했다. 당시 기수는 사와이 타카오(澤井孝夫, Takao Sawai). 서울만 출전한건 아니고 다음 올림픽인 바르셀로나 올림픽도 다른 기수와 출전했으며 밀키 웨이는 일본에서 퇴역경주마 출신 중 외산 웜블러드를 재치고 승마 국가대표로 출전한 3마리중 하나다.[* 순서대로 나열하면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 출전했던 [[오가타 토키치]]가 조교하고 기수로 기승한적이 있던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umamusme&no=1917366|애스콧]], [[1976 몬트리올 올림픽]]에 출전했던 인터 니혼, 그리고 서울올림픽의 밀키웨이 총 셋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