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신정통주의 (문단 편집) == 사상적 특징 == 신정통주의의 대표격인 [[칼 바르트]]가 자유주의 신학자이자 스승인 하르낙과 공개토론한 것을 비교하여 [[자유주의]] 신학과 [[신정통주의]] 신학의 차이점을 살펴보고자 한다. 영남신학대학교 조직신학 김동건 교수의 <현대신학의 흐름>(대한기독교서회, 2008)을 따라 하르낙의 15개 질문을 4개의 주제로 나누고, 이에 대한 바르트의 신학을 분석해본다면 다음과 같다. 첫째, 자유주의 신학은 성서의 진리, 계시가 성서의 내용과 서로 일치되지 않는 부분들이 상당하기에 역사적 지식과 비판적 숙고가 필요하다고 한다. 성서의 오류에 대해서는 [[성경/논란]], [[성서비평학]] 항목 참조. 이에 대해 신정통주의는 성서는 오류가 있음에도 초월자의 거룩한 계시는 손상되지 않는다고 한다. 바르트에게 성서는 이성을 통해서가 아니라 성령의 능력과 교회전통의 신앙으로 이해된다. 따라서 성서비평학의 방법으로 계시를 완전히 이해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신정통주의는 [[성서무오설]]과 [[축자영감설]]은 거부하고 자유주의 신학의 유산인 [[성서비평학]]을 받아들인다. 다만 현대철학과 문헌 해석학, 언어학을 받아들여 '''성서도 인간이 쓴 책이기 때문에 해석이 필요하나 결과적으로 신이 주도했으므로 계시는 손실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성서의 "하나님이 말씀하셨다"는 표현은 시인이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를 보고 "나무가 바람에게 인사한다"고 표현하듯, 내용과 서사의 문제가 아니라 언어 그 너머에 있는 절대자 체험이 시적, 종교적으로 표현된 진리이고 계시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정통주의자들은 이사야서는 이사야가 혼자 1장부터 66장까지 다 썼고, 모세 오경은 신명기 마지막 두 장 빼면 전부 모세가 썼다고 믿었다. 그러나 자유주의자들은 성경 본문을 칼같이 분석하여, 이사야서는 셋이서 1-39, 40-55, 56-66장을 나눠서 서로 다른 시대에 쓴 것이고, (이사야 혼자서로 다른 세 시대에 나누어 썼다는 주장도 있다) 창세기는 모세가 쓴 것이 아니라 바빌론 포로기에 기록된 E문서와 유대 왕국 시기에 기록된 J문서를 비롯한 서로 다른 네 개의 문서를 짜깁기한 것이므로, '''성경은 그다지 믿을 만한 책이 아니며, 그냥 좀 훌륭한 도덕 교과서일 뿐'''이라고 믿으면서 인간 이성을 성경보다 우선시했다. 그러나 신정통주의자들은 이사야서는 셋이서 나눠 쓴 것이고 창세기도 네 개의 문서를 짜깁기한 것은 맞지만, '''그런 속에서도 성경을 통해서 신의 계시를 얻을 수 있으므로, 결과적으로 성경은 신의 계시라고 주장한다.''' '''간단히 말해, 정통주의가 '정'이고, 자유주의가 '반'이라면, [[아우프헤벤|신정통주의는 '합'이다.]]'''] 둘째, 자유주의 신학은 성서 속 인물, 그리고 성서를 읽는 인간의 체험, 설교자의 관점이 각기 다르기 때문에 혼선이 빚어지며 따라서 [[성서해석학|비판적으로 객관적인 기준을 세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들에 의하면 객관적인 이성으로 설명할 수 없는 종교적 체험은 무가치한 개인의 환각이자 착각이다. 이에 대해 신정통주의는 두 가지로 대답한다. 신정통주의는 [[쇠렌 키르케고르|신에 대한 인간의 체험은 역사적 판단, 곧 이성에 맡겨져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신 인식이 비판적 숙고에 달려 있지 않다는 의미이다. 신인식은 인간의 이성으로 판단될 수 없는 초월의 경지이다. 따라서 [[믿음의 도약|신이 허락한다면 비판적 성찰없이도 신과 인간의 진선미(眞,善,美)는 결합될 수 있다. 신은 그 자신을 드러냈기 때문에 인간은 신뢰를 할 뿐이다.]] 그러나 이는 인간에게 위기이며 이를 넘어서서 진정한 인간성에 대한 긍정이 나타난다. 여기서 바르트의 [[아우프헤벤]]적 신학이 두드러지는데, 간단히 말해서 바르트는 신과 인간 사이에는 질적인 차이가 있음을 강조한 것이다. [[불멸자|신]]은 [[필멸자|인간]]에게 [[예수|다가와 경험을 선물하지만]] 인간은 [[영원|질적으로 전혀 다른 존재]]를 이해할 수 없다. 따라서 인간에게 이 경험은 [[12사도|오해, 갈등, 배신위기]]로 나타나고, [[죽음|신과 인간의 단절이 나타난다.]] 이 [[십자가형|단절]]을 신은 [[부활|넘어섬으로]] [[사도행전|인간]]에게 다가오고, 비로소 [[기독교|긍정]]이 다가온다. 정확히 [[변증법|정반합]]의 구조이다. 다른 한편, 바르트는 매우 단순하게 대답한다.''' "그분은 모든 이성보다 더 높다" '''[* 그러면 사람의 모든 이해를 뛰어넘는 하느님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지켜 줄 것입니다. 빌립보서 4:7절] 셋째, 자유주의 신학은 신과 인간의 대립을 지양하고 신의 사랑과 인간의 이웃 사랑을 결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보면 매우 추상적으로 들릴 수 있으나 하르낙의 입장에서의 요지는 [[제국주의|'''세계역사의 진보는 신의 뜻이다''']]는 의미이다. 간단히 말해 세상학문과 신학 사이의 상관관계를 옹호하는 것이다. 이 옹호는 자유주의 신학 본연의 순수한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프리드리히 슐라이어마허]]가 18세기에 당면했던 시대는 더이상의 형이상학과 신론에 더이상 기대를 할 수 없었다. 슐라이어마허는 기독교의 생존을 위해 근대철학이 종교에 제시한 의문들을 반박하고 그들이 그나마 감싸던 윤리, 감정과 미적 토대를 양토삼아 왼팔엔 경건주의, 오른팔엔 낭만주의를 업고 세상학문이 미처 전달하지 못하는 분야를 종교가 전달할 수 있다고 변증하였다. 그리고 시대의 흐름과 요청에 따라 신학 강의안에 문헌비평, 역사비평을 넣은 것이다. 칼 바르트도 슐라이어마허를 맹렬히 비판했지만 평생을 연구하면서 그가 맞딱드렸던 현실과 그의 대처를 옹호하기도 했다. 하르낙에 의하면 진화론, 자연과학의 발달, 산업혁명, 계몽주의의 풍토가 식민주의와 제국주의 사관을 형성하도록 이끌었으며 자유주의 신학도 계몽주의의 시각에 동의하였음을 여기서 발견할 수 있다. 바르트는 단언한다. '''신과 인간의 사랑은 도저히 나란히 놓을 수 없다. 신과 인간을 나란히 놓으려 는 것이 바로 신과 인간이 대립관계임을 보여준다''' 칼 바르트가 지적한 것은 신학을 맹렬히 공격했던 지성인이라고 하는 인간들, 학문들이 한참뒤에 도리어 종교전쟁 보다도 더욱 잔혹하고 과학적으로 세계대전을 저지른 야만적 행위이다. 바르트는 1차 세계대전에서 유럽의 관념론과 자유주의 신학의 철저한 붕괴를 보았다. 바르트는 신학이 하나님의 말씀과 영광을 말할 것인가, 인간의 종교적 도덕적 가능성에 대하여 말할 것인가의 문제를 모순적 양자택일로 보았다. 이러한 신정통주의의 확언은 이후 [[카를 마르크스|세속학문들]]의 [[프리드리히 니체|극단적인 변화]]를 통해서 [[지그문트 프로이트|사실임이]] 입증되었다. 넷째, 자유주의 신학은 역사적 연구가 뒷받침되지 않는 그리스도는 몽상적인 그리스도가 될 수 있음을 경고한다. 그래서 그들은 [[역사적 예수]] 세미나, 고대근동지역 발굴 등을 통해 실제 역사와 성서신화를 구분지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에 바르트는 계시에 의한 그리스도 인식 외에는 그리스도에 도달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이 말은 결코 육체를 입고 이성으로 사고하는 인간은 그리스도를 완전히 알 수 없으며 오로지 미래, 계시, 종말을 통해서만 알 수 있다는 뜻이다. 이렇게 신정통주의의 대표자인 칼 바르트는 '''그래도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다'''라고 주장하면서, 자유주의 신학자들이 부정하던 (구)정통주의의 죄, 심판, 죽음, 십자가, 속죄, 부활 등등에 대한 개념을 다시 인정하였다. 그러나 거기에 대해서 (구)정통주의자들을 교조적으로 답습한 것이 아니라, 실존주의, 신 죽음의 신학 등으로 기존 (구)정통주의에서 찾아내지 못한 또 다른 의미를 부여했다. '''즉 신정통주의는 루터와 칼뱅을 비롯한 종교 개혁자들의 (구)정통주의를 변증법적으로 계승하고 발전시켜 등장한, 자유주의에 대한 [[안티테제]]를 자칭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