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신정통주의 (문단 편집) === 성서비평학 수용 및 정치적 문제 === 박형룡 박사[* [[장로회신학대학교]] 총장을 역임했고, [[총신대학교]]설립에 엄청난 기여를 하였다. 같은 프린스턴신학대학교에서 3명의 한국인 신학박사가 배출되었는데, 한신의 김재준, 통합의 [[한경직]], 합동의 박형룡이 그들이다.]는 칼 바르트를 비판한 코넬리어스 반 틸에게서 강한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처음부터 신정통주의를 몹시 싫어했다. 반 틸은 메이첸이 설립한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의 창립 멤버였고 '새로운 현대주의', '기독교와 바르트주의'등의 저서에서 바르트를 혹독하게 비판한다. 반틸에 의하면 바르트는 칸트적인 현상계-예지계의 구분에 학문적 출발점이 있는 모더니스트다. 바르트는 반틸을 '자신에 대한 비판자 중에서 그나마 자신을 이해하고 있는 자'라고 평가하였다고 한다. 총신의 경우 신학대학원장을 역임한 서철원 박사가 반틸의 직계 제자로서 바르트에 대하여 반틸 이상으로 혹독한 평가를 내렸다. 서철원 박사에 의하면 반틸조차 바르트를 너무 좋게 평가했다고 한다. 강경 보수 개혁주의 신학자인 존 그레셤 메이천(John Gresham Machen, 1881-1937)[* 보수주의 장로교 교단인 정통장로교회(OPC)를 만든 사람.]은 칼 바르트의 신정통주의가 변증법의 영향을 받은것과 기존 자유주의 신학의 [[성서비평학]]을 물려받은 것에 대해 못마땅하게 보고 이를 비판했으며 박형룡도 이에 동감하여 신정통주의는 정통주의가 아닌 자유주의의 아류라고 보았다. 해방 이후 군사정권 당시 신정통주의 계열은 대체로 반정부 성향을 보였는데, 이는 보수주의 진영에서 '빨갱이'로 몰아버리기 딱 좋은 구실이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