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신철인 (문단 편집) === 아마추어 시절 === 경동고등학교 재학 시절만 해도 실책을 남발하는 3루수에 불과했다. 2학년 겨울 방학때 허리를 다쳐 유급을 하여 고등학교를 4년째 다니고 있었음에도 그는 어떠한 가능성도 보여주지 못하였다. 감독은 그에게 투수 전향을 권유하였고, 투수로 전향한 후에는 전국대회에서 완봉승, 완투승을 거두는 등 나름 가능성을 보여주었다.[[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6091700209113001&editNo=45&printCount=1&publishDate=1996-09-17&officeId=00020&pageNo=13&printNo=23314&publishType=00010|1996년 황금사자기 기사]][[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6060300209116006&editNo=45&printCount=1&publishDate=1996-06-03&officeId=00020&pageNo=16&printNo=23214&publishType=00010|1996년 청룡기 기사]] 하지만 오라는 대학과 프로 팀이 아무 곳도 없었고, 삼성과 현대에 연습생으로 입단 테스트를 봤지만 그것도 다 떨어졌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1997년, [[해태 타이거즈]]의 입단 테스트를 받은 뒤 연습생으로 겨우 입단했지만 정식 선수로 등록되지는 못했고, 배팅볼을 던지거나 구장 보조를 하다가 1년 만에 해태에서 방출된다. 그 때 2년제 전문대학인 제주관광대학 감독에게 입학 제의가 왔고, 1998년 그는 [[제주특별자치도]]로 건너가 제주관광대 98학번으로 입학, 선수 생활을 이어나가게 된다. 그 후 기량이 발전하여 [[전국체육대회]]에서 145km/h가 넘는 속구를 던지며 활약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