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신해철 (문단 편집) == [[논객]] · [[정치연예인]] 신해철 == || [youtube(DPsVfw1CAno)] || || 신해철의 100분 토론 출연 하이라이트 편집본 || 신해철은 [[100분 토론]]에 가장 많이 출연한 연예인이었다. (밑의 TV 출연 항목 참조). 100분 토론에 수차례 출연하여, 대마초 비범죄화, 간통죄 폐지, 체벌금지 등을 주장하였다. 또 100분 토론 300회, 400회 특집에서는 '최고의 비정치인 논객'으로 선정돼 참석하기도 했다. 400회 특집에선 '''국회를 유해매체로 지정하고 뉴스에 내보내지 말자'''라는 발언을 함으로서 비판을 이어갔다. 이처럼 100분 토론에 출연하여 대마초 비범죄화, [[간통죄]] 폐지(비범죄화)[* 당장 10여년 전에는 [[마광수]]와 [[김광석]]이 라디오에서 간통죄에 대해 '인권을 침해하는 악법'이라며 비판적인 이야기를 했다가 '''외설스러운 발언'''이라고 같이 방송 출연정지 처분을 받는 등 간통죄 폐지는 매우 민감한 문제였고, 자칫 연예계에서 매장당할 수도 있었다.], 체벌금지 등 자칫하면 수많은 안티를 양상해낼 수 있을 수도 있는 주장을 한 것과 관련하여[* 실제로 당시 100분 토론 게시판에는 신해철을 까는 글들로 넘쳐났다.] 신해철은 아래와 같이 말한 바 있다. >현실적으로 바뀔 수도 없고, 질 수밖에 없는 문제에 왜 뛰어드냐고 주변에서 말합니다. 한국에서는 영악하게 지는 싸움을 피해가는 사람은 많습니다. 저는 지는 싸움도 때로는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라고 하였다. [[http://www.khan.co.kr/kh_news/art_view.html?artid=201002151822315&code=210000|출처]] 이처럼 신해철은 자신의 주장에 대해 "질 수밖에 없는 싸움"이라고 자조적으로 말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주장이 일부 현실화되었다.''' 체벌금지는 2010년 이후 각 지역 교육청에서 학생인권조례를 제정함으로써 현실화되었고[* 물론 이는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2010년 지방선거]]에서 전국적으로 진보 성향 교육감들이 당선되었고, 그들이 신해철과 의견을 같이 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었다.] [[간통죄]] 비범죄화는 그가 세상을 떠난지 4개월 뒤 [[헌법재판소]]에서 간통죄에 대해 위헌판결을 내림으로써 실현되었다. 결국 발언 당시에는 비난을 피할 수 없던, '''지는 게 당연한 3번의 싸움에서 2승을 거둔 것.''' [[2002년]] 대선에서는 [[노무현]] 후보 지지의사를 밝히며 선거유세에 참여하였다.[* 앞서 말했다시피 신해철도 "질 수밖에 없는 싸움"에 과감하게 나서는 사람이기에 어찌 보면 노무현과 코드가 잘 맞는다고 할 수 있다.] 당시 TV 찬조 연설자로 나서기도 했는데, 훗날 [[문성근]]은 “대통령 선거 TV 지원연설에서 대본 없이 20분간 할 말을 한 사람은 [[백기완]]과 신해철 뿐”이라고 말한 바 있다.[[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469&aid=0000027043|출처]] [youtube(rEqwHndhEF0)]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 후보 TV 찬조 연설 영상> [[파일:external/spnimage.edaily.co.kr/PP09062200003.jpg]]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에는 삭발을 하고 추모 공연에 참석하는 등의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2003년에는 [[참여정부]]의 [[이라크전]] 파병 결정에 반대하며 청와대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기도 하였다.[[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00338623| #]] [[파일:/image/001/2003/03/21/kp1_2030321m1000.jpg]] 당시 신해철은 [[청와대]] 앞에서 1인 시위에 나서며 “깡패가 칼질할때, 나는 칼을 안 쥐었다고 하더라도, 뒤에서 칼 갈아주고, 심부름해주고, 뒤처리해준다고 해서 나는 책임이 없고 도덕적으로 깨끗한가? 설령 힘의 논리에 의해 참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더라도, 지금 당장의 국익을 위해 부도덕한 전쟁을 지지하고 파병까지 한다면, 우리는 후손들에게 씻을 수 없는 도덕적 부담감을 남기는 죄악을 저지른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라고 말하였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02&aid=0000003865| #]] 2004년에는 '체벌 금지 법제화 추진 모임'이라는 인터넷 카페를 개설해 학교 내 체벌 금지 운동을 전개하였다. 신해철은 해당 카페에, 아래와 같은 글을 남기기도 하였다. >"훗날 제가 눈을 감을때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음악을 한 것이 아니라 바로 체벌을 금지시키기 위해 여러 사람들과 힘을 모은 것이라고 이야기하게 될 것을 확신한다. 단순히 체벌을 받는 학생들에 대한 동정의 차원이 아니라 체벌이라는 독버섯의 밑에 우리 시대의 거대한 부조리와 사회악의 상징들이 상상보다 커다란 규모로 또아리를 틀고 있음을 파악하고 알리며 싸워나가달라.".[[http://entertain.naver.com/read?oid=008&aid=0003358020| 출처]] 이어 2006년에는 체벌 금지를 주제로 100분 토론에 출연하기도 하였다. 해당 토론에서 신해철은 "폭력은 전염되면 점점 강해지고 그 효과는 약해진다. 폭력 이외의 대안을 먼저 모색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신해철의 이러한 캠페인은 2010년 10월 경기도교육청의 '경기학생인권조례' 공포를 시작으로, 이후 광주광역시교육청, 서울특별시교육청, 전라북도교육청이 차례로 [[학생인권조례]]를 공포함으로써 성과를 거두게 되었다.[[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08&aid=0003358020| 출처]] 한편 2009년 2월에는 입시학원(하이스트)의 전면광고에 출연하였는데, 이를 두고 신해철에 대해 이율배반적 행동이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즉 평소 진보적인 (정작 신해철 본인은 자신을 진보주의자로만 규정하지 말아달라고 했었다. 혹자는 신해철 사후 신해철에 대해 회고하면서, 신해철은 오히려 자유주의자에 가까웠다고 평가 한 바 있다)[* 사실 진보주의라고 사교육보다 공교육에 긍정적이었던 것도 아니다. 가령 [[김상봉]] 교수도 <내부로의 망명만이 길>이라는 글에서 억압이 덜하다는 면에서는 사교육이 공교육보다 차라리 나으므로 학생들이 학교를 그만두고 학원에 다니면서 나머지 시간에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도 하나의 대안이며 교사들은 교직에 연연하지 말고 더 나은 교육을 위해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학교를 떠날 각오가 되어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교육기관을 민영화한 뒤에 저소득층일수록 학생들에게 교육비를 더 많이 지원해주면 (교육 바우처 제도)진보적 가치에 위배되는 것도 아니다.] 주장을 한 신해철이 어떻게 사교육 학원 광고에 등장할 수 있냐는 것에 대한 비판이었다. 이와 더불어 신해철이 광고 슬로건인 "개인별 맞춤형 교육"이란 말을 진짜로 믿었던 것과 24시간 운영 학원이란 것을 나중에야 알았다는 것은 본인의 사전조사와 주의가 부족했던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있었다. [[파일:external/www.t-ime.com/1295f00e718.jpg]] [[파일:external/www.t-ime.com/1295f02942c.jpg]] 이에 대해 신해철은 자신의 홈페이지에 글을 올려서 입장을 밝혔다. 해당 글에서 신해철은, 이 사건을 "왜곡의 메카니즘"으로 칭하면서, 그동안 자신은 "공교육의 총체적 난국을 비판해 왔지만 사교육과는 거의 무관한 얘기였다"라고 하는 한편, "신해철은 평소 교육에 대해 ‘전반적으로’ 진보적인 자세를 취했으니 ‘마땅히’ 사교육에 강경히 적대적인 입장을 취했어야 한다"라는 일부 언론 보도를 비판하였다. 사실 신해철은 공교육절멸론자이다. 이는 신해철이 최초로 주창한 이론은 아니고,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가 주창한 것인데,[* 신해철은 앨빈 토플러만을 언급했지만 사실 현대적인 탈학교론의 주창자는 이반 일리히와 에버트 라이머이다.] 신해철 역시 이에 동의함을 늘 밝혀왔었고, 미래에 공교육의 대안은 홈스쿨링과 사교육이 될 것이라고 주장해왔었다. 즉 신해철은 오히려 사교육찬성론자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그는 싸이렌 음악원이라는 사교육업체를 운영하기도 했으며, 자신의 두 자녀를 모두 [[대안학교]]에 진학시킨 바 있다. 그리고 모 인터뷰에서는 자신의 공교육절멸론에 대해 아래와 같이 설명한 적도 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47&aid=0001953414| 출처]] >신해철: "나는 공교육이 사멸되어야 한다고 본다. 그리고 의료민영화는 반대해도 교육은 민영화되어야 한다고 본다. 현재의 공교육은 수습될 수 없는 상태로 접어들었고. 수많은 정권들이 들어서서 입시 제도를 수도 없이 뜯어고치고, 엄청나게 많은 짓을 했는데도 그 누구도 성공한 사람이 없었다. 앞으로도 성공할 사람이 없을 거라고 본다. 물신주의 패러다임 아래서는 교육 문제는 해결 안된다. 내가 너무 감정적인 이야기를 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공교육은 지금까지 나쁜 짓을 너무 많이 했다. > >(중략) > >사교육을 비난하는 사람들 중 과연 몇이나 사교육에 대해서 연구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사교육은 무조건 악인가. 권력이나 부의 세습을 강화하고 빈자들을 고립시키는 대표적인 악으로만 이야기될뿐이지 사교육의 미래에 대해서는 아무도 이야기하고 있지 않다. 공교육의 미래에 대해서는 다름 아닌 앨빈 토플러가 이야기했다. 21세기의 조직 가운데 제일 먼저 사라질 게 학교라고. 우리는 학교가 소멸하는 미래를 생각해봐야 한다. 특히 대한민국처럼 학교가 나쁜 짓을 많이 한 나라에서는 학교를 빨리빨리 없애야 한다. > >홈스쿨링이 빈약한 대안으로서가 아니라, 대단히 강력한 교육수단으로 자리를 잡게 되는 경우도 생각해봐야 한다. 나는 사교육이 그런 진화 단계를 밟게 될 것이라고 본다. 사교육 시장이 동네 학원에서 거대 학원으로 진화하고, 온라인 툴을 갖추고, 공교육의 자리를 완전히 대체하고. 또 그 다음엔 같은 사교육 업자들끼리 경쟁을 통해서 가격을 밑으로 내리게 되고. '''[[패스|미래의 사교육은 저렴한 가격으로]], [[인터넷 강의|온라인을 통해 가난한 민중들에게도 얼마든지 공급될 수 있는 형태로 재편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공교육이 빨리 몰락해야 한다는 게 제 사고방식이니 (나를) 과격하다고 이야기한다." 신해철의 공교육 불신에 대한 발언은 그가 싸이렌 음악원을 세우기 한참 전부터 해오던 것이다. 초창기 시절부터 라디오 등을 통한 그의 발언을 들어온 사람이라면 이전부터 해온 새로울 것 없는 발언이었다. 한편 해당 사건이 일어난 후 1년 정도 흐른 뒤,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 사건에 대해 아래와 같이 말하였다. [[http://entertain.naver.com/read?oid=001&aid=0003356780|출처]] > 기자: 입시 위주 교육을 비판하면서 학원 광고에 등장하고 학원을 운영하는 건 어폐가 있는데. > >신해철: 입시 위주 공교육을 비판했지, 지금껏 내 발언 중 사교육에 부정적인 시각은 없다. 학생 때부터 내게 학교는 시간 낭비였다. 중고등학교 때 수업을 제대로 들은 적이 없고 참고서로 공부했다. 인성적으로 감화되지 않는 선생들에게 고개 숙이는 위선도 짜증났다. 지식을 가르치는 전문가에게 '하드하게' 배우고 나머지 시간에는 내 생활을 갖고 싶었다. > >기자: 사교육 과열이 가져오는 문제점도 있지 않나. > >신해철: 사교육의 기능과 비용 문제를 구분 못한 것이다. 사교육이 악인 것은 가정경제를 압박하고 학생들에게 과도한 경쟁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사교육 문제를 지적하려면 비용 문제를 짚어야 한다. 학원이 영세업에서 벗어나 전국 체인화된 대기업이 되면 박리다매가 가능하다. 입시 학원 광고를 한 것도 그 학원이 대형 체인이었기 때문이다. 앨빈 토플러가 21세기 소멸할 첫 번째로 꼽은 게 학교였듯이 난 공교육이 없어질 것으로 생각한다. 학교는 대중을 통제하고 정권에 맞는 인간형을 만들려는 정치적인 목적이 있다. 나중에 [[SNL 코리아]]에 출연해서 유희열이 후회하는 광고 없냐고 물었을 때 "아파트 광고를 하기 위해 본인이 직접 그 아파트에서 살 필요는 없지만 학원 광고는 자식이 학원 갈 나이가 돼서 같이 힘들어하게 되기 전까지는 안 하는 게 낫겠다"고 하기도 말한 바 있다. 또 김구라의 '진실의 순간'에 출현했을 때도 학원광고를 찍은 걸 후회하냐는 질문에 "내가 대처를 잘못 하는 바람에 무슨 말을 해도 변명 밖에는 안되는 상황이 되고말았다."고 털어놓은 적이 있는데 "지금은 사교육비 때문에 학부모들이 허리가 휜다고 날 비난하지만 10년 후에 보자."라고 하면서 또 앨빈 토플러를 인용했지만 이미 10년이 지났는데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다. [[북한]] 미사일 관련 발언으로 비판을 받았다. 2009년 4월 8일, 신해철이 자신의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북한이 합당한 주권과 적법한 국제절차에 따라 로켓을 발사하였음을 민족의 일원으로서 축하한다"라는 글을 올려 논란이 되었던 것. 이에 신해철은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이 논란에 대해 아래와 같이 말한 바 있다.[[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01&aid=0003356780|출처]] >"안보 이슈는 대국민 겁주기용으로 사용된다. 로켓 발사 상황에 대한 북한의 입장이 적법하다고 생각한 국가도 많다. 정보가 차단되니 대중은 바보가 된다. 내 의도는 '북한이 인민군복을 입은 늑대'라는 반공 포스터 세대에서 벗어난 사람들, 북한을 동포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표시였을 뿐이다. 보수단체도 애국한다고 뛰고 있으니 나와 방법이 다를 뿐 무시하지 않는다. 이런 글이 문제가 되지 않는 세상을 노무현 대통령 때 살았다. 집과 차는 한 단계 내려 못 살듯이 자유도 내려 못 산다." 신해철은 "북한이 합당한 주권과 적법한 국제절차에 따라 로켓을 발사하였음을 민족의 일원으로서 축하한다"라고 하면서 북한의 미사일에 대해 축하를 했는데 합당한 주권과 적법한 국제절차는 논외로 하더라도 남한과 대치상황중의 있는 북한의 미사일이 과연 민족의 일원으로서 축하할 일인지는 보통의 사람들이라면 충분히 판단할 수 있다. 그 당시까지만 보더라도 북한은 김정일 세습정권으로 수십년간 독재를 통하여 북한 인민들을 옥죄어 왔고 대남적화전략을 방침으로 남한에 대한 군사적 도발도 이어왔다. 거기다 체제유지 및 대외적인 군사적 위시를 위해 핵실험 및 미사일 개발 등을 해왔다. 이러한 국가의 미사일 발사는 비난받아 마땅한 것이다. 해명에 있어서도 황당한 주장을 했는데 "로켓 발사 상황에 대한 북한의 입장이 적법하다고 생각한 국가도 많다."라고 했다. 도대체 지구상의 정상적인 나라 중 북한의 입장이 적법하다고 주장하는 나라가 몇나라나 있을까. 이 정도면 논리를 한참 벗어나간 해명. 나머지 해명 부분을 보면 발언의 자유를 말하고 싶었거나 보수성향들이 가진 북한에 대한 편협적인 생각을 비판하려고 했던 것 같은데 해당 사건은 북한이 한반도는 물론이고 동아시아 전체를 긴장시킨 군사적 위협으로, 이런 사안 자체가 축하한다는 말이 도저히 어울리지 않았던 상황이며 누가봐도 북한이 비난 받아야할 행동이었다. 이에 대해서는 훗날 시간이 흘러 신해철의 정치적 자존심이나 중2병이 한풀 꺾인 후 이에 대해 간접적으로 후회하는 말을 하기도 했다. 2011년 [[승승장구]]에서 "독설가로서의 나 때문에 음악가로서의 내가 죽었다. 이제 새로 시작할 것이다" 라고 말했다. SNL에 출연했을 때도 유희열이 욕설과 막말을 후회하느냐고 묻자[* 실제로 한창 때 신해철의 인터넷 게시글은 처음부터 끝까지 욕설로 도배가 되어있다시피 했다. 욕하는 게 버릇이 된건지 일부러 그런 건지는 본인만이 알겠으나 '''중2병'''이라는 신조어가 탄생하자 나중에는 점잖아진 모습을 보였다.] "누굴 가르치려고 들면 안 되는데, 기술적으로 서툴렀다."고 고백했다. 2015년 10월. 사망 후 1년이 됐을 때 [[손석희]] 앵커가 진행하는 JTBC 뉴스룸에 아내 윤씨가 출연했는데, 손석희는 신해철의 죽음을 듣고 한 명의 음악가보단 한 명의 좋은 논쟁가가 떠났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아내도 생전 남편이 손 앵커가 잘 이끌어주셨기 때문에 잘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고 한다. 한 번은 신해철이 한 손에만 하얀 장갑을 끼고 이대로 방송해도 되냐고 해서 그러시라고 했단다.[* 신해철은 다한증을 가지고 있었다. 기타리스트였던 그가 보컬로 전향한 게 다한증으로 인해 기타를 오래 칠 수 없었기 때문. 간혹 넥스트 데뷔 후 방송무대에 일렉기타를 가지고 출연하는 경우엔 비닐장갑을 끼고 출연한 적도 있었다.] 신해철이 말년에 했던 인터뷰를 보면 신해철 본인은 이러한 사회적 이야기나 정치적 이야기를 하는 것 모두 음악의 일부이며 당연한 모습이라고 생각했던 것으로 보인다. >Q. 사회 문제에 관심이 많은데? > >A. '''사회적 발언을 하거나 정치 이야기를 하는 게 다 음악이라고 생각한다. 정치와 사회와 음악이 상관 없다고 생각하는 순간 음악이 이상해진다.''' > >Q. 파장이 두렵지는 않나? > >A. '''안 두려운 사람이 어디 있겠나. 선의로 이야기 해도 반사돼 돌아오는 증오의 양이 너무 크더라.''' 하지만 그 때문에 가수 생명이 끝날지 모른다는 공포는 갖고 있지 않다. 물론 가족이 스트레스를 받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은 있다. (사회적 발언이) 음악 활동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은 20대 때 충분히 고민했다. 가수가 '저는 말 잘 못하고요, 그런 건 잘 모르겠고요' 하면서 음악에만 집중할 때 대중이 예뻐한다는 사실도 안다. '''그런데 사회적 발언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연예인으로서 생명이 안전할 것이라는 보장 또한 없다.''' 설사 그런 보장이 있다 한들 모든 걸 내려놓으면 스스로 너무 초라하게 느껴져서 음악이 제대로 될 리가 없다. >---- > 2014년 7월 23일,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201407230529546078|신해철 "대중에 봉사하고 싶지 않았다"]] 中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