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실세 (문단 편집) ==== [[박정희 정부]] ==== * [[김종필]] : "통일, 외교, 국방, 중공업[* 통일, 외교, 국방은 외치의 영역으로 대통령이 할 수밖에 없고 중공업은 대통령의 각별한 관심분야였다.]만 빼고 나머진 모두 임자[* 박정희는 주변 측근들을 '임자'라고 부르는 말버릇이 있었다.]가 알아서 하시게"라는 [[박정희]]의 신임으로 보기 드문 실세 총리로 군림했다. 대통령비서실에서 만든 경제개발계획을 국무총리실에서 마음대로 고치는 수준이었다고... 사실상의 이원집정부제나 다름없었다. 더구나 이 시기가 대통령에게 권력이 집중되는 독재정권 시기였음을 고려하면 이 시기에 실세 총리라는 게 있었다는 게 더더욱 놀랍다. * [[이후락]] : 5.16 군사정변에 가담했으며 [[대통령비서실장]], 중앙정보부장을 하면서 엄청난 권력을 행사했고 7.4 남북 공동 성명에도 기여했으며 주일대사로 일본통이기도 했다. * [[박종규]] : 5.16 군사정변에 가담했고 박정희 대통령의 최측근이었으며 [[대통령경호처장|대통령경호실장]]을 지내면서 엄청난 권력을 행사했고 하나회를 후원하기도 했다. * [[김형욱]] : 5.16 군사정변에 가담했으며 박정희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중앙정보부장을 지내면서 엄청난 권력을 행사함과 동시에 횡포를 여러차례 저질렀고 3선 개헌에도 앞장을 서지만 결국 토사구팽을 당한다. * [[김정렴]] : 박정희 정부 시기에 재무부장관과 상공부장관을 지냈고 대통령비서실장을 지내면서 오랫동안 박정희 대통령을 보필했다. * [[신직수]] : 박정희 정부에서 검찰총장, 법무부 장관, 중앙정보부장을 지내면서 권력실세로 군림했다. 공작정치의 장본인이기도 하다. * [[장기영(1916)|장기영]] : 박정희 정부에서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장관과 여당 국회의원을 지내며 박정희 정부의 대표적인 경제관료로 군림했고 한국일보를 창업하기도 했다. * [[권오병]] : 이승만 정부 시절 검사였으며 박정희 정부에서 법무부장관과 문교부장관을 했는데 문교부장관 시절에 [[국민교육헌장]] 제정, 중학교 무시험 진학 등의 정책을 추진했다. * [[황종률]] : 5.16 군사정변 이후 재무부장관을 지냈고 박정희 정부에서 무임소 장관, 체신부 장관, 재무부 장관, 민주공화당 전국구 국회의원을 하면서 핵심 경제관료로 군림한다. * [[김학렬]] : 박정희 정부 시기에 재무부장관, 경제수석, 정무수석,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장관을 지내면서 박정희 정부의 대표적인 경제관료로 군림했고 포항제철 건설 등으로 대한민국이 경공업 중심에서 중화학공업 중심으로 바뀌는데 이바지했다. * [[오원철]] : 박정희 정부 시절에 [[대통령비서실]] [[경제수석비서관]]을 지내면서 박정희 정부 경제정책의 핵심축을 담당했고, 중화학공업, 방위산업의 건설계획을 총괄적으로 입안, 추진하는 컨트롤타워 역할을 했으며 율곡사업으로 명명되는 방위력 증강 계획, 번개사업으로 알려진 국산무기 개발도 추진했고 박정희 정부의 핵무기 개발에도 깊이 관여했으며 임시 행정수도 장기계획도 총괄했다. * [[김성곤]] : 쌍용그룹 창업주이자 동양통신 회장이기도 하며 이승만 정부 시절에도 자유당에서 국회의원을 했지만 박정희 정부에서 민주공화당 소속으로 3선을 하면서 더욱 권력이 올랐고 4인방을 형성했으며 박정희 대통령과 각별한 친분을 형성했고 김형욱 중앙정보부장과 3선 개헌에 앞장서면서 실세로 떠오르지만 [[10.2 항명 파동]]으로 인해서 몰락하게 된다. * [[김진만(정치인)|김진만]] : 6선 국회의원을 했으며, 김성곤, 백남억, 길재호 등과 4인방을 형성하면서 3선 개헌에 앞장섰고 실세로 떠올랐지만 역시 [[10.2 항명 파동]]으로 인해 권력의 중심부에서 밀려났다. 그러나 이후에도 국회부의장까지 하는 등 승승장구했다. * [[백남억]] : 법학자 출신이며, 5선 국회의원이었고 김성곤, 김진만, 길재호 등과 함께 4인방을 형성하면서 3선 개헌에 앞장서면서 실세로 떠올랐지만 [[10.2 항명 파동]]으로 권력의 중심부에서 밀려났다. 그러나 이후에도 국회의원을 했다. * [[길재호]] : [[5.16 군사정변]]에 앞장선 군인 출신으로 민주공화당에서 3선 국회의원을 하면서 김성곤, 김진만, 백남억과 4인방을 형성했고 3선 개헌에 앞장서면서 실세로 떠올랐지만 [[10.2 항명 파동]]을 주도했다가 몰락하였다. * [[오치성]] : [[5.16 군사정변]]에 앞장선 군인 출신이며 김종필계의 핵심 일원으로 민주공화당에서 4선 국회의원을 했고 박정희의 제7대 대통령 취임 이후에 내무부장관이 되어서 4인방계의 영향력을 줄이기 위해 4인방계 정부인사들과 지방관료들과 경찰들을 정리하는 작업을 진행했지만 [[10.2 항명 파동]]으로 인해서 사퇴하였다. * [[김현옥]] : 역시 [[5.16 군사정변]]에 참여한 군인 출신인 데다가, 박정희 정부에서 관선으로 부산직할시장와 서울특별시장을 역임했다. 부산시장 시절 부산을 직할시로 승격시켰으며 서울특별시장 시절에는 원조 불도저 시장, 돌격시장으로서 서울특별시 개발에 공을 기울였고 세종대로, 명동 지하도 건설, 세운상가 건설, 강변북로 건설, 여의도 개발, 고가도로, 터널 건설, 시민아파트 건설사업을 주도했을 정도였다. 그러나 와우아파트 붕괴사고로 인해서 경질되었고 실각하는 듯 했지만 내무부장관에 임명되어서 재기를 하는 데 성공, 그 뒤에 [[10월 유신]]에도 앞장섰다. * [[양택식]] : 박정희 정부에서 서울특별시장을 하면서 서울 지하철 건설과 여의도 개발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했고 도산공원도 조성하였다. 하지만 서울지하철 1호선 개통식 당일 날에 [[박정희 저격 미수 사건]]이 벌어지면서 서울특별시장에서 사임을 했고 이후 대한주택공사 사장을 하면서 잠실 주공아파트의 건설을 주도했다. * [[구자춘]] : [[5.16]]에 가담한 군인 출신이며, 이후 경찰로 근무하면서 서울특별시 경찰국장과 경찰전문학교장을 거쳐 제주도지사, 수산청장, 경상북도지사를 하다가 서울특별시장이 된 후 서울 지하철 2호선을 순환선으로 만들었고 강북 지역 명문고의 강남 이전, 반포동 서울고속버스터미널 건립, 금화터널 건설과정에서의 독립문 이전, 한양도성 일부 복원, 도심부 주차장 확충을 추진했다. 이후 내무부장관이 되었으나 전두환 정권 때 정치규제를 당했다가 풀려난 이후 제13,14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 [[김용환(1932)|김용환]] : 박정희 정부에서 재무부장관을 지냈으며 후에 4선 국회의원을 했고 한 때는 친박 7인회에 속했다. * [[홍종철(1924)|홍종철]] : 5.16 군사정변에 가담했고 박정희 정부를 만드는 데 공을 세웠으며 이후 초대 경호실장에 문교부, 공보부-문화공보부의 장관을 지냈고 대통령 특별 사정 담당보좌관까지 지냈다. * [[윤주영]] : 박정희 정부에서 문화공보부 장관을 했으며, 유신 체제를 출범시키는 데 앞장을 섰다. * [[박경원(1923)|박경원]] : 박정희 정부 때 내무부장관 세 번을 했고 체신부장관, 교통부장관까지 했다. * [[이원경]] : 박정희 정부에서 문화공보부 장관을 했고 전두환 정부 때 체육부 장관과 외무부 장관을 했는데 체육부 장관으로 있을 때 [[아웅산 테러 사건]]을 잘 수습했다. * [[김성진(1931년 10월)|김성진]] : 박정희 정부에서 청와대 대변인을 했고 나중에 문화공보부 장관도 했다. * [[남덕우]] : 박정희 정부 시절 재무부 장관과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을 각각 5년씩, 도합 10년을 하면서 경제 실세로서 대한민국 경제발전에 큰 공을 세웠다. 그러나 정작 국무총리 때는 힘이 없었다. * [[차지철]] : 박정희 정부 [[대통령경호처장|대통령경호실장]]을 맡으면서 타 정부부처들의 업무에 사사건건 개입을 해 수많은 적을 만들었다. '''그리고 이 행적들에 의해 결국 [[10.26 사태]]가 일어나는 원인을 제공하였다.''' * [[전두환]] : 박정희 정부의 군부 최강 실세였다. 어느 정도였냐면 '''중장들이 소장인 전두환에게 굽신거리는 정도였다.''' * [[김재규]] : 박정희 정부 교통부장관을 역임했으나 한참 후배인 차지철에게 밀려나며 점차 실세에서 멀어졌다. 이것이 발단이 돼 차지철에게 원한을 품고 결국 [[10.26 사태|대한민국 헌정 사상 최초이자 유일한 국가원수 살인 사건을 일으켰다.]] * [[최영희(군인)|최영희]] : 박정희 정부 때 국방부장관을 지내면서 향토예비군 창설을 주도했으며 이 외에도 4선 국회의원을 지냈다. * [[민관식]] : 박정희 정부 때 문교부장관을 지내면서 고등학교 평준화 정책을 추진했고 이외에 5선 국회의원을 하면서 국회부의장을 지냈다. * [[김치열]] : 박정희 정부 때 중앙정보부 차장, 검찰총장, 내무부장관, 법무부장관을 했다. * [[김용태(1926)]] : 박정희 정부 때 김종필계의 일원으로 집권여당인 민주공화당에서 5선 국회의원을 했고 제1무임소장관도 했으며 박정희 대통령의 신임이 매우 깊었고 민주공화당의 직책도 두루 맡았다. 국가재건최고회의 시절에는 구속된 기업인들의 석방, 울산공업센터 건립, 전경련 창설에 기여하기도 했다. * [[이병희(1926)|이병희]] : 5.16 군사정변 참여 이후에 중앙정보부 서울분실장이 되어서 일본에서 귀국한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을 박정희 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에게 안내하는 역할을 했으며 이후 수원에서 제6~10대 국회의원을 계속 하면서 수원을 경기도 최대도시로 발전시키는 데 큰 공을 세웠다. 그러나 전두환 정부 때 정치규제를 당했다가 이후 풀린 뒤에 제13,15대 국회의원을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