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심영구 (문단 편집) == 생애 == 1961년 [[충청북도]] [[제천군|제원군]][* 現 [[충청북도]] [[제천시]] 일부.]에서 태어난 심영구는 가정 환경이 좋지 않았다. 이미 8세 때 아버지의 학대를 견디지 못한 어머니가 누나를 데리고 가출하였다. 끔찍한 학대를 당하는 어머니를 지켜보는 일은 어린 심영구에게 견디기 힘든 고통이었고 그것은 훗날 사람을 아무 거리낌 없이 찌를 수 있는 잔혹성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추측된다. 또 계모와 이복동생들의 틈에서 성장한 심 씨는 그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하는 천덕꾸러기 신세였다. 결국 [[중학교]]도 마치지 못하고 중퇴한 그는 그 길로 가출했다. 그때부터 신문팔이와 구두닦이, 막노동 등으로 하루살이 같은 생활을 했다. 그리고 26살 때 심 씨는 [[강도죄|강도]]상해죄로 수감되어 3년 6개월의 형을 살다가 1988년 출소했다. 이 무렵 심 씨는 수소문 끝에 친모와 극적으로 재회해 같이 생활하고 있었다. 그러나 친모도 인형 공장에 다니며 버는 수입으로 근근이 살아가던 처지였기 때문에 심 씨의 마음은 편치 못했다. 꿈도 희망도 없이 셋방에서 뒹굴며 지내던 심 씨는 결국 돈을 구해야겠다는 생각에 가슴에 [[등산]]용 칼을 품고 사람들을 해치기 위해 무작정 거리로 나섰다. 그러나 목적이 강도였음에도 불구하고 폭력을 휘두르다 보니 도리어 폭력에 중독되어 점점 끔찍한 살인 행각을 저질렀다. 실제로도 "일단 한번 찌르고 나면 이성을 잃고 마구 찌르게 되었다"고 진술하기도 했다. 당시 경찰조사에서 심 씨는 “새벽에 영업을 마치고 귀가하는 사람들이나 장사꾼들이 돈을 많이 가지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고 진술했다. 첫 범죄는 [[강도상해치상죄|강도상해죄]]였다. 여튼 수형 생활을 마치고 1988년 여름 출소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