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심청전 (문단 편집) == 기타 == 완판본에서는 맹인 잔치 마지막 날까지 아버지가 나타나지 않자, "몽운사 [[부처님]]이 영험하여 '''그동안에 눈을 떠서''' 천지만물을 보시어 '''맹인 축에서 빠지셨는가'''"라며 걱정을 한다. 혹은 또 다르게 몹쓸 일을 당해 죽었거나 아니면 정말로 눈이 떠져서 안 왔는지도 생각한다. 물론 이렇게 생각한 직후에 심학규가 등장. 이후 심학규가 눈을 뜨기까지가 참 눈물겨운데 심청이 심학규를 보고 아버지임을 알고는 "아버지!" 라고 부르지만 심학규는 "대체 누가 나를 아버지라고 부르냐"고 하는데 그러자 심청이 "아직도 눈을 못 떴냐"며 절규했다. 하지만 심학규는 여전히 자기 앞에 있는 게 딸인 심청인 줄 모르고 "내겐 자식이 없고 있긴 했으나 몹쓸 아비 때문에 인당수에 빠져 죽었다. 자식 팔아 먹은 내가 살아 뭣하겠냐. [[참수|어서 목을 끊어 달라."]]라고 했다. 이에 또 심청이 절규를 하는데 그러자 심학규가 정말 앞에 있는 게 심청인가 싶어 하면서 "내가 눈이 있어야 보지, 어디 내 딸 좀 보자"라고 울부짖으며 통곡하는 순간 눈이 떠진다. 원전에서도 "아버지 눈을 띄우기 위해서" 인당수에 뛰어들었다는 묘사보다는 그저 아버지가 생각없이 승낙한 공양미 삼백석 빚값 갚으려고 뛰어들었다는 뉘앙스가 강하다. 눈을 띄운다는 소리에 승낙했는데 돌아와 생각해보니 실제로 지불할 능력은 없고, [[부처님]]을 속인 죄까지 될까 걱정하고 있었다. 판본에 따라서는 공양미 삼백 석 이야기를 한 [[스님]]이 심 봉사가 "공양미를 바치겠다"고 호언장담하자 그의 누추한 행색을 보고는 '부처님께 약속하고 안 지키면 앉은뱅이 된다'고 겁주는 경우도 있다. 심 봉사가 그 자리에서는 객기를 부려 끝까지 약속을 했지만, 집에 돌아와 제정신이 들고서는 앉은뱅이 되겠다며 안절부절 못했다. 이 때문에 심청이 아버지의 심상찮은 모습을 보고 추궁(?)한 끝에 공양미 삼백 석 바치기로 한 약속에 대해 알게 되었다. 1990년 초반에 [[독일]]에서 각색하여 [[뮤지컬]]로 만든 바 있는데 [[독일인]] 극작가도 [[용왕]]이 심청에게 '너 아버지 여태 맹인' 이라고 알려주는 게 나오는 걸로 각색했다고 한다. 심청이는 사실 [[기황후]]였다고 하는 설(?)도 [[http://todayhumor.com/?mystery_4414|대학에서의 강의 중 교수와 학생의 문답 형식 이야기]]로 커뮤니티, SNS 등지에서 유명하게 떠돈 적이 있다. 그런데 사실은 웃대 유저가 지어낸 산다이바나시(3가지 제시어로 만든 이야기)라고 한다. [[http://huv.kr/fear58468|링크]] [[전라남도]] [[곡성군]]에서는 심청전의 원류가 곡성이라며 군 홈페이지에 심청 캐릭터를 군 상징물로 지정하고 있다. 이는 곡성 [[관음사(곡성)|관음사]]에 전해져 내려오고 있는 '원홍장' 설화에 기반한 것으로 원홍장은 이 동네에 태어나 중국에 잡혀갔다가, 판본에 따라서 [[서진]]의 황후가 되었다고도 하고 혹은 지방 호족인 회계공의 아내가 되었다고도 한다. 다만 당시 [[팔왕의 난|역사적]]인 [[영가의 난|배경]]으로 볼 때 해피엔딩으로 끝났을 확률은 낮다. [[분류:고전소설]][[분류:판소리]][[분류:훈민정음]][[분류:100대 한글 문화 유산]]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