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심청전 (문단 편집) == 줄거리 == [[황해도]] [[황주목]]의 마을 도화촌 출신인 [[심청]]은 [[맹인]] [[심학규]]를 아버지로 두고 태어나자마자 어머니를 여의고, 눈이 보이지 않아 일을 할 수 없는 아버지의 [[젖동냥]]으로 가난하게 자란 후 동냥과 각종 품팔이들을 하면서 홀로 아버지를 극진히 모시며 살아갔다. 어느 날 심봉사가 밤이 늦도록 귀가하지 않는 딸을 찾기 위해 집 밖으로 나왔는데, 길을 지나가다 실수로 개천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것을 몽운사라는 사찰의 화주승이라는 지나가던 승려가 구해주고, [[사이비 종교|그 중에게 부처님에게 공양하면 눈을 뜰 수 있다는 말에 넘어가 절에 공양미 300석('''48톤''', 1석=2가마=160kg)을 바치겠다고 약속했다]]. 그 소식을 안 심청은 [[중국]](첫 원전 기준에선 [[송나라]])과 [[조선]]을 오고 가며 장사를 하던 상인들이 물살이 심해 사고가 자주 발생하는 인당수 해역에 용왕님을 달래기 위한 인신 공양으로 바칠 사람을 찾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 자신이 손수 그 제물이 되기로 작정하고 공양미 300석을 받고 인당수로 몸을 던졌다. 그 전날 일이 참으로 비극적인데, 심학규가 본인의 딸이 인당수에 몸을 던지게 될 줄도 모르고 본인이 어젯밤 좋은 꿈을 꿨다면서 혹시 딸에게 [[황후]]라도 되는 거 아니냐고 기뻐하는데, 사실은 불길한 꿈이었던지라 심청은 속으로는 울먹이면서 "꿈이 참 좋습니다."라고 일부러 안심시켰다. 물론 심학규는 나중에 이웃집 아주머니인 귀덕어멈이 밝혀주는 진실을 듣고 심청이가 인당수에 빠지게 된다는 걸 알고는 대성통곡. 얼마나 애처로운지 장승상댁 부인[* 심청을 양녀로 들이고 싶어한 승상의 본처. 아들만 넷이라고 한다.] 뿐 아니라 뱃사공과 [[황주목]] 도화동의 마을 주민들도 안타까움에 그저 하나같이 눈물들만 적실 뿐이었다. 그 뒤 심청의 효심에 감복한 하늘은 용왕에게 물에 빠진 심청을 구하라는 명을 내렸고, 심청은 용궁에서 며칠동안 호의호식을 누리며 꿈에 그리던 어머니와 다시 만나며 행복한 한때를 보낸다. 이후 어머니와 작별하고, 용왕이 마련해준 연꽃배를 타고 다시 지상으로 올라가게 되었다. 물 바깥에서 심청을 구해준 황제를 만나 황후가 되고 맹인잔치를 벌여 그리워하던 아버지를 찾게 되었다. 그리고 심봉사는 딸과 재회한 기쁨에 눈을 번쩍 떴다. 이에 심봉사뿐만 아니라 다른 동료 맹인들도 모두 눈을 번쩍 떴다. 잔치 이후 심봉사는 딸과 재회하고 눈도 뜨고 황제를 사위로 두었으니 부원군이 되었고, 자신을 도와준 맹인 여인[* 점술을 업으로 하며 살아왔으며 자신과 심학규가 혼인할 것을 예지몽으로 알았고 그가 딸과 재회할 것 역시 심학규가 꾼 예지몽을 통해 알려주었다. 다른 판본에선 귀덕어멈과 결혼한다.][* 참고로 이 시점에선 눈을 떴다.][* 이 과정이 실로 흠좀무인 게, 꿈에서 해와 달이 바다로 떨어지는 것을 보고 '해와 달은 사람의 눈과 같은데 바다로 떨어졌으니 내 신랑 역시 맹인이겠구나'라고 예견했다는 것. 심학규가 딸 심청과 재회할 것 역시 전날 심학규가 '가죽으로 만든 북소리가 들리고 꽃잎이 떨어지면서 자신이 덩실덩실 춤을 춘' 꿈을 꿨는데 그녀가 '북소리는 큰 잔치에 초대받아 가게 될 것', 그리고 꽃잎이 떨어지는 것은 그리워하던 사람{여기서는 딸 심청}과 만나게 되는 것' 그리고 기쁨에 겨워 춤을 추게 될 것이란 해석을 해줬다. 그러나 심학규는 별로 크게 마음에 두지 않았다.]과 재혼하여 자식들도 두었으며 친구들과 팔도유람을 하면서 남은 여생을 행복하게 보냈다. [[황주목]]의 도화촌도 황후를 키워준 마을이었기에 황제의 명으로 주민들에게도 포상을 내렸고, 마을엔 효자 효녀들이 많이 나왔다는 내용으로 끝.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