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심형래/생애 (문단 편집) === 무모한 도전 === 그런데 그는 편안하게 생활 할 수 있는 기회를 걷어차버리고, 돌이킬 수 없는 오판을 하여 스스로 [[흑역사]]를 자초하게 된다. [[그런 짓은 하지 말아야 했는데 난 그 사실을 몰랐어|특별한 준비나 보강도 없이 영화 감독에 도전하기 시작한 것이다]]. 심형래나 동료들이 하는 말을 긁어 모아 보면, 심형래는 사실 초창기 시절부터 어느 정도 영화 제작에 관여하고 있었다고 한다. 동료 개그맨들의 캐스팅에서부터 시작해 코미디씬의 연출 등은 사실상 심형래가 전권을 쥐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심형래의 경우 어차피 흥행가두를 달리고 있는 '내 영화의 엑기스는 나의 코미디 실력+스타성+나의 개그 동료들'이라고 생각할 만도 한 것이다. 어떻게 보면 여러 흥행한 영화들로 돈도 많이 모았겠다, 남기남이나 김청기 등이 하는 영화 연출은 자신에게 있어서 쉬운 일로 보이기도 했을 것이다. 사실 심형래 외에는 많이 알려진 사례가 별로 없어서 그렇지 영화계에서 [[배우]]가 손수 제작 내지는 감독을 한 역사는 의외로 유구하다. 한국 영화의 개척자로 손꼽히는 [[나운규]]와 [[윤봉춘]], 전창근, [[이금룡]], [[전택이]] 등은 말할 것도 없고, 단역 전문배우 손전(1910 ~ 1999)은 1951년부터 14년간 5편을 연출했다. 1950년대 ~ 60년대를 빛낸 신사풍의 미남 배우 [[최무룡]]은 <피어린 구월산>과 <지하여자대학>, <덫> 외의 총 16편을 연출했고, [[김진규(배우)|김진규]]도 1967년작 <종자돈>을 연출하고 1971년에는 <[[성웅 이순신(1971)|성웅 이순신]]>을 제작한 바 있다. 액션배우 [[박노식(1930)|박노식]]도 전성기 말년에는 <악인이여 지옥행 급행 열차를 타라>나 <애꾸눈 박>, <용팔이 시리즈>의 일부 작품[* <방범대원 용팔이>, <돌아온 용팔이>.] 외의 액션영화들을 14편이나 연출했고,[* 이 중 본인이 주연까지 한 건 총 12편이다.] [[허장강]]도 1966년 <내청춘 황혼에 지다>를 기획했다.[* 특히 그 둘의 아들 [[박준규(배우)|박준규]]와 [[허준호]]가 모 [[토크쇼]]에서 한 말에 의하면 어릴 때 두 사람이 같이 크고 같이 사고치고 '''집안도 같이 망해서''' 더 친하다고 한다.] [[신성일]]도 1971년 <연애교실>을 시초로 감독을 맡아 총 4편을 연출했다. 그 외에 '얄개스타' [[손창호]]는 1990년 <동경 아리랑>을, [[조춘(배우)|조춘]]과 김유행은 같은 해 쌍라이트 형제 시절 <땡칠이와 쌍라이트>를 각각 제작했고, 전설의 여배우 [[최은희(배우)|최은희]]도 남편 [[신상옥]]처럼 영화 감독을 하여 <민며느리> 등 총 3편을 연출했다. 최근의 사례로는 2008년작 <[[똥파리(영화)|똥파리]]>를 연출한 [[양익준]]과 <[[요술#s-4|요술]]> 외 8편을 연출한 [[구혜선]], 2013년에 [[톱스타(영화)|톱스타]]라는 영화를 연출한 [[박중훈]] 등이 있다. 또 분야는 다르지만 연극계에선 [[변기종]]과 [[이해랑]], [[김동훈(1939)|김동훈]], [[유인촌]], [[김성찬(배우)|김성찬]], [[송승환]] 등처럼 극단을 직접 차리거나, 대표 내지 연출을 맡은 사례도 있다. 또한 [[코미디언]] 출신으로 [[영화 감독]] 및 주연을 맡았던 경우도 여럿 된다. 우선 선배 [[서세원]]이 후배 심형래보다 먼저 희대의 [[흑역사]] [[납자루떼]]를 감독했다가 쫄딱 망하고 나서 [[조폭 마누라]]의 제작자로 잠깐 성공했다가 감독으로 다시 말아먹었던 [[도마 안중근]]이 있고, [[이경규]]가 감독 겸 주연을 맡아서 제작한 [[복수혈전(한국 영화)|복수혈전]]이나 심형래가 나온 [[유머 1번지]]의 대표 코너 <내일은 챔피언>을 영화화한 [[전유성]] 감독[* 전유성은 '칙칙이의 내일은 참피온'의 흥행 실패 후 비디오용 어린이 영화 감독으로 전환했다.], <공포특공대>를 만든 [[김정식(코미디언)|김정식]] 감독, 그리고 개그맨 출신이면서 한국영화협회 정회원인 [[박세민]] 감독이 "신사동 제비", "토요일 밤부터 일요일 새벽까지"란 영화를 만들었다. <신사동 제비>는 서울 관객 1만 7천명으로 실패한 것은 물론 영화의 존재를 아는 사람도 적고, 박세민 본인이 인터뷰에서 밝히기를 '신사동 제비'의 실패로 엄청난 빚이 생겼다고 한다. 이후 '토요일 밤부터 일요일 새벽까지' 등의 비디오용 [[성인영화]]로 발길을 돌렸다. 이처럼 '''이들 모두 영화 흥행에는 실패했고 영화 감독 경력은 이들의 커리어에서 흑역사로 남았다'''. 개그맨 출신으로 영화계에서 그나마 성공을 이룬 사람은 1990년대 [[SBS]] 개그 프로그램 [[좋은 친구들(예능)|좋은 친구들]]에서 '헐리웃 통신'이라는 코너를 맡았던 [[장진(영화 감독)|장진]]으로 볼 수 있다. 장진은 본래 구성 작가로 활동하다가 특채 개그맨으로 발탁되었는데, 그가 맡았던 코너 '헐리웃 통신'은 초창기 영화 패러디 코메디였으며, 바바리코트 차림의 장진이 한강다리 앞에 서서 '여기는 [[금문교]]가 내려다보이는 [[샌프란시스코]]입니다'라거나 남산 타워를 배경으로 '여기는 [[파리(프랑스)|파리]]입니다. [[에펠탑]] 아래서 [[칸 영화제]] 소식 전해드립니다' 따위의 멘트를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전하는 것으로 인기를 끌었다. 후에 장진은 [[신춘문예]]를 통하여 시나리오 작가로 데뷔하고, 나중에 작가, 감독, 제작자로 모두 대성공하였으며, 후배들을 키워내 소위 '장진 사단'을 만들어내기까지 했다. 그러나 서세원을 제외하고는 다른 이들은 심형래처럼 후술할 만한 사건 및 논쟁을 고의로 일으키지 않았다. 더불어 [[서세원]]도 심형래 못지 않게 논쟁 및 범죄까지 아주 화려한 전적들이 많긴 하다. 조폭 마누라가 성공할 당시 서세원이 하던 말은 [[D-WAR]] 때 심형래 수준이었으며, 이후로 프리미어 엔터테인먼트 인수 과정에서의 안 좋은 일들, [[탈세]], [[가정폭력]] 같은 여러 일들로 역시 [[범죄]] 및 논쟁거리를 여럿 만들었고, 2014년에는 [[이승만]]에 대한 영화를 만든다면서 하던 말로 역시 심형래와 똑같이 한국 영화계가 자신을 죽이려 들었다는 망상과 허세나 되풀이하고 있다. 상세한 건 [[서세원]] 및 [[서세원/논란 및 사건 사고]] 문서 참고. 반면에 이경규 같은 경우는 [[배우]]와 영화의 분위기가 전혀 맞지 않아서 망했을 뿐 각본 자체는 꽤 준수한 편이였다. 이경규는 복수혈전에서 연기력도 꽤 준수했고, 대본도 당시 한국 영화 치고는 상당한 수작에 속했음에도 '''[[코미디언|본인의 본업]]'''이 복수혈전 흥행 최대의 걸림돌로 다가왔다. 진지해야 하는 장면도 관객들이 단지 이경규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폭소를 터뜨린 게 아쉬웠던 점이었다. 그러니 되려 심형래가 주장한 '개그맨에 대한 전업 편견'은 오히려 이경규가 할 말이지, 자신이 주연도 하지 않은 용가리와 디워로도 말아먹은 심형래는 편견에 대해 말 할 자격도 없는 것이다. 그리고 이경규가 이후 제작자로 참여한 [[복면달호]]나 [[전국노래자랑(영화)|전국노래자랑]]도 대박을 딱히 터뜨린 적 없어서 그렇지, 적어도 [[금지어]]로 낙인 찍힐 만큼 본분을 망각한 짓을 이경규가 저지른 적은 전혀 없다. 원래 영화계가 [[드라마]]나 방송 쪽을 본인보다 급이 낮은 곳들로 보고 인정을 안 할 정도로 자존심이 높은 곳이고, 어느 분야나 텃세라는 것은 있게 마련이다. [[일본]]의 [[기타노 다케시]]도 코미디언 출신으로 처음 영화를 만들 때는 영화계에서 비웃었고 인정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당당하게 결과물, 즉 영화의 작품성으로 그런 편견을 깨고 인정을 받았다. 결과물인 심형래의 영화가 적어도 평작 이상의 퀼리티였다면, 그의 이런 코미디언 출신이라는 편견과 영화계에서 비주류 취급을 받고 평가절하 되는 것에 대해 설득력을 얻었을 것이다. 그러나 정작 심형래가 내놓은 영화는 헛웃음만 나오는 수준의 질떨어지는 3류 작품들이었다. 기본도 안 된 작품이나 주구장창 만들어놓고, 단지 본인이 코미디언이라는 편견 때문에 영화계에서 인정을 받지 못한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한 것이다. 냉정하게 말해서 심형래가 내놓은 수준의 작품 퀼리티로는 코미디언이 아니고 정식으로 영화를 배운 감독이었어도 영화계에서 인정을 받을래야 받을 수가 없다. 먼저 작품의 질부터 높이고 실력을 결과물로서 보인 이후에 그런 이야기를 해야 말의 설득력도 있고, 나아가 영화계에서도 심형래를 인정할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