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십상시 (문단 편집) == [[십상시의 난]] == 한편 기어이 대립 관계에 놓인 외척 [[하진(삼국지)|하진]]까지 척살하는 위용을 보였으나... 하진을 척살한 건 오히려 패착으로 작용했다. 적절히 우유부단한[* 무능한 이미지가 강하지만 정사에선 정치적인 감각이 좋고 인격도 훌륭한 인물이었다. 다만 우유부단하다는 결점 하나가 결국 목숨을 빼앗았다.] 하진이 휘하의 [[군웅]]들을 통제하고 있는 판국이었는데, 그가 죽으며 군웅들이 더 이상 눈치 볼 이유가 없어진 것. 당시 중국의 수많은 군웅 세력들은 '''하나의 [[수류탄]]'''이나 마찬가지였고 하진은 '''이 수류탄의 안전핀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근데 그 안전핀을 제거해버렸으니 이후 벌어질 일이야 뻔했던 것. 그리고 '''"[[정치]]적 감각이 좋고 인격도 훌륭했지만 우유부단했다."'''는 하진에 대한 평가 자체에 조금 흥미로운 면이 있다. 하진이 우유부단하다는 평가를 받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충분히 십상시를 [[숙청]]할 힘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숙청하지 않았고, 결국 그 십상시에 의해 살해당했다'''는 것인데 하진의 입장에서 합리적,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면 십상시들이 자신을 공격할 것이라고 여길 이유가 전혀 없었다. 환관들은 다 잡아죽여버리겠다고 벼르는 청류파 강경파들이 군사력까지 쥐고 있는 상황에서 강경 청류파의 폭발을 막고 있는 유일한 안전판이 하진 자신이었는데 왜 십상시가 자신을 죽일 것이라고 생각하겠는가? 정상적인 상황에서 상식적인 인간이라면 대부분 '절벽 끝에 매달려 있는 저 놈이 자기 몸을 유일하게 지탱해주는 밧줄을 자기 손으로 자를 것'을 염두에 두고 계획을 세우지는 않는 법이다. 물론 십상시를 숙청하지 않은 것 외에도 하진의 행보 자체가 원소의 헌책이나 하태후의 반대 및 기타 여러 입장들 사이에서 좀 왔다갔다 하는 경향이 있었기에 '''단호한 과단성을 갖추었다'''고는 전혀 보기 힘든 인물이긴 하지만 당시 하진의 경우 딱 잘라 명확한 입장을 취하기는 힘든 처지였다는 점도 감안해줘야 한다. 하진의 핵심 참모격이었던 원소 같은 경우야 명명백백한 청류파적 입장에서 십상시의 철저한 숙청을 주장했지만 하진의 경우 청류파의 지지를 얻고 있기는 하나 청류파라고 보기는 힘든 외척의 입장이었고, 선황제의 고명을 받았다는 것을 자기 권력의 정당성으로 삼은 처지에서 황실(= 하태후)의 입장을 완전히 무시할 수 있는 처지도 아니었다. 말하자면 일단 십상시를 꺾어서 무력화해야 한다는 수준에서는 청류파와 협력하는 입장이었지만 환관 세력과 절대 타협할 수 없다는 청류파의 입장과는 달리, 환관 세력이 적절한 선에서 굴복하기만 한다면 환관 세력까지 포용한 안정적인 정국을 지향하는 것이 오히려 더 나을수도 있었다.[* 한나라의 체제 특성상 환관 세력을 정치적으로 완전히 배제하기는 쉽지 않았고, 환관 세력이 완전히 무력화 될 경우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정국의 균형이 쉽게 무너질 위험도 있었다. 또한 단기적으로도 환관 세력을 일소해 버릴 경우 원소를 비롯한 청류파의 세력을 견제해 줄 안전 장치가 없어져 하진이 오히려 휘둘리게 될 수도 있었던 것.] 이런 점을 감안할 때 하진의 우유부단함 중에서도 일부분은 '''그가 [[정국(동음이의어)|정국]]의 안정을 지향하는 "조정자"의 입장에 있었어야 했다'''는 것 그리고 그의 협력자인 [[원소(삼국지)|원소]] 등 강경 청류파가 보여준 [[극단주의]]적 과격성과 그가 상대해야 하는 십상시 등 [[환관]] 세력이 보여준 현실 파악 능력 전무의 멍청함을 통해 "꼭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은 우유부단함이라기보다는 '''합리적인 온건파 노선이 결과적으로 실패한 것'''"으로 변호받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진이 군웅들의 목줄을 잡고있는 상황에서 '''하진이 척살되자 그의 부하로 있었던 [[원소(삼국지)|원소]]와 [[원술]]한테 [[소드마스터 야마토|단 몇 페이지 만에 전원 몰살당했다.]]'''[* 판본에 따라 다르겠지만 적어도 절정에 치솟으려는 순간에 끔살당한 건 대부분 같다.] 단규와 우두머리인 장양은 그나마 좀 오래 살았다. '''한 길어야 10페이지 정도?''' 근데 얘들도 당시에 소년이었던 [[후소제(후한)|소제]]와 [[헌제|진류왕]] 형제를 데리고 튀다 잡혀 끔살됐다는 정도만 추가되었을 뿐이다. 또한 하진 사후에 군권으로 휘어잡지 못하고 황명만을 믿고 있던 것도 패착이었다. 십상시의 패악질이 이미 도를 넘었고, 군권을 가지고 있던 [[원소(삼국지)|원소]]나 조조들도 황명이 황명으로 보이지 않았던 것. 이렇게 군웅들이 황명을 무시하고 직접 행동에 나선 순간부터 이미 [[군웅할거]] 시대로 접어들었다고 보면 된다. 그나마 십상시가 한 행동 중에 유일하게 잘한 게 딱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지방 토호들을 중앙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막은 것이다. 하지만 원소 등이 십상시를 죽여버리자 서량 쪽 토호였던 [[동탁]]이 조정으로 들어오는 결과를 초래했고, 그 결과 동탁 마음대로 [[후소제(후한)|소제]]는 폐위되고 [[헌제]]가 옹립되기에 이르렀다고는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이조차도 십상시의 공적이라 해야 할지는 의문'''이다. 십상시가 건재하던 시기에 지방 토호들이 중앙정부, 즉 낙양의 조정으로 진입하지 못했다는 것은 그때까지는 조정의 권위와 위력이 어느정도 건재했기에 지방 토호들이 이를 위협하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조정의 위세를 지탱한 것이 과연 십상시인가?"라는 질문을 던질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이 질문에 대해서는 그리 긍정적인 대답이 나오기는 힘든 것이, 물론 십상시 역시 당시 한나라 조정의 주요한 구성원 중 하나라는 점은 인정해 줘야 하겠으나 이들의 절망적인 실무 능력[* 특히 위기 극복 능력.]을 생각하면 당시 위기로 치닫던 한나라 조정을 지탱하는데 한해서만 특별히 비범한 능력을 발휘했을 것이라는 기대는 아무리 생각해도 터무니없어 보인다. 차라리 군권을 장악하고 정치적 균형 감각도 상당하던 하진과 그 파벌이 조정의 기둥 역할을 했을 것이라는 기대가 더 현실적이다. 오히려 십상시의 경우는 한나라 조정의 통치 명분과 정당성을 저해하는 심각한 도덕적 흠결, 즉 지방 토호들이 중앙정부의 권위를 무시할 때 내세울 수 있는 명분[* 나쁘게 말하면 핑곗거리] 역할을 했을 가능성이 더 높으며, 무엇보다도 한나라의 중앙권력이 완전히 붕괴 수순에 들어가는 첫 계기를 만든 것이 십상시들 자신이라는 것도 생각해야 한다. '''원소 등이 십상시를 죽여버린 사태'''의 원인에는 '''십상시가 하진을 죽여버린 사태'''가 있다는 것. 즉, 동탁과 같은 군벌[* 혹은 군사력을 가진 지방 토호 세력]이 중앙정부로 진입할 수 있던 것은 궁정 반란으로 조정이 사실상 붕괴해버렸기 때문인데, 이 '''궁정 반란을 먼저 일으킨 것은 어디까지나 십상시'''인 것이다. 물론 철저히 십상시의 관점으로 역사를 해석한다면 "어쨌건 십상시가 선수를 쳐서 하진을 제거하는데 성공했으니, 원소등의 청류파는 한나라를 위해 스스로를 희생하여 순순히 모든 권력을 다 빼앗기고 고분고분 몰살당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러면 십상시가 중앙정부를 접수할 뿐 그 권위 자체가 붕괴하는데까지 이르지는 않았을 것이다."라고 말할 수도 있겠으나, 이런 편파적인 해석에 동의할 이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