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싱가포르인 (문단 편집) == 근현대 싱가포르 대량 이민과 정착 == 원래 싱가포르는 말레이 국가로 말레이인이 원주민이었으나 숫자는 적었다. 조호르 술탄국의 부속도서로 원래 밀림만이 우거진 풀라우 우종이라 부르는 보잘 것 없는 섬이었다. 19세기 스탬퍼드 래플즈 경의 상륙 후 싱가포르가 [[영국]]의 지배를 받으면서 [[중국계 싱가포르인|중국인]], [[인도계 싱가포르인|인도인]]들이 [[쿨리]]로 이주했다. 이들은 섬 개간을 위해 이주했는데 특히 말레이 반도에 안 그래도 많이 유입되던 중국계 쿨리가 다수였다.[* 영국의 지배 당시 쿨리를 이주시켜서 수 많은 [[중국인]]이 이주한 영향으로 중국계가 다수를 차지한다.] [[중국계 싱가포르인]]들은 전원 [[중국]] 남부, [[홍콩]], [[대만]]에서 이주했고 [[인도계 싱가포르인]]들은 [[인도]] 남부에서 이주했다. [[대한민국|한국]]에서 생각하는 [[중국인]]인 [[산동성]]이나 [[베이징]] 등 북방 출신 중국인들은 없다고 보면 된다. 북인도 출신처럼 보이는 사람들은 요즘 이민 온 [[인도인]]이나 [[파키스탄인]] 노동자들이다. 20세기 중반에 [[싱가포르]]가 [[말레이시아]]와 함께 [[영국]]의 지배에서 벗어난 뒤, 잠시 말레이 연방에 속했다. 하지만 말레이 연방 내의 화교가 많이 있어서 인종 문제가 생겼다. 말레이 연방은 [[중국계 싱가포르인]]을 견제하기 위해 [[싱가포르]]를 독립시켰다. 사실 원래 페낭 섬과 이포에서 독립여론이 강했으나 이 둘은 독립하지 못했고 독립 의지가 없던 [[싱가포르]]를 축출했는데 이게 [[1965년]]의 일이다. 이때 [[리콴유]]는 대국인 말레이 연방에서 덥석 쫒겨나 나라 구실을 못 하는 소국으로 전락하자 눈물을 흘릴 정도였다. [[도시국가]]로서 홀로 생존이 버거운 게 당연해서였다. 특히 막막한 건 당시만 하더라도 형편없이 낮았던 [[싱가포르/경제|경제력]]으로 빈곤 문제가 심했고 인종 간 갈등도 마찬가지였다.[* 당시만 해도 [[중국계 싱가포르인]], [[인도계 싱가포르인]], [[말레이인]]은 서로 거주지가 달라 섞이지 않았다. [[중국계 싱가포르인]]은 탄종 파가와 티옹 바루 일대에, [[인도계 싱가포르인]]과 [[말레이인]]은 부기스와 칼랑 일대에 살았다.] 그래서 [[리콴유]]는 [[말레이시아]]와 척을 지지 않으려 애를 쓰는 한편 다시는 인종 문제로 나라가 분열되지 않게 강력하게 혐오 표현이나 인종차별 표현 등을 규제하면서 통합을 강조했고, [[싱가포르]]를 [[영미권|영어권]]으로 규정했다. 그리고 [[중국계 싱가포르인]]이 다수라지만 타 민족도 상당수 어울려 사는 [[미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와 같은 다민족 국가를 표방했다. 사실 공영주택인 [[HDB]] 프로그램 역시 분리되어 있는 다양한 민족들이 같이 살도록 만든 것이었다. 당시 공영주택을 교외 지역에 만든 후 [[중국계 싱가포르인]]이 모여 살던 탄종 파가, 센튼 웨이, 클락키, [[인도계 싱가포르인]]들이 모여 살던 리틀 인디아와 도비 고트 등을 재개발하고 [[도심|도심 중심 지구]]로 개편하고 외곽 지역인 비샨, 주롱, 퀸스타운, 유노스, 칼랑, 초아추캉, 창이, 탐피네스 등에 공공임대주택인 [[HDB]]를 만들었다. 그리고 도심 내 포장마차는 정리하고 그 자리에 호커 센터와 같은 [[재래시장]]으로 재개발하거나 [[호주]], [[뉴질랜드]] 등과 같이 도심 [[쇼핑몰]]을 만들면서 화합을 추구했고 학교 교육 역시 [[영어]] 위주 수업, 다양한 인종을 혼성해서 반 편성, 인종차별성 학교폭력 엄벌 등을 시행했다. 도시 디자인 등도 중국식이나 말레이 방식이 아니라 [[영국]], [[호주]], [[뉴질랜드]] 방식으로 디자인해서 잔디밭이 곳곳에 깔린 도심 속 녹지를 설치해 정원국가를 표방했다. 그 결과 [[싱가포르]]는 콘크리트 정글로 숨막힌단 평가를 받는 [[중화권]]의 대도시들보다 녹지율이 높다. 이러한 법 덕분에 [[싱가포르]]에서는 마천루를 지으면 그 면적에 상응하는 정원을 가꿔야 한다. 그래서 옥상 정원이 많이 있고, 넓은 녹지가 많다. 그리고 [[싱가포르]] 도심에 가면 [[항구]]나 도심 지역, 주거 지역이 아닌 이상 녹지가 많다. [[싱가포르]]는 [[대만]], [[홍콩]]처럼 야시장 문화가 발달한 것도 맞지만 전반적으로는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와 비슷하게 [[쇼핑몰]]이 지역 소중심지 역할을 한다. 그리고 [[쇼핑몰]] 안에 대형마트, [[백화점]] 등이 있고 [[싱가포르 MRT|지하철]] 역과 접근성이 좋은 것도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이렇게 이 나라는 철저히 [[중화권]] 국가임을 부인하고 [[아세안]] 회원국이자 [[호주]], [[뉴질랜드]] 등 주변 영미권 국가들처럼 [[영미권]] 다민족 국가임을 강조했다. 그래서 독립 직후부터 [[미국]], [[영국]]과 우호적인 관계를 꾸렸다. 결과적으로 독립 후 20년이 지나자 싱가포르는 그대로 [[영미권|영어권]] 국가에 아세안 회원국으로 자리잡았고 중화권으로는 분류되지 않아 중국과 거리를 두는 데 성공했다. 사실상 [[중국]]과 거리를 두면서 [[중국]]과 관계가 좋지는 않았지만 경제적 이유로 중국과 수교했다. 그러면서도 정치외교적 관계는 [[대만]]과 밀접히 맺어 [[대만]]에서 [[싱가포르군]]이 훈련할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했다. 이러한 민족 통합 정책 그리고 자주국방 덕에 싱가포르는 말레이 연방에서 독립된 뒤 지리멸렬한 개발도상국 신세가 된 [[말레이시아]]와 달리 [[1970년대]] 신흥공업국으로서 [[아시아의 네 마리 용]]이란 이름을 얻었다. 이들 중 [[1980년]]에 접어들자 네 마리 용 중에서 [[싱가포르]]와 [[홍콩]]이 선진국이 되었고 [[1990년대]]엔 [[대만]]이 그리고 [[2000년대]]엔 [[대한민국|한국]]이 선진국에 진입했다. 반면 민족 갈등과 극단주의가 판치는 [[말레이시아]]는 [[싱가포르]]를 축출해놓고 오히려 민족 간 불신과 타도로 혼란에 빠져 아직까지 중진국에 머물며 주저앉아 버렸다. [[싱가포르]] 독립 당시 [[말레이시아]]가 [[싱가포르]]를 원조해 주었는데 이제는 [[말레이시아인]]들이 [[조호르바루]]에서 일자리를 찾아 싱가포르를 통근하는 처지다. [[조호르바루]] - [[싱가포르]] 국경인 우드랜드나 투아스는 아침마다 말레이시아에서 싱가포르를 출퇴근하는 조호르 주 사람들로 몸살을 앓는다. 더구나 타 지역 [[말레이시아인]]들도 [[싱가포르]]로 이주하는 사례가 많다. [[중국계 말레이시아인]]들을 중심으로 페낭 등에서 새로운 이민이 자주 들어오고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