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쌀 (문단 편집) === 한국의 쌀 생산 === 한국사 전체를 통틀어서 쌀이 남아도는 시대는 1970년대 이후 현재까지를 제외하면 없었다고 볼 수 있을 정도로 늘 쌀이 부족했었다.[* 사실 한국뿐만이 아니라 전근대 어느나라도 식량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프리츠 하버]]가 질소 비료를 개발한 이후에나 식량 문제에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 보통 평년작보다 생산량이 5~10% 늘어나면 풍년, 그만큼 줄어들면 흉년이라고 했다. 하지만 풍년이 들어도 쌀이 남아돈 적은 없었다고 한다.] 옛말에 '가난은 나랏님도 구제 못한다'는 속담도 있었을 정도니. 1950년대 중반부터 1960년대까지 베이비붐으로 인구는 매년 3%씩 크게 늘어나는데 반해 쌀 생산량은 답보를 거듭하면서 쌀 부족 문제가 갈수록 심각해졌다. 당시 한국은 [[보릿고개]], 절량농가[* 絶糧農家. 식량이 떨어져 밥을 먹지 못하는 농가를 의미한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식량사정이 나빴다. [[박정희 정부]]는 쌀 증산을 위해 [[통일벼]]를 개발해 보급했고, [[1976년]] 기다리고 기다리던 쌀 자급에 성공했다. 수확량은 3621만 석이었다. 자급 달성을 자축하기라도 하듯, [[박정희]] 대통령은 이 해 11월 쌀 소비 억제 정책의 키워드와 다름없었던 무미일을 폐지했다. 이후로도 풍년은 계속돼 [[1977년]]엔 쌀 생산량이 4천만 석을 돌파해[* 쌀 자급률이 113%를 웃돌았다.] 명실상부한 세계 최고 다수확국가의 반열에 올라섰다. 쌀 대풍을 기념하기 위해 대통령은 이 해 12월 4천만 석 돌파 기념탑을 세웠으며, 농촌진흥청을 방문해서는 쌀 자급 달성의 기쁜 마음을 표현하기라도 하듯, '녹색혁명 성취'라는 휘호를 남겼다. 정부는 “녹색혁명 성취”를 선언하고, 쌀의 생산량이 국내 수요를 초과하여 해외에 수출도 하게 되었음을 대대적으로 홍보하였다. 쌀이 남아돌자 박 대통령은 쌀 [[막걸리]] 제조를 금지한 지 14년 만인 [[1977년]] 12월 쌀 막걸리 제조를 허가했다. 쌀 막걸리의 등장은 그 해 10대 뉴스에 포함될 만큼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한국인]]들은 쌀의 자급자족 성공으로 [[보릿고개]]나 혼식/[[분식]] 장려 운동, 무미일, 절미운동 같은 단어들을 기억의 창고 속에 보관해 놓고, 가장 먼저 그동안 한이 맺혀 있던 흰 [[쌀밥]]을 배부르게 먹는 데 소비하기 시작했다. 통일벼는 냉해에 약하다는 약점이 있었는데, 1980년 최악의 냉해로 통일벼는 엄청난 타격을 받았다. 1980년은 쌀 생산량이 30% 감소한 최악의 [[흉년]]이었다. 1981년 통일벼 강제 정책이 폐기되었고, 식량난이 어느 정도 해결 국면으로 접어든 1980년대가 되자 맛이 없어서 통일미는 당연히 소비자들로부터 외면당했다. 쌀 농사는 1977년 [[풍년]] 이후 1980년에는 냉해 피해를 입기도 했지만 1981년부터 1985년까지 해마다 풍년이 들었고 이때부터 쌀이 남아돌기 시작해 쌀 증산이 아닌 감산 요구가 한민족 역사상 최초로 나오기 시작했다. 한국의 쌀 생산량은 1988년을 정점으로 꾸준히 감소 중이다. 심지어 2020년에는 쌀 생산량이 최악의 흉년이었던 1980년보다 적어져 통일벼 개발 이전인 1960년대 수준으로 감소했다. 그럼에도 식량 위기 소리가 전혀 안 나온다는 점은 그만큼 한국인들의 소비 곡물이 다양화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마찬가지로 벼 재배 면적도 1987년을 정점으로 꾸준히 감소 중인데, 2018년 73만 8천 헥타르로 2017년 75만 5천 헥타르보다 2.2% 줄어들었다. 농업기계화는 매우 많이 일어나 있다. 미국이 그 많은 노예를 수입한 이유는 목화농사 때문이었는데 오래전에 콤바인으로 대체되었다. 포도알에 조그마한 상처만 생겨도 와인으로 못 쓴다는 와이너리에서도 기계화가 되어 수확한다. 그저 그만큼의 장비를 쓰기에 대형화되지 않은 한국의 산악지형으로 인한 지리적, 규모의 경제, 농업기업과 대농의 부재, 소형및 개인화의증가 라 잘 안보이는 것 뿐이다. 그나마 쌀농사는 논의 특징상 땅의 모양은 네모반듯하지 않더라도 반드시 평지화해야만 물을 가둘 수 있어서 기계화가 쉬웠던 것이다. 즉, 농업이라는 산업 자체의 기계화가 어려운 것이 아니라 그 기계를 제대로 써먹기가 쉽지 않은게 한국의 현실인 셈. 쌀농사는 대단히 기계화가 잘 되어 있다. 파종단계에서 규격화된 모판을 사용하고, 이 모판을 그대로 이앙기에 실어 모내기를 한다. 이후 콤바인을 사용하여 수확을 하는데 현재 콤바인은 베어낸 후 바로 낱곡을 털어내고 지나간 자리에 볏짚을 일정 크기로 묶어 배출하기 때문에 주된 상품인 쌀뿐만 아니라 부산물인 볏짚도 상품화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