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이동문서 삭제토론 쑨촨팡 (문단 편집) == 여담 == || {{{#!wiki style="margin: -6px -10px" [[파일:쑨촨팡과 시쟝자오.jpg|width=100%]]}}} || || 쑨촨팡과 스젠차오 || 쑨촨팡을 살해한 [[스젠차오]]는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은 오로지 아버지의 원수를 갚으려고 총을 쏘았을 뿐이니 두려워말라며 자신의 거사에 대해 설명한 전단을 배부하고 자수했다. 전국적으로 스젠차오를 동정하는 여론이 지배적이었으며 오히려 함부로 사람을 죽이는 등 악행을 밥먹듯 일삼아서 평가가 좋지 않던 쑨촨팡을 죽인 일에 대해 통쾌해하는 사람이 많았다. [[펑위샹]], [[리례쥔]], [[장쥐]]를 비롯하여 사회의 명사들이 스젠차오에 대한 선처를 호소했으며 전국적인 동정여론이 불어닥쳤다. 그 결과 스젠차오는 유기징역 7년의 관대한 처분을 받았으며 그나마도 1936년 10월 20일에 특사로 불과 1년만에 풀려났다. 이후 [[중일전쟁]]과 [[국공내전]]을 거쳐 [[중화인민공화국]] 시절까지 생존했으며 1957년 베이징 정협위원에 임명되기도 했고 1979년까지 천수를 누리다 병환으로 사망했다. 쑨촨팡이 죽은 직후 일본 제국은 끝내 한간 [[인루겅]]을 포섭하여 [[기동사변]]을 획책, [[지둥방공자치정부|기동방공자치위원회]]를 수립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