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쑹메이링 (문단 편집) === 에피소드 === 쑹메이링의 내면을 연구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인데 [[서안 사건]] 같은 예외적인 사건이 아니면 자신의 인생을 회고하는 기록을 거의 남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장제스의 전처인 천제루가 자신을 공격하는 내용을 담은 회고록을 출판했을 때도 침묵으로 일관했을 정도였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songmr1.jpg|width=100%]]}}} || 대단히 매력적이었던 여성으로 동•서양을 막론하고, 그녀를 만나 본 사람들은 그녀의 매력에 대해 군말없이 인정했다. 쑹메이링을 본 장제스의 전처인 천제루는 상하이의 잡지 화보에서 그대로 걸어나온 것 같다고 평가했고, 소련의 고문이었던 [[미하일 보로딘]]은 한때 그녀에게 반해서 헤롱대기도 했다. 쑹메이링을 '황후 폐하'라고 부르며 주제도 모르고 설치는 사람 정도로 봤던 미국의 장군 [[조지프 스틸웰]]도 쑹메이링이 대단히 매력적이고 영리한 여성이라는 것을 인정했으며, 미국 대사관 무관인 데이비드 배럿은 그녀를 숨구멍마다 매력을 발산하는 여인이라고 호평했다. 그녀가 워싱턴을 방문했을 때는 백악관 기자회견에서 172명의 기자와 부통령 헨리 월리스 그리고 루스벨트 부부를 완전히 휘어잡았다. 당시 중국 전선을 무시하던 미군 수뇌부는 쑹메이링 때문에 미국의 군사전략이 완전히 뒤바뀔지 모른다고 불안에 떨었을 정도였다. 1943년 이집트의 [[카이로]]에서 쑹메이링과 만났던 [[윈스턴 처칠]]도 그녀에 대해 범상치 않고 매력적인 여성이라고 표현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루스벨트]] 대통령은 그녀를 요부라고 부르며 그녀의 곁에 앉는 것도 꺼렸다. 이렇듯 쑹메이링은 개인적인 매력이 대단했으며 자신을 민주주의의 수호자, 중국 기독교 정신의 전파자, 반파시스트 투사로 포장하여 대단한 인기와 영향력을 얻어내곤 했다. 미국 대통령 부인인 [[엘리너 루스벨트]]와 절친했는데 이는 쑹메이링이 루스벨트의 아들 제임스가 중국 방문 중 위궤양 수술을 받고 입원했을 때 특별히 지시를 내려 몸조리를 잘 하도록 도왔기 때문이었다. 쑹메이링이 미국을 방문하던 중 늑골 부상과 위병으로 잠시 입원하자 엘러너 루스벨트는 세 번이나 병문안을 오기도 했고, 쑹메이링을 딸로 삼고 싶었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장제스가 유독 독설과 욕을 많이 하는 바람에 통역 담당이었던 쑹메이링은 이를 필터링하느라 고생했다고 한다. 또한 장제스가 영•미연합군의 장성들에게 매우 공격적이고 직설적인 요구와 의견을 서슴지 않아서 이를 무마하느라 고생했다. 예컨대 장제스는 [[루이 마운트배튼]] 장군을 만나서 연합국의 지원이 미비함을 질타했는데 마운트배튼 장군이 [[몬순]] 기간에 [[히말라야 산맥]]을 넘어 물자를 공수하는 일이 어려워서 그렇다고 답변하자 장제스는 지금 중국에선 수천만 명이 아등바등 죽어가는데 내가 그까짓 몬순이라는 변명이 알게 뭐냐는 요지로 화를 냈고, 장제스의 너무도 공격적인 발언에 당황한 쑹메이링은 마운트배튼에게 장제스가 몬순이 뭔지 몰라서 저러는 것이라고 변명했다. 물론 장제스가 몬순이 뭔지 모를 리가 없었지만 이후 장제스는 한동안 '몬순도 모르는 무식쟁이'라는 오명을 얻게 되었다. 다만 몬순 기간엔 일반 알보병도 이동이 힘들기에 장제스가 무식하게 말한 건 사실이다. 동북의 제2대 군벌이었던 장쉐량과 연인 관계라는 설이 있다. 훗날 쑹메이링이 죽은 후 남은 편지에서 쑹메이링이 장쉐량에게 보낸 편지를 보고 사람들은 경악했는데 연금지의 장쉐량에게 보낸 편지가 남편 장제스나 장징궈, 자손들에게 보낸 것을 합한 것보다 많았다고 한다. 장쉐량도 오랜 연금에서 풀려나면서 자신이 살아있는 건 쑹메이링 덕이라고 했다. 다만 쑹메이링이나 장쉐량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학자들에게는 별로 관심이 없는 것으로 보아 단순한 야사 정도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95601E39-AD20-4A1A-847F-290273653E7F.jpg|width=100%]]}}} || ||<-2>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쑹메이링_훈장.jpg|width=100%]]}}} ||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지원한 공로로 1966년 [[박정희]] 대통령의 집권 시절 대한민국 [[건국공로훈장]] 중장(1등급, 현재의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받았다. 장제스가 임시정부를 지원한 것과 별개로, 그녀의 개인적인 지원이 20여년 만에 대한민국 정부에 의해 공로로서 인정된 것이다. 실제로 그녀는 1932년 [[윤봉길 의거]] 당시 [[한인애국단]]에 후원금 10만원을 지원했으며 1940년에는 [[광복군]] 후원금으로 10만원을, 그리고 1942년에는 광복군 출정군인 가족들에게 10만원을 지원했다. [[2019년]] [[유관순]]이 대한민국장을 수훈받기 이전까지 유일한 여성 대한민국장 수훈자이기도 했다. 그래서 한 때 수많은 한국인 여성 애국지사들을 다 제치고, 외국인인 쑹메이링 혼자 대한민국장 수훈자일 수가 있냐고 비판하는 여론이 생성되기도 했다. 하지만 한국 독립을 정식으로 언급한 [[카이로 회담]]에서 [[장제스]]의 통역사가 쑹메이링이었다는 사실때문에 그녀가 한국 독립에 끼친 영향은 어마어마했다는 건 한국에서도 인정하는 편이다. 사상 초유의 용병 공군부대인 [[플라잉 타이거즈]]의 탄생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중국은 일본과의 전쟁 초반에 공군력을 상실했기에 군사적으로 매우 곤란한 상황이었는데, 아직 미국이 본격적으로 전쟁에 참가하기 전에 미국인들을 설득해서 돈을 받고 모인 용병부대라는 형식으로 공군 부대를 창설했고, 바로 이들이 종전시까지 맹활약을 펼쳤다. 그 밖에도 미국의 지원을 얻어내는 방면에서 매우 뛰어났기 때문에 [[스틸웰]]은 쑹메이링이 중화민국의 '''국방장관'''이 될지도 모른다는 예측을 하기도 했다. 농담이 아닌 게 한때 '''중국 공군의 어머니'''라고 불린 적도 있었을 정도로 공군에 관심이 많았고, 국민당의 웬만한 장군들보다 국방 분야에 끼친 영향력이 컸다. [[쑤저우]]에 별장이 하나 있었는데, 제2차 [[국공내전]] 이후 [[린뱌오]]가 차지해서 자신의 휴양지로 썼다. 미국으로 건너간 이후에도 [[중국 국민당]] 내부에서는 '내가 국민당의 실권을 잡는 것이 쑹메이링 여사의 뜻'이라는 소리가 두어번 나왔다. 다만 당시의 그녀는 정치와의 관계를 끊어서 무관할 가능성이 높다. 최고 권력자의 부인이면서도 미식을 즐기지 않았고, [[채식주의자|채식만을 고집하여, 고기는 입에 대지도 않았다고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