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쑹자수 (문단 편집) === 쑨원과의 악연 === 결국 쑨원은 쑹아이링에게 홀딱 반해서 찰리 쑹에게 쑹아이링과 결혼하게 해달라고 했다. 찰리 쑹은 이미 그녀와 비슷한 나이 뻘의 아들 [[쑨커]][* 쑹아이링이 1889년생, 쑹칭링이 1893년생, 쑨커가 1895년생이며 쑹메이링은 1897년생으로, 쑨커는 이미 20살의 장성한 청년이었다.]를 두고 있는데다가 아내가 이미 있는 쑨원에게 중혼은 절대 허락할 수 없다고 거절했다. 결국 쑹아이링은 쑨원의 비서를 그만둔 후 1914년, 산서성 출신의 사업가이며 YMCA 일본 간사였던 [[쿵샹시]]와 결혼하였다. 그러자 새롭게 쑨원의 비서가 된 것은 그전부터 중국과 일본을 오가며 쑨원과 찰리 쑹의 뒷바라지를 하던 쑹칭링이었는데 1915년, 쑨원이 이번에는 쑹칭링에게 반해서 청혼하였다. 쑹칭링 역시 쑨원과 결혼하겠다고 나섰다. 하지만 50살이나 되었는데다가 아내까지 있는 쑨원이 자신의 금쪽같은 22살 딸과 결혼하겠다고 나서는 데에 찰리 쑹은 당연히 발칵 뒤집혀졌다. 찰리 쑹은 쑹칭링을 방에 가둬버렸지만 쑹칭링은 기어이 창문을 넘어 달아나 쑨원이 있는 고베로 달아나버렸다. 격노한 찰리 쑹은 일본까지 쫓아가 일본 정부에게 이 결혼을 막아달라고 청원했지만 요쿄하마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쑨원이 10월 25일에 쑹칭링과 결혼식을 올린 후였다. 찰리 쑹은 쑨원에게 저주를 퍼부었다. >"당신, 당신이 담도 크게 감히 내 딸을 속이고, 우리의 우정을 배반하는 행위를 한 것은 우둔하기 짝이 없네. 우리가 함께 분투하던 지난 20년을 잊어서는 안되네. 승리가 눈앞에 다가온 지금 도리어 의지를 상실하고, 천지가 고통스러워하고 원수가 통쾌하게 여기는 이런 일을 저지르다니!" 쑹칭링이 쑨원을 두둔하며 용서를 청하였지만 찰리 쑹은 매몰차게 결혼이 무효라고 선언하였다.[* 그럼에도 이날 쑨원이 모습을 드러내어 자신과 만나자, 쑹자수는 3번이나 절을 하며 "철없는 내 딸을 잘 부탁한다"고 말한 후 떠났다. 이 당시 쑨원이 머무르고 있던 집의 주인인 우메야 쇼키치의 딸이 이 광경을 목격했는데 그녀는 훗날 이 일에 대해 '사위가 장인에게 절한다는 말은 들었어도 장인이 사위에게 절한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었다. 중국인은 참 이상한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라는 소회를 남겼다.[[https://www.joongang.co.kr/article/8827006#home|#]]] 하지만 쑹칭링이 계속 쑨원을 옹호하자 결국 쑹칭링에게 의절을 선언하고 상하이로 돌아왔다. 이 충격으로 찰리 쑹은 급격히 노쇠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