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쓰촨성 (문단 편집) === [[중화민국]] === [[북양정부|중화민국]] 총통 [[위안스카이]]가 사망한 이후 중화민국 각지에서 [[군벌/중화민국|군벌]]들이 난립, 각 지방이 사실상의 독립 정권으로 전락할 때 쓰촨에서도 여러 군벌들이 세운 독립 정권들이 난립했었다. 그러다 [[장제스의 북벌]]로 중화민국이 형식상 재통일되어 모든 지역이 [[장제스]]의 [[난징]] [[국민정부]] 아래로 들어오자 쓰촨의 군벌들 또한 형식상 국민 정부 아래로 들어왔다. 그러다 장제스에 대항해 군벌 연합 세력이 [[중원대전]]을 일으키자 쓰촨 또한 군벌 연합에 가담했으며 중원 대전이 국민 정부의 승리로 끝나자 쓰촨은 다시 국민 정부에 충성하기로 한다. 하지만 국민 정부 아래로 다시 들어왔음에도 여전히 쓰촨을 실제로 다스리고 있던 자는 국민 정부가 아닌 토착 군벌 세력들이었다. 1937년 7월에 [[중일전쟁]]이 발발하고 동년 12월 수도 난징이 함락되자 장제스는 수도를 한커우로 옮기고 이듬해 8월 한커우마저 함락되자 장제스는 수도를 충칭으로 옮겨 일본군에 대해 결사 항전한다. 이후 일본이 항복하는 [[1945년]] 8월까지 쓰촨의 대도시 충칭은 중화민국의 임시 수도로서 기능했으며 쓰촨은 아직 일본에게 함락되지 않은 중화민국 서남부, 이른바 '대후방'의 핵심 지역으로서 전쟁 기간 내내 항일 전선의 후방기지 역할을 수행했다. 이 기간 동안 [[충칭 대공습]]과 같은 참혹한 전쟁범죄도 있었다. [[중일전쟁]]은 [[일본 제국]]의 항복으로 중화민국의 승리로 종결되나 전쟁이 끝나기가 무섭게 중일전쟁 이전부터 지겹도록 싸워댄 두 세력, [[장제스]]의 [[중국 국민당]]과 [[마오쩌둥]]의 [[중국 공산당]] 간에 [[국공내전]]이 발발한다. [[국공내전]] 말엽 [[중국 국민당]]의 패색이 짙어져 1949년 4월 수도 [[난징]]이 공산군 손에 떨어지고 임시수도 [[광저우]]마저 동년 10월 공산군이 [[화남]]을 석권하면서 함락되자 장제스는 [[중일전쟁]] 당시처럼 정부를 쓰촨으로 옮겨 계속 저항할 생각이었으나 쓰촨 내부의 토착 군벌들이 장제스를 배신하고 공산군 측에 붙자 쓰촨마저 포기하고 결국 [[타이완 섬|타이완]]으로 [[국부천대|떠났다.]] 쓰촨에선 11월에 충칭, 12월에 청두가 공산군에게 넘어가고 [[1950년]] 4월 쓰촨성 [[시창]]의 국부군 잔존 세력마저 완전 소탕된 뒤 쓰촨은 중국 공산당이 세운 [[중화인민공화국]] 통제 하에 든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