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쓰촨성 (문단 편집) == [[견직물|비단]] == 위에서 나왔듯이 쓰촨성의 특산품 [[비단]]인 촉금(蜀錦)이 굉장히 유명하다. 촉금(성도촉금, 成都蜀锦)은 [[난징]]의 운금(南京云锦), [[쑤저우]]의 송금(苏州宋锦), [[광시 좡족 자치구]]의 장금(广西壮锦) 등 중국 4대 비단으로 하나로 중국에서 유명한데 이 중에서도 촉금의 역사가 상당히 오래되었고 가장 오래 명성을 떨친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2000년의 긴 역사를 가진 촉금은 일찍이 [[서한]](西漢)시대부터 짜기 시작하여 [[촉한]](蜀漢) 시대에는 쓰촨을 대표하는 물건이 되었으며 촉한 정부는 비단을 매우 중요시 여겨 승상 [[제갈량]]의 지휘하에 촉금의 생산과 질을 높여 촉금을 명품으로 만들었다. 촉금은 쓰촨산(四川産) 꽃무늬 비단이라고도 하는데 전부 수공으로 만들고 그 공예가 복잡하며 높은 기교를 가지고 있다. [[당나라]] 때 와서는 그 당시 가장 좋은 비단으로 소문났으며 [[당태종]] 이세민은 사천 비단을 무조건 황실에 보내야 한다고 명했다. 또한 사천 비단은 [[실크로드]]를 통하여 유럽에까지 팔려나갔으며, 남으로는 일본에도 나갔다. 하여 일본 사람들은 이 비단을 "촉강금"(蜀江錦) 라 불렀는데 지금도 일본의 [[쇼소인]](正倉院), [[호류지]](法隆寺)에서는 당나라 때 보낸 촉금을 보관하고 있다. 사천 지역은 날씨가 온화하고 따스해서 [[누에]]를 기르기에는 아주 적합한 날씨로 근래에 와서 이 전통적인 촉금을 계속 발전시키기 위해 청두시 정부는 이에 관한 전문인재를 배양하고 투자하여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방방금(方方錦), 월화금(月花錦), 우사금(雨絲錦), 완화금(浣花錦) 같은 촉금은 가장 많은 내외 고객이 애용하는 품종이다. 옷감의 질이 좋은만큼 [[자수]](刺繡) 역시 유명하다. 이는 바늘로 각종 색상의 실을 꿰매어 미리 설계한 무늬와 색갈에 따라 화려한 도안을 수놓는 것이다. 사천 자수를 촉수(蜀繡)라 부르는데 중국 4대자수인 [[쑤저우]]의 소수(蘇繡), [[후난성]]의 상수(湘繡), [[광둥성]]의 월수 중의 하나이다. [[한나라]] 말기 삼국 시기 때 촉금(蜀锦)의 발전과 함께 촉수(蜀繡)는 천하에 그 명성을 떨쳤고 이것으로 북방의 전마(戰馬) 등 필요한 물건을 교환하였으며 촉한 정권의 가장 중요한 재정 수입원이 되었다. 당나라 시기와서 이름이 더 날렸는데 각 지역 소수민족 두령들도 모두 촉수로 자기 몸을 장식했으며 [[송나라]] 때는 하늘 아래 최고의 품질이라는 찬사를 들었다. 1831년 [[청나라]] [[도광제]] 시기에 자수업이 더욱 발전했는데 조정에서 자수업을 직접 관리하고 크게 지원했다. 이로서 더 많은 자수예인 (艺人)들이 모여서 작업소가 60여개나 되어 인재만 천여명이 되였으며 생산한 품종이 다양하고 공예의 품질이 좋았다고 한다. [[청나라]] 말기에 와서는 촉수(蜀繡)가 더 높은 수준에 올라 [[1915년]]에 [[파나마]]에서 열린 전람회에서 금상을 받았으며 관련 상품이 멀리 [[유럽]], [[북아메리카]], [[남아메리카]], [[아프리카]], [[중동]]/[[인도]], [[동남아시아]], [[호주]] 등 여러 곳에까지 팔려나갔다. 중국 전통문화가 다 그랬듯이 [[문화대혁명]] 때 이것도 된서리를 맞았으나 [[1971년]]에 와서 [[저우언라이]]의 관심하에 예인들이 다시 복귀해 촉수(蜀繡) 생산을 회복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개혁개방정책 초기인 [[1982년]] 중국 공예품 회의에서 사천 촉수(蜀繡)는 2등상을 받으면서 다시 외국에 수출하기 시작했고, [[1985년]] [[프랑스]] 전시회 때도 우수 상품으로 평가받아 지금도 여러 지역으로 수출되고 있다. 현재의 [[베이징]] 인민 대회당 내 제 4회 의청에 "부용잉어" 라는 병풍이 있는데 이것은 쓰촨성 내 150명이나 되는 수공들이 18일 동안 만든 촉수(蜀繡)라 한다. 현대에도 이 비단에 대한 자부심은 대단해서, [[고우영]]이 쓰촨성의 중심지인 청두를 방문했을 때 청두의 관광 안내도에는 [[실크로드]]를 장안이 아닌 청두로 연장해서 그린 그림을 올려놨다고 한다. ([[고우영 십팔사략]] 후한 편 참조)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