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아가디르 (문단 편집) == 역사 == [[파일:아가디르 메디나 모로코.jpg|width=700]] 아가디르 메디나의 포르투갈식 건물 기원전 1100년 무렵 [[페니키아]] 인들이 건설한 마을 가디르에서 지명이 유래되었다. [[스페인]]의 [[카디스]]와 같은 어원으로, 성채의 뜻으로 추정된다. 중세 들어 메스귀나 베르베르 인들이 정착하여 [[대항해시대]]에 '포르토 메세기나'로 알려졌다. 그러던 1505년 [[와타스 왕조]]의 쇠락을 틈타 모로코 해안을 잠식해가던 [[포르투갈]] 인들이 바다 쪽 언덕에 산타 크루즈 두 카부 지 아게르 성채를 건설하여 총독을 두고 무역 거점으로 삼았다. 이에 반발한 현지인들은 종종 성채를 공격하였고, 따라서 1510년 '전쟁 중인 아가디르' (아가디르 알 하르바)로 불리게 되었다. [[사드 왕조]] 휘하에 뭉친 현지인들은 1530년부터 성채를 포위하였고, 사드 왕공 무함마드 앗 셰이크가 1541년 3월 12일 마침내 점령하였다. 포로가 된 6백인의 포르투갈 인들 중에는 총독 구테레 지 몬로이의 딸 도나 메키아가 있었는데, 전투 도중 남편을 잃은 그녀는 무함마드 앗 셰이크의 아내가 되었다. 비록 1544년 그녀는 출산 도중 사망했지만, 장인 구테레와 친해진 무함마드 앗 셰이크는 같은해 그를 석방하였다. 아가디르 함락은 모로코 역사에 큰 영향을 미쳤다. 충격을 받은 포르투갈은 북쪽의 사피, 아제무르를 포기하였다. 이로써 영웅으로 부상한 무함마드 앗 셰이크는 형을 누르고 술탄에 오른 후 북진하여 1549년 [[페스]]를 정복, 한세기 만에 모로코를 통일하기에 이른다. 동시에 포르투갈이 브라질에 더욱 집중하며 16세기 중반 포르투갈령 모로코는 [[탕헤르]] ~ [[세우타]] 해안과 안파 ([[카사블랑카]]), 마자간 (엘 제디다) 일대로 축소되었다. 무함마드 앗 셰이크를 계승한 술탄 압둘라 알 갈립은 1572년 아가디르에 기존 성채를 확장하여 카스바를 건설하였고, 이후 도시는 '요새화된 평원'이라는 의미인 아가디르 늘기르로 불리게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