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아돌프(룩셈부르크) (문단 편집) === [[룩셈부르크 대공]] 즉위 이후 === [[네덜란드 왕국]]과 [[룩셈부르크 대공국]]은 [[빌럼 3세]]에 의한 [[동군연합]]이었으나, 아들을 두지 못하고 [[1890년]] 사망, 외동딸 [[빌헬미나 여왕]]이 즉위하는데... 네덜란드는 여왕 즉위가 가능해도 룩셈부르크는 [[살리카법]]인 것이 문제였다. 그래서 빌럼 3세의 머나먼 친척인 아돌프가 대공위를 잇게 됐는데 아돌프는 남계로 빌럼 3세의 37촌 조카였다.[* 이 분야 세계기록이다. 빌럼 3세와의 공통 조상이 [[https://en.m.wikipedia.org/wiki/Henry_II,_Count_of_Nassau|나사우 백작 하인리히 2세]]로, 당시 기준 700년 전 사람이다. 아돌프의 조상([[나사우 가문|나사우바일부르크 가문]])이 장자 계열이고, 빌럼 3세의 조상([[오라녀나사우 왕조|오라녜나사우 가문]])이 차자 계열이다.] 이때 그는 이미 73세의 노인이었고, 평생 [[독일 연방|독일]]에서 생활해 룩셈부르크 정치는 전혀 몰라 그날그날의 정무에서는 손을 뗐고, 사실상 당시 총리대신 폴 아이셴[* Paul Eyschen, 1888년부터 1915년 사망시까지 27년간 재임하면서 [[빌럼 3세|기욤 3세]]부터 [[마리아델라이드]]까지 4명의 대공을 모셨다.]이 정무를 대행하게 된 것이 이후 관례로 내려오게 됐다.[* 여담으로 [[영국]]이 [[입헌군주국]]이 된 것도 비슷한 이유이다. [[하노버 왕조]]의 개창자인 [[조지 1세]]는 본래 [[신성 로마 제국]] 브라운슈바이크뤼네부르크의 하노버 선제후로 군림하고 있다가 50세에 [[영국 국왕]]으로 추대되어 즉위하게 되었는데 이로 인해 영국에 대해 아는 것이 단 하나도 없었다. 때문에 일 잘하는 신하들에게 정무를 대행하도록 했고 이 것이 관례가 되어 오늘 날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1902년 아들 기욤을 섭정으로 세웠으며 1905년 바이에른의 여름 별장에서 별세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