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아람어 (문단 편집) == 역사 == 아람어의 역사는 꽤 특이하다. 피지배계층의 언어가 오히려 외부 지배층을 동화시켜 널리 퍼진 경우이다. 마치 이민족 왕조의 중국과 청나라의 중국어같은 것으로 보면 된다. 원래는 [[아람#s-2]] 지방(현대의 [[시리아]])에서 쓰인 언어인데, 3000년 전부터 문자화되었다. [[아시리아]] 제국이 중동을 제패한 이래, 메소포타미아의 행정 언어를 거치면서 [[신바빌로니아]]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신바빌로니아가 [[유다 왕국]]을 정복하고 [[바빌론 유수]] 사태가 일어난 때부터 바빌로니아에 살던 [[유대인]]들 역시 아람어를 모어로 사용하게 되었다. 다만 오늘날까지 알려진 대로 그렇다고 [[히브리어]]가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었다. 하지만 국제적으로 아람어가 훨씬 세력이 강했기에 결국 유대 지역에 살던 유대인들은 히브리어가 아닌 아람어를 쓰게 되었고, 히브리어 자체는 19세기 말에 [[시오니즘|시오니스트]]들이 다시 부활시킬 때까지 의례용으로만 사용되는,[* 현대의 [[라틴어]](교회 등에서만 사용됨)와 비슷한 상황이었다.] 사실상 사어로 전락하였다. 한편 다시 아람어로 돌아와보면, 이 언어는 [[아케메네스 왕조]]의 [[키루스 2세]]가 [[신바빌로니아]] 제국을 정복한 후, [[다리우스 1세]]에 의해 아케메네스 왕조의 공용어가 되었다. 아케메네스 왕조가 영토를 넓히면서 다민족 국가로 변모하였고, 언어가 각기 다른 여러 민족 사이에는 공용어가 필요했는데 그것이 아람어였다. 이 시기 아람어의 위력이 강했는지 아케메네스 왕조가 멸망한 후에도 아람어는 이란 계통의 언어에 막대한 영향을 남겼다. 아람어와 함께 [[아람 문자]]도 함께 퍼졌다. [[페르시아어]]는 결국 이전까지 사용해왔던 [[쐐기 문자]]를 버려 아람 문자에서 파생된 팔라비 문자로 표기하게 되었고, 이 뿐만 아니라 [[아랍 문자]], [[데바나가리 문자]], [[몽골 문자]] 등도 이 시기의 아람 문자에서 파생된 것들이다. [[마우리아 왕조]]의 [[아소카 대왕]]이 세운 석비들에도 고대 프라크리트어(옛 인도아리아어군 언어들), [[그리스어]]와 함께 아람어로 칙령이 새겨져있다. 이렇듯 [[헬레니즘 제국]] 이후에도 아람어가 중동 지역의 공용어로 남게 된 것은 아케메네스 왕조의 공이 크다. [[로마 제국]]의 지배 하에도 아람어는 중동에서 널리 사용되었다. 이슬람 이후에도 한동안 아람어가 활발하게 사용되었다. 그러나 7세기 말 [[우마이야 왕조|우마이야 칼리프조]]의 칼리파 [[아브드 알 말리크|압둘 말리크 빈 마르완]]이 디완[* 세금 출납을 기록하는 관청]에서 아람어와 그리스어의 사용을 금지하고 아랍어만 사용하도록 법을 개정한 것을 계기로, 아람어의 입지가 약화되어 아람어 사용 인구는 급속히 아랍인들과 동화되기 이른다. 아람어와 [[콥트어]] 사용 지역이 [[아랍어]]로 대체되기는 했지만, 아람어는 여전히 [[네스토리우스파]]와 [[시리아 정교회]]의 전례 언어로서 남아있었고, [[인도 반도]]의 시리아 전례 교회[* [[시로말라바르 가톨릭]] 등등]에서도 아람어를 사용하였다. 또한 [[몽골 제국]]의 팽창과 함께 몽골인들이 네스토리우스파를 접하면서 아람어는 [[몽골 고원]]과 [[시베리아]]까지 퍼졌다. 이런 아람어는 몽골 제국의 쇠망과 함께 사용 지역이 축소되기 시작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