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아르메니아/역사 (문단 편집) == 근세 == 아르메니아 왕국은 몰락했으나, 16세기 [[오스만 제국]]과 [[사파비 제국]]의 패권 다툼 아래 아래에 아르메니아 서부를 비롯한 동지중해 근방이 통합되었다. 오스만 제국이 타 종교에 관대한 실용주의 정책을 펼치면서 이스탄불에는 아르메니아 사도교회 건물 수십여 개가 건설되었으며, 이슬람 율법 대신 아르메니아 사도교회 내에서 자체적으로 아르메니아인들의 이해 관계를 조정하였다.[* 오스만 제국 내 아르메니아인들은 같은 아르메니아인 사이의 분쟁의 경우 민사 재판을 아르메니아인 성직자 주관 하에 받았고, 유죄 판결을 받은 경우라도 대개 아르메니아 사도교회에서 운영하던 감옥에 수감되었다.] 이러한 환경에서 아나톨리아 서부 해안지대의 아르메니아인들은 서구 국가들과의 무역을 주도하면서 오스만 제국의 번영에 이바지했다. 오스만 통치 아래 지중해 동부의 상업은 [[유대인]]과 아르메니아인이 총괄하여 경쟁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번성하게 된다. 오스만 제국은 통역 등 여러가지 공식적인 직책은 아르메니아인보다는 유대인 혹은 그리스인 [[파나리오테스]]를 중용하는 편이었으나, 오스만 제국 내 아르메니아인들의 부는 유대인들의 그것을 압도하는 수준이었다.[* 오스만 제국 내 유대인들은 오스만 제국 입장에서 변방 지대인 알제리, 튀니지 일대에서 무역업을 장악했던 반면 아르메니아인들은 수도 이스탄불의 무역 상권을 장악한 상황이었다. 이스탄불 거주 주민의 15~25% 정도는 아르메니아인들이었다.] 하지만 지중해 연안의 아르메니아인들이 상인으로 번영한 것과 다르게 아나톨리아 동부 내륙지방과 아르메니아 서부 내 아르메니아인들은 대다수가 여전히 자급자족하는 농민으로 살고 있었다. [[아제르바이잔]]에서 발흥한 이란의 사파비 왕조에서는 오늘날 [[나흐츠반]] 일대 [[https://en.wikipedia.org/wiki/Julfa,_Azerbaijan_(city)|줄파]]의 아르메니아인 30~50만명을 노예로 끌고 가서 [[이스파한]] 남부(노르 줄파)[* 새로운 줄파라는 뜻이다.]에 정착시켰는데, 이렇게 끌려간 아르메니아인들은 강제이주 과정에서 절반이 넘는 수효가 사망했을 정도로 고생했음에도 악착같이 금방 재기하여 사파비 왕조 전역의 상권을 장악했다. 당시 강제이주를 명령한 [[아바스 1세]]는 나흐츠반 일대의 아르메니아인들이 거주하던 도시들을 파괴할 것을 지시하였는데, 이를 계기로 나흐츠반의 주 거주민은 아르메니아인에서 아제르바이잔인으로 바뀌었다. 다른 한편으로 사파비 제국 시기 조지아인들은 남성들은 주로 이슬람으로 개종된 이후 군인 노예로 이용되고 여성들은 주로 하렘으로 끌려간 것과 다르게 아르메니아인들은 사파비 제국 위정자들과 서구 국가들 사이의 무역을 돕는 대가로 종교의 자유를 어느 정도 누릴 수 있었다. 아라비아 만 일대의 항구도시들을 장악한 서구 국가들은 이란과 교역할 때 무슬림들과 직접 교역하는 것보다는 기독교인 아르메니아인을 거쳐서 통상하는 것을 선호했다. 또한 오스만 제국과 사파비 제국은 서로 종파가 달라서 공식적으로 적대하는 관계였으나, 양국 사이의 아르메니아인 기독교도 사이에서 활발한 교역이 이루어지며 양국의 경제 발전에 기여하였다. 이러한 연유로 이스파한으로 강제이주당한 조지아인들은 몇 세대를 거치며 이란인에 동화된 것과 다르게 이란 내 아르메니아인들은 오늘날까지도 상당한 규모의 공동체를 가지고 있다. 사파비 제국은 아르메니아 동부 일대에 대한 장악력을 강화하고 아르메니아인들을 이스파한 근교로 강제이주시킨 것을 계기로 전체 인구의 20% 정도는 아르메니아인이었다고 한다. 오스만 제국에서 아르메니아인과 유대인들이 갈등 속에서 공존했던 것과 다르게 사파비 왕조에서는 아르메니아인들이 유대인들을 완전히 비주류 상업민족으로 밀어내었다. 근세 [[페르시아계 유대인]]들은 아르메니아인들의 등쌀에 밀려서 상당수가 부하라로 이주하여 [[부하라 유대인]]이 되었다고 한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22A020BA-FD6D-4D77-AE46-E01AE2B9C9BC.jpg|width=100%]]}}} || || [[이스파한]] 근교의 부유한 아르메니아인 가정 || [[프랑스]]에 [[커피]]를 유행시키고 최초의 카페를 개점한 것 또한 오스만 제국에서 온 아르메니아인으로 전해진다. 당시 아르메니아 상인들은 비유적으로 동서로는 [[무굴 제국]]부터 폴란드, 헝가리까지, 남북으로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예멘]]까지 중세–근세의 아르메니아인 상업 커뮤니티가 존재했다고 표현할 정도로 유대인 못지 않은 탄탄한 기반과 견고한 입지를 자랑했다. 특히 아나톨리아에는 아르메니아 상인들이 자신들의 부와 재력을 고향인 서부 아르메니아 지방의 수많은 유서 깊은 수도원, 교회들에 투자하면서 현대 터키의 동부 지방에는 아르메니아 사도교회의 상징과도 같은 연필 같이 뾰족한 첨탑 수백 개가 들어서 있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