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아스타나 (문단 편집) == 역사 == [[1824년]] 이전에는 그저 들판에 불과했을 뿐이었지만 [[러시아 제국]]이 카자흐스탄 일대를 러시아 제국령으로 편입하면서 카자흐 지배의 중심지인 '아크몰린스크'가 되었고, [[소련]] 시절에는 '''"첼리노그라드"'''로 다시 개칭되었으며[* "처녀지의 도시" 정도의 뜻이다. 후술하갰지먼 흐루쇼프의 처녀지 개간 운동과 매우 연관이 깊은 작명이다.][[알마티]]만큼은 아니더라도 꽤나 발전된 도시에 속했다. [[니키타 흐루쇼프]] 시절 카자흐스탄 일대를 [[처녀지 개간 사업|대규모로 개간하는 작업]]에 들어서면서[* 하지만 정작 이 [[처녀지 개간 사업]] 자체는 흐루쇼프 최대의 실패작으로 손꼽히는 사업이다. 그래도 [[카자흐스탄]]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치기는 해서 [[러시아인]]들의 비율이 크게 늘어나서 한때 러시아인의 비율이 전체 카자흐스탄 인구 가운데 40% 이상에 달했다.] 농업 연구소들이 속속 들어섰다. 당연히 이 시기의 아스타나는 러시아인들이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도시풍경도 전형적인 소련도시의 모습을 띄고 있었다. [[소련 해체]] 후 카자흐스탄이라는 별개의 나라로 독립하면서 '아크몰라'라는 이름으로 변경했다. [[1998년]] 카자흐스탄이 수도를 이곳으로 [[천도]]하면서 이곳이 카자흐스탄의 수도가 되었다. 인구도 급속히 늘어나면서 시가지도 대대적으로 확장했고, 소련 시절 [[아파트]] 때려박기로 칙칙했던 스카이라인도 [[2000년대]] 카자흐스탄의 호황과 함께 급속히 화려해졌다. 수도로 지정된 이후로 인구는 빠른 속도로 늘어 [[천도]] 당시에 30만 명이 채 되지 않던 인구가 20년만에 100만 명을 넘었다. 하지만 독재자인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가 마음대로 천도하고 건설하도록 지시했고,[* 사실 아스타나로 이전했을 당시에는 아직 카자흐스탄 경제가 [[소련 붕괴]]의 후유증에서 충분히 회복되기 이전의 일로 수도 이전에 예산을 쓸 만큼 재정이 좋지는 않았다. 그래도 몇 년만에 카자흐스탄이 매년 10% 성장을 구가하면서 수도예산에 쓰였던 예산을 다 해결하고도 남을 정도로 투자자금이 아스타나에 들어왔으니 [[새옹지마]]라 하겠다.] 경제적으로 취약한 카자흐스탄이 자원을 바탕으로 천도하고 건설한 도시라 속 빈 강정이란 평이 자자하다. 거리 곳곳에 거대한 상징물과 화려한 건물들을 전세계 유명 건축가들을 공모해 건설했지만, 서둘러 겉보기에 좋도록 하는 데에만 힘을 쓴 탓에 내실은 외견에 미치지 못한다. 아직 [[소련]]의 일부였던 [[1989년]] 당시에는 도시 인구의 54.1%가 [[러시아인]]으로, [[카자흐인]]은 17.7%밖에 안 되고 [[러시아인]] 및 [[우크라이나인]], [[독일인]] 등이 인구의 대다수였다. [[1990년대]] 소련이 붕괴한 이후 러시아인 등 [[유럽인]]들이 빠져나간 대신 카자흐인이 급속도로 유입되어 2018년 기준으로 인구의 78.2%가 카자흐인으로 [[러시아계 카자흐스탄인]]은 인구의 13.4%에 불과하다.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가 천도를 결정하고 건설하도록 지시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아무 이유 없이 새 수도를 건설하기 위해 천도한 것은 아니다. 카자흐스탄의 예전 수도 알마티는 남동부에 매우 치우쳤고, 카자흐스탄의 남부는 [[튀르크족]]들이 주로 거주하지만 북부는 러시아계가 많이 거주하기 때문에 '''카자흐스탄 상황이 나빠지면 북부의 러시아계 주민들이 [[러시아]]로 합병을 요구하거나 분리독립을 시도할 위험'''이 있었다. 그래서 러시아계의 [[분리주의]] 움직임을 통제하고 통치를 원활하게 하기 위한 목적으로 천도를 결정한 것이다. 또한 카자흐스탄은 '''독립 당시 카자흐인이 전국민의 50% 정도에 불과'''해 오늘날까지도 다른 나라, 특히 [[중국]]에 거주하는 카자흐인들에게 카자흐스탄으로 이민할 것을 적극적으로 권장하여 카자흐인 비율을 높이고 있다. 이런 상황을 고려하면 카자흐인이 많이 거주하는 남동쪽에 위치한 알마티보다는 국토 중심부에 위치한 아스타나가 수도 및 국내 통제용으로 더 적합하다. 그 예로 카자흐스탄과 똑같이 옛 소련의 일원이었다가 [[1991년]] [[소련 해체]]로 독립 직후 십수 년 뒤 [[21세기]] [[우크라이나]]에서 일어났던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크림반도]] 및 [[돈바스 전쟁|동부 지역의 분리주의 사태]]를 보면 꽤 앞날을 내다본 판단이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