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아시리아 (문단 편집) === 멸망 === 아슈르바니팔 사후, 후계자 지위를 놓고 아슈르바니팔의 아들들인 신 샤리 이슈쿤과 아슈르 에텔 일라니 사이에서 내전이 벌어졌고, 수석 내관인 신 슈무 리시르의 후원을 받은 '''아슈르 에텔 일라니'''가 왕위에 올랐으나 다소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시해와 찬탈 가능성이 높다.] 내시인 '''신 슈무 리시르'''가 잠시 왕위에 올랐다가 후계자 경쟁에서 밀렸던 '''신 샤리 이슈쿤'''에게 제거되었다. 아슈르바니팔 왕 후반기부터 시작된 제국의 쇠퇴는 내란을 거치면서 더욱 심해졌고, 계속해서 아시리아의 뒷목을 잡고 있었던 [[신바빌로니아|바빌로니아]] 지방은 이 기회를 틈타 아시리아 세력을 완전히 바빌로니아에서 추방하는 데 성공했다. 이 시기 아시리아는 본토를 지키는 것도 불가능해질 정도의 상황에 이르렀고, [[이집트 말기 왕조|이집트]] 및 [[리디아]]와 동맹을 맺었지만 결국 기원전 612년 [[신바빌로니아]], [[메디아]], [[스키타이]], [[킴메르족|킴메르]], [[유다 왕국|유다]], [[엘람]], [[킬리키아]] 연합군의 공격으로 멸망했다. 멸망할 때 마지막 왕 신 샤리 이슈쿤은 [[은주왕|성 전체에 불을 질렀고]], 연합군 역시 아시리아에게 당한 그대로 보복하여 흔적조차 남지 않게 되었다.[* 신 샤리 이슈쿤의 이름이 그리스에는 '[[사르다나팔루스]]'로 와전되었는데 멸망할 때 성에 불을 질러 자살했다는 것이 유럽인들에게는 큰 충격을 주었는지 그 후 유럽 문화권에서 사르다나팔루스의 최후를 다룬 미술이나 음악 작품이 상당히 나왔다. 허나 사실 죽을 때 성에 불을 지르고 죽는 일은 꽤 흔히 발생했다. 《성경》에서도 북이스라엘 왕 [[시므리]]가 [[오므리]]의 쿠데타로 죽을 때 성에 불을 지르고 자살했다. 예외적으로 중국 5대 10국 시대 후당의 황제였던 이종가는 '성에 불을 지르면 다음 황제는 새로 지으려고 할테고 그럼 백성들이 고생할거라'는 황후의 조언에 전각만 태우고 죽었다.] 니네베 함락 이후에도 신 샤리 이슈쿤의 형제가 [[하란]] 지역에서 '''아슈르 우발리트 3세'''라 자칭하며 저항을 이어갔으나 기원전 609년 하란마저 메디아-신바빌로니아 연합군에 함락되어 아시리아 제국은 역사에서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이후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 제국 시대에 [[아수르]] 등의 도시가 재건되어 회복되면서 정체성을 유지하게 되었고, [[파르티아]] 제국과 [[사산 왕조]]를 거치면서 메소포타미아 북부 지역에 아시리아의 이름을 딴 아시리스탄 주가 설치되어 아시리아인들의 문화를 이어나갔다. 서기 14세기 이래로는 무자비한 정복군주인 [[티무르]]에 의해 주민들이 학살되는 등의 혼란기도 있었지만 오늘날까지도 아시리아인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