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아우구스티누스 (문단 편집) === 두 아우구스티누스 논쟁: 회심의 신뢰성 논란 === <고백록> 8권에는 아우구스티누스의 극적인 회심과정이 감동적으로 기술되어 후대에 많은 기독교인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그러나 19세기 말에, 아돌프 하르낙 이후로 처음으로 그의 회심의 역사성과 신뢰성에 의문을 표하는 사람들이 늘었다. 하르낙처럼 고백록 8권의 회심은 역사적으로 사실일 가능성이 낮다고 하는 주된 근거는 회심 직후에 쓰인 초기 작품들(소위 카씨키아쿰 대화록)과 고백록[* 고백록은 적어도 회심 사건이 있은 후, 10년은 지난 뒤에 쓰인 책이다]에서 말하는 회심과정이 다르다는 것이다. 실제로 <행복한 삶>이라는 저술에서 서술된 회심 과정은 밀라노 정원에서 일어난 사건들이 하나도 언급되고 있지 않다. 또 다른 대화록 <아카데미아파 반박>에서는 하느님에 대해 ‘이제 약간 알기 시작했노라.’고 말했다. 또한 페라리에 의하면, 아우구스티누스가 [[로마서]] 13:13-14을 읽고 깊은 감명을 받았는데 정작 회심 직후에 쓴 작품들에는 이 구절이 거의 인용되지 않았다. 이러한 점 때문에 고백록 8권의 회심이 역사적 사실이 아니거나 아우구스티누스의 회심은 기독교 신앙이 아닌 신플라톤주의에 빠진 철학적 회심이라는 주장이 거론된다. 이처럼, <고백록>과 '대화록'에서 말하는 회심과정의 모순적인 차이가 있는데, 이것이 마치 두 사람이 말하는 것과 같이 달라서 '두 아우구스티누스'라는 표현이 나왔다. 하지만, 그의 회심이 단순한 철학적 회심이라는 지적에 대한 반박도 만만치 않다. 이러한 관점을 따르는 연구자들에 의하면, 아우구스티누스는 회심 후 몇 달 만에 세례를 받았고, 자신의 신념이 신플라톤주의와 기독교 믿음은 일치하는 면이 많다고 보았다[* <신국론>에서는 플라톤주의가 기독교 신앙과 유사하다는 점에서 최고의 세속 철학이라고 평가한다]. 아우구스티누스 자신도 <독백록>에 대한 <재론고>에서도 이때의 사상에서 몇 군데밖에 수정할 게 없다고 말한다. 말하자면, 과거에는 기독교를 철학적으로 설명했다. 사상이 완숙했지만 신학적인 설명이 가능하게 된 것일 뿐 사상이 달라진 것은 아니다. 따라서 그의 회심 자체를 의심할 이유는 없다. 더 나아가 고백록 8권은 아우구스티누스의 회심 과정에 대한 실제 사건과 팩트를 그대로 단순 묘사하기보다는 극적이고 문학적인 표현으로 묘사했다. 구조적으로 대조나 의인화 같은 기법을 통해 아우구스티누스는 본인의 회심을 더욱 극적으로 묘사하였다. 예를 들어, 고백록 2권에서 자신이 배를 훔쳤던 나무[* 자신이 어린 시절, 친구들과 함께 배를 서리하고는 한 입 맛보곤 버린 이야기. 이 경험에서 아우구스티누스는 고백록 2권에서 죄와 악에 대한 견해를 길게 성찰한다.]와 8권에서 회심 이전 엎드린 무화과나무가 대비되는 모습이 보인다. 그리고 ‘우둔함과 허영심’이라는 자신의 옛 친구들과 ‘절제’라는 여인을 등장시켜 자신의 내면에서 일어난 갈등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그뿐만 아니라 여기에는 400년 무렵 주교 아우구스티누스가 386년에 한 회심을 풀이한 신학적 해석이 들어있다. 특히 회심 이후 발전시킨 아우구스티누스의 '구원의 주권은 하느님에게만 있다.'는 은총론적 관점에서 자신의 회심을 해석한 것이 고백록 8권의 회심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