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아우디 (문단 편집) === 초기 === 회사의 기원은 [[1899년]] 11월 14일 모터스포츠 매니아인 아우구스트 호르히가 [[쾰른]]에서 설립한 호르히 사(Horch & Cie, Motorwagenwerke AG) 이다. 호르히는 원래 벤츠의 엔지니어였으나 벤츠가 레이싱에 너무 소홀하다는 이유로 회사를 박차고 나왔다.[* 다임러와 합병하기 이전의 벤츠는 레이싱에 별 관심이 없었다. 반면 다임러는 레이싱에 엄청나게 집중하고 있었다.] 이후 [[1909년]]에 모터스포츠에 너무 열중한다는 이유로 아우구스트 호르히가 '''본인이 설립한 본인 이름의''' 회사에서 쫓겨난 후 다시 호르히 사를 설립하지만(1909년 7월 16일) 상표법 위반으로 고소당해 더이상 호르히라는 상표를 사용할 수 없게 된다. 이에 호르히는 자신의 이름인 'Horch(듣다)'[* 사실 독일어의 Horch 이름이 '듣다'라는 단어는 아니고 듣다의 정확한 표기인 hören과 연관지은 것.]에서 착안해, 라틴어로 듣다라는 의미의 아우디로 회사 이름을 변경[* Audio도 같은 어원이다.](1910년 4월 25일)하고, 이후 고급세단 개발에 회사의 역량을 집중한다. 1932년에 일어난 경제대공황 때 대부분의 유럽 자동차업체가 큰 어려움을 겪는 반면에 [[미국]]의 자동차 업체는 유럽 시장을 공략하고 있었다. 이같은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아우디는 그나마 친분이 있던 호르히, 데카베(지분 70%), 반더러와 합병하여 '아우토 우니온'을 출범시킨다.[* 의외로 아우토 유니온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은데 독일에서의 U는 'ㅜ' 발음이기 때문에 아우토 우니온이 정확한 명칭이다.] 여기서 AUDI = Auto Union Deutschland Ingolstadt(아우토 우니온 도이치 잉골슈타트)라고 바뀌었고, 이때부터 4개의 원이 겹쳐진 현재의 마크를 사용했는데, 이는 합병한 4개 회사를 의미한다.[* 4개의 원은 이사진들이 회사 로고를 만들려고 앉아서 낙서를 하다가 동그라미만 여러개 그렸는데, 그게 우연히 네 회사를 의미하는 것 같다는 이유로 채택되었다고 한다.] 이후 동그라미 4개를 이은 심볼 아래 Auto Union이라는 영문을 병기하여 생산하였다. 때문에 합병 후에도 한동안은 합병 전 회사들의 로고를 동그라미 안에 넣은 형태였었다가 2차대전 직후인 1949년 동그라미 가운데에 대문자로 'AUTO UNION'이 쓰여진 형태로 바뀌기도 했었다. 동그라미 4개'''만''' 쓰는 현재의 형태는 밑의 NSU를 합병한 시점부터 쓰기 시작했다. [[http://www.audipage.com/wp-content/uploads/2011/08/Audi-Logos.jpg|#]] 중국에서는 이 때문에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숫자인 8 두개를 옆으로 겹쳐놓은 느낌이 들어서 아우디를 많이 선호하고 있다. 1930년대는 아우토 우니온 경주차들의 전성기였다. [[메르세데스-벤츠]]와 아우토 우니온 레이싱 타이틀은 물론 역사상 최고속과 같은 기록을 놓고 경쟁을 벌였는데, 당시 나치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이루어진 아우토 우니온(아우디의 전신)과 다임러-벤츠와의 레이싱 경쟁은 현재까지도 자동차 역사상 가장 신화적인 장면으로 남아 있다. 이 시대의 레이싱카들은 조금이라도 더 무게를 줄이기 위해 도장을 하지 않은 강판이 그대로 노출되었는데 이 차들이 햇빛을 받으며 고속으로 주행하는 모습이 마치 은빛의 화살을 연상케 하여 "실버 애로우의 시대"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으며, 저먼 실버라는 표현도 이 때 등장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시기 아우토 우니온은 [[나치 독일]]의 라이트메리츠 강제수용소 수감자들에게 강제 노역을 시켜 군용 트럭을 생산해 납품한 '''[[전범기업]]'''이었다. 이곳에서 4500명의 수감자가 목숨을 잃었다. 아우디는 한동안 다른 독일 전범기업들과 마찬가지로 강제 노역에 대해 전쟁의 불행한 결과이며 나치의 지시를 따랐을 뿐이라고 주장하다가 1998년 미국에서 집단 소송과 불매 운동 위기에 처하자 2000년 [[게르하르트 슈뢰더]] 정부가 '기억, 책임과 미래 재단(Stiftung Erinnerung, Verantwortung und Zukunft)'이라는 강제 노역 피해자 배상 재단을 설치해 이곳에 기부하는 방식으로 피해 보상을 시작했다. 하지만 [[제2차 세계 대전]]으로 많은 [[공장]]이 파괴되었고, 전후에도 대부분의 [[공장]]들이 [[동독]] 영토가 되면서 위기에 봉착한다.[* 공장이 대부분 [[작센]] 주 츠비카우에 있었는데, 이 [[공장]]들은 전부 [[동독]]이 접수해서 [[트라반트|경차의 탈을 쓴 이륜차]]를 제작하는 데 사용하였다.] 때문에 [[1949년]]에 [[바이에른]] 주 잉골슈타트로 본사와 생산 시설을 이전했다. 결국 [[1954년]] [[메르세데스-벤츠]]가 주식의 88%를 인수하고 이듬해 나머지 주식도 모두 인수하여 [[메르세데스-벤츠]]의 자회사가 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