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아우렐리아누스 (문단 편집) ===== 솔 인빅투스(무적의 태양신)와 전제군주제 시행 ===== 모든 혼란을 수습한 아우렐리아누스는 솔 인빅투스(Sol Invictus)[* 무적의 [[태양신]]] 숭배 의식을 대대적으로 전개했다. 그는 [[태양신]] 숭배를 통해 제국의 모든 민간인 및 군인들을 하나로 단합하여 외적에 맞서 싸우기를 희망했다. 이 숭배의 중심지인 신전은 274년에 [[아우구스투스 영묘]] 북부 지역에 지어졌고 12월 25일을 솔 인빅투스 기념일로 지정했다. 이는 강력한 통치권자가 없다면 하나의 구심점이 없어 따로 노는 제국의 서부와 동부를 하나로 이어 놓게 하려는 통합시도 목적이었다. 그래서 그는 동전에 자신의 모습을 새기면서 '''데우스 에트 도미누스 나투스(Deus Et Dominus Natus)'''[* 태어나신 [[신]](神)이시자 주인님.]라는 문구를 덧붙이도록 하고, 황제의 모든 명령에는 하나의 강력한 신과 통치자권의 위엄을 넣도록 했다. 이는 훗날 [[디오클레티아누스]]가 채택한 [[절대군주제]]에 그대로 재도입되어 굳어지게 됐다. 이어 후대 [[기독교]]도 사가들과 일부 역사가들의 기록처럼, 아우렐리아누스는 솔 인빅투스를 최정점으로 하는 로마 국교를 완성시키는데 힘을 쏟았다. 그는 황제가 이 국교의 유일한 대리인이며 최고 사제에 올라 군대, [[원로원]], 관료 등을 계서제에 집어 넣고자 했다. 하지만 이 조치는 그가 이를 시행하던 중 암살되면서 끝내 무산됐다. 그래서 후대의 기독교사가 [[락탄티우스]]는 그에게 주어지는 시간이 충분했다면 기독교 박해를 실시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왜냐하면 이는 [[디오클레티아누스]]에게 그대로 재도입됐기 때문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