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아우렐리아누스 (문단 편집) ==== [[알레만니족]] 격퇴 및 [[아우렐리아누스 성벽]] 건설 ==== 271년, 아우렐리아누스가 반달족을 축출하기 위해 발칸 반도로 간 사이 알레만니족이 이탈리아로 쳐들어가 약탈을 자행했다. 아우렐리아누스는 급히 이탈리아로 돌아갔지만 플라켄티아 인근에서 [[플라켄티아 전투(271)|매복]]에 걸려 패배했다. 그의 패배 소식이 로마에 전해지자 절망에 빠진 로마인들은 앞다퉈 신들에게 희생 제물을 바치며 구원을 호소했다. 하지만 아우렐리아누스는 포기하지 않고 군대를 수습한 후 [[파노(이탈리아)|파노]]의 메타우루스 강 근처에서 주둔하고 있던 알레만니족을 공격하여 [[파노 전투]]에서 그들을 물리쳤다. 이후 아우렐리아누스는 철수하고 있는 알레만니족을 추격하여 파비아에서 괴멸시켰다. 그는 이 공적으로 게르마니쿠스 막시무스 칭호를 받았다. ||<-2> [[파일:1481px-Map_of_ancient_Rome.svg.png|width=100%]] || || '''{{{#FF0000 빨간 선}}}''' ||기원후 3세기에 지어진 [[아우렐리아누스 성벽]] || || '''{{{#0000FF 파란 선}}}''' ||기원전 4세기에 지어진 [[세르비우스 툴리우스|세르비우스]] 성벽 || 하지만 게르만족이 로마를 위협했다는 사실은 로마인들에게 심히 큰 충격을 줬기 때문에, 위협이 완전히 제거된 상태였지만 아우렐리아누스는 로마 주변에 새로운 성벽을 세우기로 결심했다. 이리하여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세르비우스 성벽을 허문 지 300년 만에 [[아우렐리아누스 성벽]]이 세워졌다. 여기에 피사우룸과 파눔 포르투나이 등 다른 이탈리아 도시들도 요새화했으며, 조화와 단합의 여신 콩코르디아의 이미지를 새긴 주화를 주조하여 모든 로마인이 단합할 것을 촉구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