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이동문서 삭제토론 아이유 (문단 편집) ==== 2015년~2016년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아이유 프로듀사.gif|width=100%]]}}}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iu_Leon.gif|width=100%]]}}} || || '''{{{-1 드라마 《[[프로듀사|{{{#fff 프로듀사}}}]]》}}}''' || '''{{{-1 [[무한도전|{{{#fff 무한도전}}}]] [[영동고속도로 가요제|{{{#fff 영동고속도로 가요제}}}]] <[[레옹(노래)|{{{#fff 레옹}}}]]> 무대}}}''' || [[2015년]]에도 많은 활약을 펼쳤다. 2월에는 [[인스타그램]][* 계정명은 본인의 별명인 '[[이지금]]'을 영어 타자로 친 'dlwlrma'이다. 이지금이라는 이름은 추후 공식 유튜브 채널명으로도 사용하면서 잘 알려지게 되었다.] 계정을 개설하여 팬들과의 소통을 시작했고, 5~6월에는 KBS2 드라마 《[[프로듀사]]》에서 [[신디(프로듀사)|신디]] 역으로 출연하여 한층 발전된 연기력을 보여주며 연기 활동에 대한 호평이 상승했다. 또한 해외 활동국을 중화권으로 전환한 아이유의 중화권 인기 상승 및 팬덤 구축에 큰 영향을 끼친 드라마이기도 하다. 5월 18일에는 디지털 싱글 <[[마음(아이유)|마음]]>을 발매하며 아이유가 팬들을 위해 만든 선물이라고 밝혔다.[* 사실 발매 이틀 전, 아이유가 주연으로 출연 중이던 드라마 《[[프로듀사]]》 2화에서 먼저 짧게 공개되었다.] 이 곡은 이후 매 콘서트마다 관객들과 떼창을 하는 소중한 [[팬송]]으로 자리매김했다. 팬송임에도 2015년 [[가온차트|가온]] 연간 디지털 차트 15위, 2015년 멜론 연간 차트 25위를 기록하며 흥행에도 성공했다. 여름에는 MBC 《[[무한도전]]》의 [[영동고속도로 가요제]] 특집에 출연했다. 파트너 [[박명수]]와 티격대는 케미를 보여준 동시에 박명수가 흥얼거린 멜로디에서 영감을 받아 즉석에서 기타로 곡을 연주하는 싱어송라이터의 모습도 보여주었다. 그렇게 본인이 작사, 작곡에 참여한 가요제 참가곡 '''<[[레옹(노래)|레옹]]>'''을 세상에 내놓았다. 최강의 화제성을 가진 무한도전 가요제와 초강력 음원 파워를 지닌 아이유가 만난 결과는 놀라웠다. 음원 발매 이후 모든 음원차트에서 1위를 석권한 것은 물론, [[멜론(음원 서비스)|멜론]]에서 24시간 이용자수 '''140만 명'''을 기록하며 당시 압도적으로 '''역대 최다 24시간 이용자 수''' 기록을 경신했다.[* 이후 3년 동안 해당 기록은 깨지지 않았고, 2018년 10월에 발매된 아이유의 디지털 싱글 <[[삐삐(아이유)|삐삐]]>가 24시간 이용자수 146만 명을 기록하면서 해당 기록을 경신했다.] [[http://mlbpark.donga.com/mbs/articleV.php?mbsC=bullpen2&mbsIdx=3118739&cpage=3&mbsW=&select=&opt=&keyword=|#]] 또한 24시간 동안 22번의 지붕킥을 기록하는 등 그야말로 역대급 음원 성적을 거두며 싱어송라이터로서의 입지를 한결 더 탄탄히 했다.[* 음원 공개 직후에는 트랙 순서에 따라 황태지의 <맙소사>에 이어 2위를 기록했으나 새벽 2시부터 1위에 올랐고, 그 후로 쭉 1위를 기록했다.] [[지니뮤직|지니]]에선 역대 최다 지붕킥 기록을 갈아치웠고, [[멜론(음원 서비스)|멜론]]에서도 87회의 지붕킥을 기록하며 역대 지붕킥 2위 기록을 경신했다.[* 1위는 [[싸이]]의 <[[GENTLEMAN]]> (89회)] 2015년 10월 23일, 미니 4집 '''[[CHAT-SHIRE]]'''를 발매했고, 아이유 본인이 '''전곡 작사를 비롯해 최초로 프로듀싱을 맡았다'''. 자전적이면서 다소 날선 메시지를 전하는, 조금은 도발적이기도 한 이전까지 한 번도 보여준 적 없는 스타일의 음악들을 선보였다. 아티스트라는 타이틀을 얻은 것에 이어 이미지 변신까지 시도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타이틀 곡 '''<[[스물셋]]>'''은 발매와 동시에 각종 음원차트 1위를 석권한 것은 물론, 수록곡 7곡이 각종 차트에서 줄 세우기를 했으며, <스물셋>으로 음악방송 1위까지 달성했다. 특히 멜론에서는 <스물셋>과 <푸르던>, <새 신발>이 각각 1위부터 3위까지 차지한 것에 그치지 않고, 3곡이 동시에 지붕킥을 달성하는 이른바 '''트리플 지붕킥'''을 보여주었다. <스물셋>은 [[멜론(음원 서비스)|멜론]] 24시간 이용자수 '''124만 명'''을 기록하며 당시 멜론 24시간 최다 이용자 수 역대 3위[* 1위는 <레옹>의 140만 명, 2위는 <맙소사> 133만명으로, 둘 다 [[영동고속도로 가요제]]의 방송 음원이었다.] 및 '''방송 음원 제외 역대 1위''' 기록을 경신했고, <푸르던>과 <새 신발>은 수록곡임에 불구하고 각각 멜론 24시간 이용자수 '''95만 명'''과 '''88만 명'''을 기록하며 웬만한 가수들의 타이틀 곡 이상의 화력을 보였다. 수록곡 <[[무릎(아이유)|무릎]]> 또한 앞서 언급한 곡들만큼의 화력은 아니었지만 음원차트 줄세우기에 가담했고, 이후에도 꾸준히 명곡으로 언급되는 곡이 되었다. 다만 방송 활동은 거의 하지 않았고, 11월부터는 [[CHAT-SHIRE(콘서트)|전국 투어 콘서트]]를 진행했다.[* 절친 [[유인나]]의 라디오에 출연한 것을 제외하면, 2015년 [[SBS 가요대전]] 출연이 유일한 방송 활동이었다.] 앨범 발매 2주 후, 타이틀 곡 <스물셋>의 뮤직비디오 콘셉트와 수록곡 가 페도필리아를 암시한다는 [[CHAT-SHIRE/논란|논란]]이 [[여초 커뮤니티]]를 시작으로 번졌는데, 인신공격성 악플들과 짜깁기식 악성 루머들이 인터넷 커뮤니티를 일시적으로 뒤덮으면서 아이유의 연혁에서 두 번째로 큰 역경을 겪었다.[* 불과 1달 전 [[장기하]]와의 열애 소식이 밝혀지기도 하며 아이유에게는 여러모로 착잡했던 시기가 되었다.] 하지만 아이유는 정면돌파를 해나가며 이내 극복하는 모습을 보였고, 한편으로는 이전까지 내부 갈등 많았던 [[유애나|팬덤]]의 대대적인 결집을 불러일으키며 코어 팬층이 훨씬 더 견고해지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이 사건으로 [[국민 여동생]] 이미지를 내려놓게 되긴 했으나 사실 2013년부터의 행보를 보면 이미지 변신에도 열을 올렸기에 이는 그리 안타까워 할 일은 아니었다. 시끄러웠던 한 해였음에도 불구하고 [[한국갤럽]]에서 실시한 주관식 설문조사에서 2015년 올해를 빛낸 가수 '''2위'''[* 15.4%], 2015년 올해의 가요 '''4위'''에 <[[마음(아이유)|마음]]>[* 3.9%]이 올랐다. 《프로듀사》의 뜨거운 중화권 인기에 힘입어 2015년 6월 이후 홍콩과 베이징, 타이베이에서 팬미팅과 쇼케이스를 여는 등 중화권을 향한 해외 활동을 본격적으로 펼치기 시작했다. 2015년 12월 11일에는 [[SMASH HITS|최초의 대만 앨범]]을 [[컴필레이션 앨범|컴필레이션]] 형태로 발매했는데, 우리나라에서 인지도 부족으로 묻혀버렸던 아이유의 데뷔 곡 <[[미아]]>가 대만 현지 음원차트에서 1위를 기록하는 일이 벌어졌다. [[2016년]]에는 SBS 드리마 《[[달의 연인 - 보보경심 려]]》의 주인공에 캐스팅 되어 한해 내내 촬영에 매진했다. 극 초반에 연기력 논란이 잠시 있었으나 회차가 진행될수록 발전하는 모습을 보였고, 드라마가 마무리된 시점에서 작품이 호평을 받지 못한 주요인은 역사 왜곡과 개연성 논란을 불러일으킨 작가의 문제가 컸다는 것이 주된 평가였다. 음반 활동의 경우 9월에 [[형돈이와 대준이]]의 디지털 싱글 <결정>에 피처링으로 참여한 것이 유일한 활동이었다. 2016년은 2015년에 이어 중화권에서 인기와 인지도를 급격히 쌓아간 시기이기도 한데, 7월에는 중국의 대도시들을 돌며 팬미팅을 진행했고 12월에는 2회의 서울 공연과 함께 홍콩과 대만에서 [[스물네 걸음 : 하나 둘 셋 넷|콘서트]]를 진행했다. 이는 최초의 해외 단독 콘서트였다.[* 2010년대 초반 일본 활동에서 선보인 무대들은 쇼케이스에서 보인 것이었기 때문에 해외 콘서트를 진행한 것은 홍콩과 대만이 최초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