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아이치현 (문단 편집) == 역사 & 문화재 == [[고키시치도|옛날 이름]]으로 현의 서쪽은 [[오와리]](尾張), 현의 동쪽은 [[미카와]](三河)라고 불렸는데, [[전국시대(일본)|전국시대]]를 종식시킨 '[[울지 않는 두견새|3대 천하인]]'인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 모두 오늘날의 아이치현 출신이다. 노부나가와 히데요시는 오와리 출신이고 이에야스는 미카와 출신. 또한 이들의 가신들도 모두 이 지역 출신으로 [[전국시대(일본)|일본 전국시대]]에 큰 영향을 끼친 인물들을 많이 배출한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전국시대를 다룬 오늘날 이 지역에서는 위의 세 명을 마스코트로 활용하고 있으며 3대 천하인을 기리는 지역행사 또한 열고 있다. 한 가지 재미있는 건 오와리와 미카와로 나뉜 옛날에는 바로 옆 동네였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기질이 매우 달랐다고 한다. 오와리는 [[상업]]이 발달한 관계로 약삭빠르고 출세지향적인 사람들이 많았던 반면에, 미카와는 [[농업]]이 발달하여 우직하고 고집불통인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전장에서의 미카와 사람들은 퇴각을 모르고 용감히 싸우는 등 주인에게 철저히 순종했다고 한다.[*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애당초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부친과 조부부터가 가신에게 살해되었으며, 이에야스 자신도 미카와 통치 초기에는 빈번한 잇코잇키(농민봉기)로 인해 엄청 고생했었다. 그래서 '충직한 미카와 무사'는 에도 시대 이후 도쿠가와 정권이 충효를 강조하는 과정에서 어느 정도 만들어낸 이미지로도 볼 수 있다.] 그래서 전국시대 최후의 승자인 미카와 출신의 이에야스의 천하통일에는 바로 동향인 미카와 무사들의 용맹함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기질의 차이는 지금까지도 일정 부분 남아서 구 오와리 지역인 나고야 등 서부와 구 미카와 지역인 [[오카자키]], 토요하시 등 동부는 문화적으로나 기질적으로 차이를 보이는 측면이 있다. [[도쿠가와 막부]]의 영향으로 전국통일 후 오와리 지방도 도쿠가와 일가의 영향을 받았는데, 당시 [[번(제후국)|번]]이었던 오와리번(尾張藩)을 다스린 도쿠가와 일가를 오와리 도쿠가와씨(尾張徳川氏)라고 부르며, [[에도 시대|에도 막부]] 초중기까지 [[고산케]]의 필두 가문으로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나고야]]시에 위치한 [[나고야 성]]은 앞에서 언급한 오와리 도쿠가와의 거성으로 일본 3대성이라는 타이틀이 붙기도 한다.[* [[히메지 성]], [[구마모토 성]], [[오사카 성]]으로 구분되며 몇몇 군데에서는 이 3중 하나가 빠지고 [[나고야 성]]이 들어가기도 한다.] 1940년대 중반까지 현존하는 천수각을 보유한 성에 속했'''으나''', 1945년 5월 14일 나고야 공습으로 나고야 성에 미사일을 투하하여 천수각과 그 옆에 있던 어전이 소멸되었다고 한다. 이후 천수각은 1959년에 복원되어 내부는 박물관으로 되고 있으며 어전은 복원중이다. 그 외에도 아이치현의 북부 이누야마시에는 국보로 지정된 4개의 천수각중 하나인 [[이누야마 성]]이 있다. 비록 웅장한 규모를 자랑하지 않지만 [[오다 노부나가]]의 숙부가 만든 성으로 일본에서도 유명하다고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