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아인자츠그루펜 (문단 편집) == 절멸 수용소와의 연관성 == 나치의 수뇌부들은 아인자츠그루펜의 학살 결과를 평가하면서 세 가지의 중대한 문제점을 발견하였다. 먼저 보안의 문제가 심각했다. 학살이 마을에서 자행되다 보니 보는 눈이 너무 많아 여기저기 소문이 퍼지기 시작한 것이다. 게다가 학살에 참여한 대원들이 사적으로 학살 현장을 사진이나 영상으로 찍어 보관하거나 '''집에 보내 자랑을 하는 등'''의 문제가 발생하였다. 물론 이 덕분에 아인자츠그루펜의 천인공노할 범죄의 증거가 많이 남을 수 있게 되었지만, 국내외의 비난 때문에 학살을 은폐해야 했던 나치 수뇌부들에게는 골치 아픈 문제였다. 또한 처형 방식도 문제점이었다. 전쟁 중인 상황에서 '''한 발 한 발 아껴도 모자란 판인 총알을 학살에 사용하는 것은 물자 낭비'''라는 지적이 나왔다. 마지막 문제는 처형을 집행하는 대원의 정신 문제였다. 학살이 일상처럼 계속되다 보니 학살에 무감각해지는 대원도 있었지만, 반대급부로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는 대원들이 발생했다. 심지어 이것때문에 [[나치]]에 반감을 가진 일부 극소수 대원들은 상부 몰래 '''유대인들이나 집시족을 석방하는 경우도 있었다.''' 물론 걸리면 사형당하지만, 이런 행동을 한 대원들은 나치 패망 이후 전범 혐의를 벗는 걸로 양심에 대한 보상을 받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모든 독일군 중에서 가장 [[PTSD]]에 많이 걸린 사람들도 양심적으로 행동한 아인자츠그루펜 대원들이었다. 왜냐면 더 많은 사람들을 구하지 못한 죄책감 때문에 정신적으로 엄청난 고통을 받았기 때문이다. 나치는 대원들의 정신적 피로를 덜기 위해 처형에 현지 치안조직 같은 대체 인력을 동원하기도 했지만 한계가 있었다. 물론 정상적인 정권이라면 이 시점에 학살을 중단하고 다른 방법을 찾았을 것이나, 정작 나치는 오히려 더 효율적으로, 더 빠르고 확실하게 학살하는 방법을 찾았다. 그리고 그 결과물이 바로 가스실이 존재하는 절멸수용소였다. 이에 대한 기초적인 개념을 내놓은 자는 [[히틀러 암살 미수 사건]]에 가담하였던 [[아르투어 네베]]였다. 이 자는 반유대주의적 성향이 강했던 자로서 아인자츠그루펜 B의 총책임자였다. 아인자츠그루펜은 이 때부터 야전 대신 학살수용소에서, 총 대신 [[일산화탄소]]와 [[치클론 B]]로 유대인을 학살하기 시작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