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아제르바이잔/역사 (문단 편집) == 고대 == 고대부터 캅카스어족의 캅카스 제족들이 거주하던 지역으로, 이른바 코카서스 알바니아라고도 불렸던 [[알바니아 왕국(고대)|알바니아 왕국]]을 오늘날 아제르바이잔의 기원으로 볼 수도 있다. 고대 알바니아인들의 문화와 언어는 다게스탄의 [[레즈긴인]]과도 다소 흡사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다게스탄과 오늘날 아제르바이잔 일대에 해당하는 지역에서 캅카스 제족들이 번성했던 것과 별개로 오늘날의 남아제르바이잔에 해당하는 지역에는 기원전 10세기부터 기원전 7세기까지 [[https://en.wikipedia.org/wiki/Mannaea|만나이 왕국]]이 번성하였다. 만나이 왕국 주민들이 어떤 어족의 언어를 가지고 어떤 기원을 가지고 있었는지는 아직 밝히져져 않았다. 기원전 9세기 무렵에는 [[스키타이]] 유목민들이 아제르바이잔 일대에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이후 기원전 678년부터 [[인도유럽어족]] 계열의 부족들이 건국한 [[메디아 왕국]]이 들어선다. 메디아 왕국은 [[아시리아]]가 멸망한 이후 이집트, [[바빌로니아]]([[칼데아]]), [[리디아]]와 더불어 오리엔트에서 주요 지역강국 중 하나로 부상했다. 그러다가 기원전 550년, [[키루스 2세]]에 의해 [[이란]] 서남부에 건국된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가 등장하면서 [[오리엔트]]는 통일되었고, 메디아 역시 페르시아에게 점령당했다. 스키타이 및 메디아 및 페르시아 점령 기간동안 페르시아를 비롯한 이란계 제족들의 문화가 여기서 정착했다. 이 시기 이 지역에서 발원되어 전파된 [[조로아스터교]]는 중세까지 아제르바이잔, 더 나아가 이란의 문화에 많은 영향을 끼쳤는데, 석유와 가스가 많은 아제르바이잔 특성상 이 지역은 조로아스터교의 성화 숭배의 중심지로 떠오르기도 했다. 기원전 4세기 [[마케도니아 왕국]]의 [[알렉산드로스 대왕]]에 의해 페르시아가 마케도니아에게 멸망되면서 이곳은 마케도니아 왕국의 영토가 되었다. 페르시아의 메디아 지역 [[사트라프]]였던 [[아트로파테스]](Aτρoπάτης)는 항복하여 사트라프 자리를 무사히 유지했는데, 알렉산드로스 3세가 사망한 후 [[디아도코이]]들이 제국을 갈라먹을 때 아트로파테스가 다스리던 메디아를 둘로 쪼개서 빼앗으려 하자 아트로파테스는 메디아 북쪽 구석을 차지하고 독립해 버렸다. 이 일대를 아트로파테스의 땅이라 하여 [[고대 그리스어]]로 아트로파테네(Ἀτροπατηνή), 사산 왕조 시절의 중세 [[페르시아어]]로 아투르파타칸(Āturpātākān)이라고 했다. 이 아투르파타칸이 아다르바드간(آذربادگان, āδarbādgān)과 아다르바예간(آذربایگان, āδarbāyegān) 같은 식으로 점차 발음이 변하여 현대 페르시아어의 어재르버이전(آذربایجان, Âzarbâyjân)이 되었다는 설명이 일반적이다. 이후 아투르파타칸 세력은 독립을 유지하다가 BC 2세기 경 [[카스피해]] 동부 일대의 다하이족이 남하하여 [[파르티아]]를 건국하자 파르티아의 봉신국이 되었고, 서기 253년 [[사산 왕조]] 시대 정복되어 확고한 페르시아령이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