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아카데미상 (문단 편집) == 시상식 기록 및 에피소드 == 개별 문서가 있는 회차는 해당 문서를 참조. * 1936년 제9회 시상식: 처음으로 연기 부문에서 주연상과 조연상을 나누어 시상하기 시작하였다. 이전까지는 주조연에 관계없이 남녀 배우 한 명씩에게만 연기상 트로피가 돌아갔었고, 이 해부터 비로소 여우주연상, 남우주연상, 여우조연상, 남우조연상 총 4명에게 영광이 주어지게 되었다. 이 해 첫 남우조연상 수상의 영광을 안은 [[월터 브레넌]]은 이후 총 두 번의 트로피를 더 받아 현재까지 조연상 3관왕의 업적을 달성한 유일한 배우로 기록되고 있다. 또한 [[캐서린 햅번]]과 더불어 연속으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던 여배우 [[루이제 라이너]]가 9회, 10회에서 수상하였다. 이 분은 100세가 훨씬 넘게 장수하여 2014년 12월 30일에 사망하였다. * 1939년 제12회 시상식: 영화사상 손꼽히는 명작들이 한 해에 쏟아져 나오면서, 이 해의 시상식은 현재까지도 아카데미 역사상 가장 치열했던 한 해로 기록되고 있다. 《[[오즈의 마법사(영화)|오즈의 마법사]]》, 《[[스미스씨 워싱턴에 가다]]》, 《[[러브 어페어]]》, 《[[역마차(영화)|역마차]]》, 《굿바이 미스터 칩스》 등 할리우드 초창기의 주옥같은 작품들[* 무려 80여년 전 영화들임에도 대부분 개별 문서가 있다!]이 일제히 최우수작품상을 비롯한 주요 부문에 후보에 오르며 모든 제작들이 잔뜩 기대를 걸었으나 세기의 명화이자 당시 경이적인 흥행돌풍을 일으켰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미국 영화)|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싹쓸이에 밀려 대부분 무관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이 작품은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한 최초의 컬러 영화이기도 하며, 특히 [[흑인]] 유모 역의 [[해티 맥대니얼]]이 이 해 여우조연상을 수상, 흑인으로서는 최초로 아카데미 수상자가 되기도 하는 등 여러가지로 의미있는 기록을 많이 세웠다. 다만 한 가지 어이없는 것은 정작 이 작품을 말할 때 절대 빼놓을 수 없는 [[레트 버틀러]] 역의 [[클라크 게이블]]이 남우주연상 부문에서[* 다만 클라크 게이블은 4년전, [[어느 날 밤에 생긴 일]] 출연으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장엄하고 감동적인 스코어를 작곡한 맥스 스타이너는 음악상 부문에서 고배를 마셨다는 것. * 1948년 제21회 시상식: 사상 처음으로 헐리우드에서 제작되지 않은 영화가 작품상을 수상하였다. 주인공은 바로 [[로런스 올리비에]] 주연의 《[[햄릿]]》. * 1969년 제41회 시상식: 주요 부문인 여우주연상의 첫 '''공동 수상'''이 있었다. 바로 [[바브라 스트라이샌드]]와 연기부문 역대 최다관왕 수상에 빛나는 [[캐서린 헵번]]이 그 주인공. 주요 부문의 공동수상이 거의 없다시피 한 이 시상식의 특성상 희귀한 일이다. 당시 시상자로 나온 [[잉그리드 버그만]]이 수상자의 이름이 적힌 종이를 펼치며 수상자를 호명하려는 순간 종이를 보고 당황한 표정을 짓더니 "The winner... is a... tie"(수상자는... 공동수상이군요) 라고 밝히며 수상자를 두 명 불렀다고 한다. * 1971년 제43회 시상식: 《[[패튼 대전차군단]]》이 작품상, 감독상, 남우주연상을 차지했다. 그러나 남우주연상 수상자인 배우 조지 스콧은 '''뭐하러 아카데미 가냐? 난 집에서 하키 경기나 봐야지.''' 이라며 시상식에 나타나지 않았다. 결국 남우주연상 수상자를 발표한 [[골디 혼]]의 벙찐 표정만이 TV를 타고 전 미국에 방영. 스콧은 평소에 오스카를 싫어했고 자신에게 상을 준다고 해도 시상식에 나가지 않을 거라고 공언했었다고 한다. * 1972년 제44회 시상식: [[찰리 채플린]]은 [[매카시즘]] 선풍이 일 때 [[공산주의자]]로 몰려 결국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미국을 떠나 [[영국]]에서 활동하다가 이 해에 공로상을 수상하며 미국에 돌아왔다.[* 공교롭게도 그 해에 채플린 같은 이들을 빨갱이로 몰았던 [[FBI]] 수장 [[존 에드거 후버]]가 세상을 떠났다.] 백발의 채플린이 입장할 때 관중들은 기립하여 박수를 쳤고 채플린이 수상 소감을 다 마칠 때까지 자리에 앉지 않고 경청했다고 한다. * 1973년 제45회 시상식: [[말론 브란도]]는 《[[대부(영화)|대부]]》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지만, 그는 미국 정부가 [[아메리카 원주민|네이티브 아메리칸]]들을 차별하는 것에 반대한다면서 수상을 거부하고 시상식에 불참했다. 대신 네이티브 아메리칸 전통 복장을 입은 서신 리틀페더(Sacheen Littlefeather)가 대리 수상하면서 브랜도의 불참 이유를 밝혔다고. 나중에 밝혀진 것으로는 리틀페더는 네이티브 아메리칸이 아니었기 때문에 브랜도의 수상거부의 진심이 과연 네이티브 아메리칸 차별 문제 때문이었는지는 불명.[* 그러나 말론 브란도는 일평생 반골적인 성향이었고 실제로 네이티브 아메리칸들의 권리 향상을 주장하는 운동에 동조했었기 때문에 비록 리틀페더가 원주민 혈통이 아니라 해도 전 미국에서 가장 주목받는 시상식 순간을 이용해서 네이티브 아메리칸 차별 반대를 주장한 건 진심이었을 걸로 보인다.] 그리고 2022년에 사친 리틀페더가 부당한 대우를 받은 것에 대해 사과했다. 한편 시상자로 예정된 [[찰턴 헤스턴]] 대신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나와서 시간을 끌다가 헤스턴이 나타나자 자리를 피했다. 헤스턴이 늦은 이유는 시상식에 오다가 자동차가 펑크가 난 탓이었다고. * 1974년 제46회 시상식: 미국판 [[카우치]] 사건인 오펄 [[알몸]] 사건이 일어났다. 사연인 즉 사회자 [[데이비드 니븐]]이 [[엘리자베스 테일러]]를 시상식의 마지막 순서인 작품상 시상자로 소개하려던 순간 로버트 오펄(Robert Opel)[* 사진작가로 알려져 있으며, 5년 뒤에 강도사건에 휘말려 사망했다.]이란 사람이 홀라당 벗은 채로 무대 중앙을 가로질러 버린 것. 니븐은 일순 당황했지만 "이런 일은 항상 있기 마련이지요, 재미있습니다. 저 사람은 옷을 벗고 자기 결점을 드러내는 게 인생의 낙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네요"라며 애써 웃어넘겼다. 시상자로 나선 테일러도 당황해서 수상 후보작들을 발표할 때 버벅댔다고.[[https://www.youtube.com/watch?v=EWBc-ir6IFM|#]] * 1977년 제49회 시상식: 이 해에는 《록키》가 작품상, 감독상 등을 휩쓸었는데, 그런 분위기를 반영하듯 [[실베스터 스탤론]]이 시상식 초반 여우조연상 시상을 하러 나오다가 갑자기 [[무하마드 알리]]가 슬그머니 무대뒤에서 나와서 스탤론과 복싱을 하는 일이 일어났다. 물론 이건 일종의 퍼포먼스였으며 유일하게 록키와 알리가 맞붙었던 순간이었다나(…)[[https://www.youtube.com/watch?v=o3g7kclmm0I|#]] * 1978년 제50회 시상식: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바네사 레드그레이브]]는 수상 소감에서 [[시오니즘]]에 대해 노골적인 불만을 토로 했고 시오니즘과 [[파시즘]]에 대항해 싸울 것이라고 말했다. 유명한 안티 시오니스트였던 레드그레이브가 후보에 올랐을 때부터 반발하던 사람들은 이같은 발언을 듣고 사진을 불태우는 등 난리를 피웠다. 레드그레이브의 소감이 끝난 직후 이어진 각본상 시상에서 시상자 패디 차옙스키(Paddy Chayefsky)는 "개인적인 견해 및 정치 공세를 시상식을 이용한다는 것 자체가 역겨운 일이다"라고 바로 반박하고 "수상 소감을 말하는 자리는 단지 감사를 표하면 되지 선언을 할 필요는 없다"라고 일침을 가했다.[* 패디 차옙스키는 유대인으로 반 시오니스트였던 레드그레이브를 엄청나게 싫어했다. 감독인 [[시드니 루멧]]과 같이 영화 《[[네트워크(영화)|네트워크]]》를 만들 때도, 당초 루멧은 여주인공으로 레드그레이브를 캐스팅하려 했지만, 차옙스키의 완강한 반대에 부딪히게 된다. 루멧도 레드그레이브를 최선을 다해 변호했지만 결국 밀려 계획을 철회했다. 아이러니한 것은 루멧도 유대인이라는 점.][* 다만 차옙스키의 이 발언에 대해서도 반응은 여러 갈래로 나뉘었다. 당시 영상을 보면 객석에 앉아있던 배우 [[셜리 맥클레인]]이 차옙스키의 발언에 표정이 싹 굳어지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장면이 그대로 포착되어 있다.] * 1981년 제53회 시상식: 원래 이 해의 시상식은 3월 30일에 열릴 예정이었지만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저격미수 사건이 일어나는 바람에 하루 연기되어 3월 31일에 열렸다. 이미 이전에 1968년 40회 시상식에도 [[마틴 루서 킹]] 목사가 [[암살]]되어 시상식이 연기된 적이 있었다. * 1988년 제60회 시상식: 이 해 작품상은 《[[마지막 황제]]》가 차지했는데 시상을 하러 나온 [[에디 머피]]는 '''"할리우드가 너무 [[흑인]]을 차별 대우한다. 흑인에겐 20년에 한 번꼴로 상을 주는데 내가 상을 타려면 2004년이나 돼야 타겠네?"'''라며 불만을 터트렸다. 재미있게도 머피의 예언(?)이 적중했는지 2005년 77회 시상식에서 흑인 배우인 [[제이미 폭스]]가 남우 주연상을 수상했다. 머피 자신도 2006년 《[[드림걸즈(영화)|드림걸즈]]》로 생애 첫 오스카 후보(남우조연상)에 올랐지만. * 1991년 제63회 시상식: 이탈리아 출신의 전설적인 여배우 [[소피아 로렌]]이 아카데미 공로상을 수상했는데, 이 해 소개와 시상을 맡은 배우는 바로 28년 전 제35회 시상식에서 그녀가 남우주연상을 시상했던 [[그레고리 펙]]. 각각 미국과 유럽을 대표한다고 해도 손색이 없을 영화계의 두 전설이 수십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다시 오스카 무대에서 조우하는 감동적인 모습에 후배 영화인들 모두가 기립박수로 존경을 표했다.[* 다만 시간관계상 2009년부터 공로상 및 특별상 등의 수상을 별도의 시상식(Governance Award)으로 진행하게 되면서 더 이상 이런 모습을 오스카 본상 시상식에서 볼 수 없게 된 점에 아쉬움을 표하는 이들도 많다.] * 1992년 제64회 시상식: 여우조연상 부문에서 [[바네사 레드그레이브]], 조앤 플로라이트, 미란다 리처드슨 등 쟁쟁한 배우들이 후보로 오른 가운데, 많은 평론가들의 예상을 깨고 당시 신인이었던 《나의 사촌 비니》의 [[마리사 토메이]]가 상을 받았다. 이 결과를 놓고 곧 실제 수상자는 [[바네사 레드그레이브]]였는데, 시상자인 [[잭 팰런스]]가 약에 취해 봉투의 이름 대신 [[프롬프터]]에 마지막으로 등장한 후보명을 잘못 읽었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다. 아카데미 측이 여러 차례 근거없는 루머임을 밝히고 나섰지만 실제 수상자였던 토메이는 꽤나 마음고생을 했다는 후문.[* 아카데미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라면 믿을 수 없는 루머이긴 했다. 프롬프터의 글자는 빠르게 지나가기도 하고, 봉투에는 오로지 수상자 한 사람의 이름만 적혀있다.] * 1994년 제66회 시상식: 영화 《[[필라델피아(영화)|필라델피아]]》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톰 행크스]]가 수상소감에서 자신에게 처음으로 연기를 가르쳐 준 은사를 들면서[* 물론 [[동성애자]]라고 아웃팅을 한 건 아니고 이미 사전에 해당 지역 신문이 그 은사에게 허락을 받은 상태에서 이미 기사화되어 알려져 있었으며, 그리고 시상식 전에 미리 연락을 했다고 한다.][* 이 수상소감에서 영감을 얻어 만들어진 영화도 있는데 바로 [[케빈 클라인]] 주연의 코미디 영화 《인 앤 아웃(In & Out)》(1996)이다.] 오스카상 수상소감 중 감동적인 수상 소감 중 하나로 꼽힌다. 그런데 이 때 받고 다음 해에 포레스트 검프로 '''또''' 받는다. * 1998년 제70회 시상식: 아카데미 시상식 7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역대 연기상 수상자들을 대거 무대로 초청[* 우연의 일치인지 연출인지 모르나 정확히 70명이 모였다.], 한 명씩 호명하며 '오스카 가족 사진'을 촬영하는 [[https://www.youtube.com/watch?v=PSdC8-5jcPU|기념비적 장면]]이 연출되었다. 당시 모인 멤버들이 무려 [[그레고리 펙]], [[찰턴 헤스턴]], [[셜리 템플]], [[시드니 푸아티에이]], [[숀 코네리]], [[마이클 케인]], [[더스틴 호프만]], [[잭 니콜슨]], [[로버트 드니로]], [[덴젤 워싱턴]] 등. 아카데미 사상 최대 규모의 슈퍼스타 회합이었다고. * 1999년 제71회 시상식: 이 해에 [[로베르토 베니니]]가 《[[인생은 아름다워]]》로 [[외국어]] 영화 최초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는데 수상이 발표되자 통로로 나오는 게 아니라 의자를 마구 점프해서(…) 뛰어나왔다. 또 수상소감이 "나는 모든 사람에게 키스해주고 싶다"라서 화제가 되기도. 이 영화는 그 해 4개 부문을 수상하는 기염을 토했다. 한편 공로상은 원로감독 [[엘리아 카잔]]에게 돌아갔지만, 카잔은 [[매카시즘]] 선풍이 불 당시에 동료 영화인들을 밀고했던 탓으로 절반은 일어서고 절반은 자리에 그대로 앉아 박수도 치지않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영상은 이곳에서 확인할수 있다. 영상 2분쯤에 등장하는, 무대를 싸늘하게 바라보는 [[닉 놀테]]가 무척이나 인상적이다.[[http://asanotadanobu.tistory.com/736|#]] [[에드 해리스]], 에이미 매디건 부부 역시 팔짱끼고 노려보듯 바라봤다.] * 2000년 제72회 시상식: 이 해에는 '''오스카 트로피들이 몽땅 도난'''당하는 황당한 사태가 발생하는 바람에 다급해진 아카데미에서 1주일을 남겨두고 부랴부랴 트로피들을 다시 만들어야 했다. 도난당한 트로피들은 시상식 며칠 전에 LA [[코리아타운]]의 쓰레기통 속에서 발견되었으며, 누가 트로피를 훔쳤는지는 아직까지도 밝혀지지 않고 있다. * 2002년 제74회 시상식: [[할리 베리]]가 《몬스터 볼》에서의 열연으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면서 74년 만에 흑인 최초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는 기록을 남겼다. 유독 흑인배우를 홀대하는 것으로 비판받았던 아카데미였기에 이 해의 수상은 더욱 인구에 회자되었는데, 단상에 오른 베리는 감격에 겨운 나머지 폭풍 눈물을 쏟으며 자신보다 앞서 활동했던 전설적인 흑인 여배우들[* 도로시 댄드리지, 레나 혼, 다이안 캐롤 등을 언급한다.]에게 영광을 바친다고 말해 기립박수를 받았다.[* 그리고 이후 베리는 《[[캣우먼]]》으로 [[골든 라즈베리]] 상을 받으며 이 장면을 셀프 패러디했다(…).] 한편 이 해에는 남우주연상 역시 [[덴젤 워싱턴]]이 수상하면서 흑인 배우가 남녀 주연상을 휩쓰는 쾌거를 달성했으며, 전설적인 원로 흑인 배우 [[시드니 푸아티에이]] 역시 공로상을 수상하면서 말 그대로 흑인 예술인들의 위상을 크게 세워준 시상식이 되었다. * 2003년 제75회 시상식: 이 해에 만 29세의 [[에이드리언 브로디]]가 《[[피아니스트]]》로 역대 최연소 아카데미 남우 주연상을 수상했는데 수상이 발표되어 무대에 올라가자마자 바로 시상자이던 할리 베리에게 진하게 키스했다. 그리고 전쟁과 인간에 대한 소감을 짤막하게 이야기 했는데 더 이야기 하고 싶었으나 키스하는 시간이 생각보다 길어 더 이야기 할 수 없었다고. * 2009년 제81회 시상식: 이 해에는 배우 [[휴 잭맨]]이 시상식의 호스트를 맡아 두고두고 회자되는 뮤지컬 시퀀스를 보이며 대호평을 받았다. 한편 [[히스 레저]]가 역대 최초로 슈퍼히어로 영화 [[다크 나이트(영화)|다크 나이트]]의 [[조커(다크 나이트 트릴로지)|조커]]로 남우조연상을 수상하였으나, 애석하게도 히스 레저의 요절로 사후 수상이 이루어졌다. 대리 수상한 가족들의 수상소감이 이어지는 가운데 이를 지켜보는 배우들의 눈시울이 붉어지는 장면이 다수 잡혔던 건 여러모로 환호와 안타까움이 겹쳐지는 장면. * 2011년 [[제83회 아카데미 시상식|제83회 시상식]]: '''[[1916년]]'''생인 [[커크 더글러스]]가 시상자로 나와 기립박수를 받았다. * 2013년 제85회 시상식: 시상식 사상 최초로 미국 대통령 영부인인 [[미셸 오바마]]가 최우수 작품상을 발표하였다. 물론 시상식장에 나온 건 아니고 [[백악관]]과의 이원 생중계 형식을 빌려, 화면으로 출연하였다. 시상식장 무대에 같이 나온 배우는 '''[[잭 니콜슨]]'''. 실제 수상한 작품은 바로 《[[아르고(영화)|아르고]]》. * 2014년 [[제86회 아카데미 시상식|제86회 시상식]]: 진행자 [[엘런 디제너러스]]의 셀카, 피자 파티, [[존 트라볼타]]의 [[이디나 멘젤|아델 다짐]] 사건 등 다사다난하고 유쾌한 시상식이었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문서 참조. * 2016년 [[제88회 아카데미 시상식|제88회 시상식]]: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5번 만에 드디어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 2017년 [[제89회 아카데미 시상식|제89회 시상식]]: 강력 후보 《[[라라랜드]]》가 과연 몇 관왕을 올릴 것이냐에만 관심이 모아졌는데, 《[[문라이트(영화)|문라이트]]》가 작품상을 받는 이변이 일어났다. 그동안 비백인에게 박해서 '화이트 오스카'라고 불리었던 것에 비하면 센세이셔널한 결과였다.[* 《라라랜드》는 감독상, 여우주연상, 주제가상, 촬영상, 음악상, 미술상을 받는데 그쳤다.] 그리고 무엇보다 '''최우수작품상 수상 번복'''이라는 '''아카데미 89년 역사상 최악의 사고'''가 일어났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문서 참조. * 2020년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제92회 시상식]]: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영화)|기생충]]》이 영어가 아닌 언어로 제작된 영화 최초로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하였다. * 2022년 [[제94회 아카데미 시상식|제94회 시상식]]: 시상식에서 도를 넘는 가족 개그를 한 '''[[윌 스미스의 크리스 락 폭행 사건|크리스 락에게 남우주연상 시상자인 윌 스미스가 죽빵을 날린 사태]]'''가 발생했다. 당연히 전 세계에 이 죽빵이 생중계 되었고 덕분에 시상식의 모든 이슈가 다 묻히는 사태가 발생했다. * 2023년 [[제95회 아카데미 시상식|제95회 시상식]]: 말레이시아 출신의 배우 [[양자경]]이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로 아시아계 여배우 최초로 여우주연상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같은 작품에 출연한 [[키 호이 콴]] 역시 아역배우 시절에 갇혀있던 꼬리표를 떼어내고 무려 20여년 만의 연기 복귀작으로 당당히 남우조연상을 수상했을 뿐 아니라, 시상식의 핵심 부문인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까지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가 휩쓸면서 2020년의 《[[기생충(영화)|기생충]]》 돌풍에 이어 헐리웃에서 아시아계 영화인들의 입지를 크게 올려준 의미있는 해가 되었다. * 아카데미 시상식에 숨겨진 놀라운 비밀들 [[https://cinelab.co.kr/insight_sub_details.html?i_id=3749]]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