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아파트/대한민국 (문단 편집) === 1970년대 이후 === 부실하게 지어진 [[시민아파트]]로 인해 아파트는 위험하고 불결한 것이라는 인식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정부에서도 [[시민아파트]] 정책의 실패의 여파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이후 아파트 정책을 전면적으로 전환했다. 때마침 장동운 [[대한주택공사]] 총재가 1968년 일본에 갔다가 당시 일본에서 유행하던 ‘하이츠’, ‘맨션’[* ‘mansion’이란 단어 자체는 고급 저택을 뜻하는 말이지만, 1970년대에는 30평대 이상~100평대까지의 중대형 고급 아파트를 대체로 그렇게 불렀다. 당시 일본의 고급 공동주택이라는 뜻의 ‘맨션’에서 따온 걸로 보이는데, 지금 현지에서도 고급 아파트를 맨션(マンション)이라고 부른다.][* 현재 한국에도 1960년대 후반 경에 지어진 아파트들 중 이름에 맨션이 들어간 경우가 간혹 있다.] 등의 이름을 딴 고급아파트 분양에서 영감을 얻어 국내에서도 이를 도입하려 하였다. 결국 정부는 시민아파트로 인해 야기된 아파트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불식시키기 위해 중산층을 타겟으로 한, 보다 쾌적한 고층 아파트를 계획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주공]]은 [[1970년]] [[용산구]] [[동부이촌동]] 공무원아파트(1967년) 앞 한강변에 백사장을 매립해서 [[한강맨션아파트]]와 [[LG한강자이|한강외인아파트]]를 건설했다. 이후 약 10년동안 민간건설 아파트 총 3,200여 세대까지 들어서면서 이촌동은 우리나라 최초로 현대적인 의미의 '''아파트촌'''을 형성하게 되었다. 물론 당시 시민아파트도 대규모 단지이긴 했는데, 시민아파트는 주로 산자락에 일렬로 배치되어 건설되는 것이 특징이었고, 동부이촌동 아파트 단지는 한강 백사장 평지를 블록형으로 분할하여 지어진 것이 특징이었다. 한강맨션아파트는 당시 민간 건설사도 아닌 공기업 주공이 고급아파트를 짓는 것에 대해서 국민적인 반발과 저항이 만만치 않았다. 무주택 서민을 위해 주택을 건립해야 할 주택공사가 중산층 아파트를 짓는 것은 본래 의무를 저버린 행위라는 목소리가 거셌기 때문이다. 하지만 장동운 주공 총재는 ‘주택개량과 주거기능 향상의 선구적 역할도 주공의 임무 중 하나’라는 논리로 이를 밀어붙였고, 시민아파트의 참담한 실패로 막대한 부채를 지게 된 정부도 주공의 고급아파트 건설을 지원하게 된다. 이어 1971년 정부와 주공은 당시 막 개발을 하고 있던 [[여의도]]에 [[여의도 시범아파트]]를 건설했다.[* 동시에 와우 아파트 붕괴사고 직후, 당시 막 지어지고 있던 [[회현시민아파트]]도 구조를 보강하여 ‘회현시범아파트’로 개칭하기도 했다.] 여의도 시범아파트는 '''지상 12층'''의 ‘국내 최초의 고층아파트 단지’라는 의의를 갖고 있다.[* 물론 상술되어 있듯이 1967년 힐탑아파트가 최초로 11층에다가 엘리베이터를 갖추긴 했지만 이 아파트는 외국 국적자들에게만 분양되었고 2개동 뿐이라 보편적인 규모의 ‘아파트 단지’로 보긴 힘들다.] 1971년 10월엔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에 홍파아파트가 건설되었다. 맨션건설 붐에 탄생한 초창기 맨션아파트이며, 현재도 주민들이 거주중이다. [[용산구]]의 한강맨션과는 다른 점이 두가지 있다. 첫번째로는 건설 당시에 둘 다 고급 맨션으로 부촌이었지만 한강맨션은 현재도 부촌인 반면 홍파아파트는 동대문구 자체가 노후화되며 고급 주거지의 위상은 없어졌다. 다른 하나는 홍파아파트는 정부주도로 지은 것이 아니라 민간의 주도로 지은 것이라는 점이다. 여의도 시범아파트에 이어 1973년에는 한강 바로 건너편 땅에 무려 3,590가구로 구성된 당시로서는 초대규모 단지인 [[반포주공1단지|반포주공아파트]]를 건설하면서 본격적으로 강남 개발의 서막을 열게 되었다. 여의도 시범아파트와 반포주공아파트가 성공적으로 지어져 시민아파트의 불안감을 씻어내는 것에 성공했다. 이후 주공아파트의 건설이 계속되었고, 민간 아파트 건설도 촉진되었다. 이후 한국의 아파트는 중산층을 위한 주택으로 자리매김을 한다. 한국 아파트의 기초는 여기서 잡혔다고 보면 된다. 아파트가 민간에서도 확고히 자리매김한 이후로는 더 이상 주공도 '''시범'''이란 말을 쓰지 않게 된다. 1976년 신설된 강남구 강변지역에 있는 현대건설의 건설 자재 보관 용지에 [[압구정 현대아파트]]가 지어졌다. 이후 1979년에는 강남구 남쪽의 습지대인 대치동에 [[은마아파트]]가 지어졌다. 1980년부터는 [[목동아파트]] 단지가 개발되기 시작했다. 이 당시는 전기 자체가 귀한 시절이라, 엘리베이터 있는 아파트 자체가 부의 상징이었다. 그리하여, 최대한 전기를 아끼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층과 층 사이에 놓는 공법이 대단히 많이 보급되었다. 물론 [[오일 쇼크]]의 여파도 컸다. 7~80년대 지어진 [[삼익아파트]] 계열 절대다수가 이러했으며, 대구에서는 2000년대 초반까지도 이러한 공법으로 지은 아파트가 상당히 많이 보급되었다. [[강남구]] [[수서동]]의 신동아아파트는 한술 더 떠서 1,4,7,10,13,15층에만 엘리베이터가 서고 나머지 층은 엘리베이터에서 내려서 계단을 타야 한다. 층마다 엘리베이터가 서도록 되어 있는 아파트도 2,3층은 엘리베이터가 서지 않도록 설정해 놓은 아파트가 대단히 많았다. 심한 경우는 4층도 서지 않는 일이 있을 정도였고, 정부도 4층 이하는 걸어다니자는 캠페인을 할 정도였다. 경제가 호전된 80년대 중후반에는 3층은 서고 2층만 서지 않는 경우가 많아졌다. [[1990년대]]에 들어서는 아무리 경제가 나빠져도 이런 식의 특이한 아파트는 절대로 짓지 않는다. 20평대라도 화장실이 2개가 아니면 분양이 되지 않을 정도로 삶의 질 추구 경향이 높아졌기 때문에, 만약 2000년대 중반 이후로 이런 아파트를 짓는 순간 인터넷 커뮤니티나 SNS를 뜨겁게 달구게 될 것이다. 또한 엘리베이터도 임대아파트를 제외하면 거의 지하주차장이 연결되며, 장애인 접근성의 문제로 낮은 층에 엘리베이터를 세우지 않는 일도 없어졌고 이에 따라 1~2층 주민들도 동일하게 엘리베이터 사용료를 지불한다. [[상류층]], [[중산층]]을 위한 아파트 개발이 본격화되면서 [[서울/강남|강남]] 개발의 [[필수요소]] 역할을 했다. 상술했듯, [[1971년]] [[여의도]]를 개발하여 10층 이상 '''최초의 고층아파트'''인 시범아파트[* 현대적인 의미의 [[엘리베이터]]가 들어선 한국 최초의 아파트이다.]를, [[1972년]] 부터는 [[반포동]], 삼성동 등에 중산층들을 위한 [[주공아파트]]들이 들어서, 아파트 개발 붐이 일기도 했다. 사실 [[1980년대]] 중후반까지만 해도 아파트를 소유하는 것은 물론 거주하는 것 자체가 '''부유층의 상징물'''이었다. 그 예로 [[1970년대]]에서 [[1980년대]] 중반까지 지어진 아파트의 구조를 보면 50평대 이상의 대형 평수에는 예외없이 집 한 켠에 [[식모]]방, [[가정부]]실 등이 있었다. 침실, 거실 이외에 [[부엌|주방]] 옆 조그마한 1~2평짜리 쪽방이 설계되었는데 그 방이 바로 가정부실. [[2010년대]] 들어온 지금에는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중요하게 여기다 보니 파트타임 형식으로 일하는 출퇴근식인 [[파출부]]가 있지 가족과 함께 살며 일하는 가정부는 많지 않다. 그 당시 가족과 함께 기거하며 살림을 도맡아하던 식모, 가정부들의 생활상을 반영했던 설계였다. 부유층의 상징이었던 시기에 지은 오래된 아파트 중 일부는 입주자의 경제적/사회적 지위를 고려해 요즘 짓는 아파트보다 더 골조가 튼튼하고 조경이 잘 갖춰진 곳도 있다. 특히 고급 아파트의 경우 동 간격이 엄청나게 넓고 층간소음도 거의 없다. 또한 방이 많은게 특징. 당시엔 그런 대형 평수는 대가족을 위한 곳이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압구정 현대아파트]] 76동 80평형은 방이 7개인데, 2009년 입주한 [[반포자이]]는 91평형도 방이 4개다. [[1970년대]] 중후반쯤 되어서 [[잠실]] 벌판이나 [[화곡동]], [[둔촌동]], [[개포동]] 등지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를 세우면서 본격적으로 서민층들을 위한 아파트의 보급 또한 시작되었다. 또한 현재 대한민국의 아파트로 대표되는 계단식 아파트는 1970년대 중반에 처음 등장했다. 당시에는 저층 아파트 위주로 적용되다가, 1980년대 후반부터는 고층 아파트에도 적용되기 시작했다. 90년대 초반까지는 고층 아파트 단지는 상당수가 15층을 넘지 않았으며, 16층 이상이라 할지라도 신도시 지역을 제외하면 예외없이 엘리베이터가 상당히 좁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