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아프리카 (문단 편집) === 고대~15세기 === 북아프리카는 [[지중해]] 문화권을 형성하는 주요한 지역으로, 이른 시기부터 국체를 형성하여 인류의 역사를 선도한 바 있다. 특히 그 중에서도 [[나일 강]] 하류를 낀 [[이집트]]가 중심이 되었으며, 기원전 1000년을 전후한 시기에 [[리비아]], [[수단 공화국|수단]], [[에티오피아]], [[카르타고]] 등도 역사의 무대에 모습을 드러냈다. 특히 [[페니키아]]인들은 카르타고 등을 건설하고, 기원전 600년경 이집트 왕 네코 2세(Necho II, Νεχώς Β')의 명을 받아서 서아프리카 연안을 항해했다. 기원후 70년경 이집트 상인 그레코가 저술한 에리트라해 안내기에는 [[그리스]]부터 동아프리카 [[잔지바르]]까지 이어지는 해상 교역 활동이 기록되어있다. 그러다 [[포에니 전쟁]]으로 대표되는 [[로마 제국]]의 성장으로 카르타고와 이집트가 몰락, 이후엔 [[헬레니즘 제국]]과 [[로마 제국]]에 편입되어, 북아프리카는 오히려 유럽 세계의 일원으로서 '''수백 년을''' 지냈다. 이 시기의 북아프리카는 오히려 로마화된 경험이 없는 [[동유럽]], [[중부유럽]], [[북유럽]]보다도 더욱 그리스-로마 문명에 가까운 지역이었다. 그러다 7세기에 [[아라비아]]에서 발원한 [[이슬람 제국]]의 발흥으로 다시 유럽 세계에서 빠지게 된 것이다. [[고대 로마]] 제국, [[반달 왕국]], [[동로마 제국]] 등에 속해 경제적으로 흥성했으나, 7~8세기 동쪽에서 밀려들어온 [[이슬람교]]의 열풍이 이 지역을 휩쓴 뒤에는 역사의 새로운 장에 접어들게 되었다. 이집트는 중동의 주류 문화권에 보다 밀접히 가담해 역사적으로 큰 역할을 했으며, 그 이서 지역은 [[마그레브]]로 불리며 북쪽으로는 유럽의 [[이베리아 반도]], 남쪽으로는 서아프리카 무역 국가들에까지 [[이슬람교]]를 전파하며 큰 영향을 미쳤다. 북아프리카와 서아프리카를 이어주는 역할은 [[베르베르]]족, [[투아레그]]인, [[무어인]] 등 유목적인 상인들이 맡았다. 한편 [[에티오피아]]와 [[수단 공화국|수단]]도 단성론계 크리스트교와 이슬람교의 영향을 받으며 계속해서 왕국의 정체를 유지했는데, 16세기 이후에는 남쪽과 서쪽에서 등장한 이민족들의 침입을 받기도 하였다. 이는 이 주변 지역의 정치적 성장을 반영하는 것이다. 한편 사하라 이남의 아프리카는 [[반투족]] 계통 농경민이 남쪽으로 확산되며 철기를 전파하였으나, 초기 역사에서는 혹독한 자연 환경으로 인해 통일적 국체의 형성이 다소 늦었다. 서아프리카에서는 올드 젠네 등의 소국이 서서히 등장하기 시작하다가, 유럽인의 도래 이전까지 [[가나 왕국]], [[말리 제국]], [[송가이 제국]][* 송가이 제국은 [[모로코]]의 침략을 받아 세력이 약해지면서 [[덴디 왕국]]이 생겨났다.], [[모시 왕국]] 등이 이슬람권과 교류하며 [[금]], [[노예]] 등을 매매하였다. 이들은 북부로부터 [[이슬람교]]를 받아들이면서 문자, 의학 등을 보조받을 수 있었으나, [[모로코]]의 개입으로 국가가 패퇴하기도 하였다. 동아프리카 내륙 고원에서는 농경이 아닌 목축이 주류가 되어 정착 생활은 다소 미약했으나, 해안 지방에서는 아랍 상인들과의 교역의 결과로 소팔라, [[잔지바르]], [[모가디슈]] 등의 도시가 발달하였다. 남아프리카에는 [[반투족]]의 대이동으로 코이코이족, 산족 등이 남하하였으나 열대 기후를 거치면서 온대 작물은 전해지지 못했고, 이로 인해 이 지역에서는 목축만이 행해지고 있었다. 중앙 아프리카에서는 [[콩고 왕국]], 루바 왕국, 룬다 왕국, [[르완다 왕국]], [[부룬디 왕국]], [[부간다 왕국]] 등의 국가가 형성되어 자리를 잡았다. 7세기 때부터 왕국이 있었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아프리카]] 문서 참조 북아프리카와 달리 사하라 이남의 그 넓은 땅에서 중앙집권화된 국가가 거의 없었던 이유가 의아할 수 있는데, 상술했듯이 이건 전적으로 자연 환경 문제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곳의 식물들은 먹을 것이 거의 없었다.''' 특히 사하라 이남의 초원 지대와 밀림에서 자라는 식물들은 겨울을 대비할 필요가 없으므로 사시사철 자라면서 지표 무기질을 빨아들여 재빨리 씨앗을 퍼뜨리는 종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즉, 곡물이나 열매는 없고 나무와 풀만 무성하다고 생각하면 쉽다. 자연히 식량 수집 방법 역시 채집, [[수렵]], [[목축]] 정도로 제한될 수밖에 없다. 이렇게 되면 공동체의 형태도 고정된 영토를 점유하기보다는 소규모 집단을 이루어 시기에 맞춰 이동하는 부족 집단 정도로 결정되는 것이다. 중세 이전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의 국가가 사바나와 열대 사이의 좁은 간극에서, 그것도 강의 유량이 풍부한 서아프리카만 일대에서 잠깐 등장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비슷한 위도의 [[남아메리카]]에서는 [[옥수수]]가 기적적으로 개량되어 [[아즈텍 제국]]과 [[잉카 제국]]과 같은 중앙집권화된 제국이 성립될 수 있었다. 그 외에 남아메리카는 [[카사바]], [[고구마]] 정도가 있지만, 사하라 이남 출신 작물은 기껏해야 [[참깨]](추정) 정도가 전부다. 반면에 사하라 이북의 자연 환경은 여름과 겨울이 확연히 구분되므로 겨울에 대비해 각종 과실수나 밀, 쌀, 보리, 콩 등 영양소를 저장하는 곡물류가 자연적으로 생장할 수 있었다. 이로 인해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등지에서는 농경이 시작될 수 있었고, 자연스레 중앙집권화된 왕국이 고대부터 등장하게 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