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아흐마디야 (문단 편집) == 현황 == 전세계적으로 1~2천만 명의 신자가 있는 걸로 추측되나, 아흐마디 신자에 대한 통계는 정확하게 집계할 수 없다. 전통적으로는 [[인도]] 및 [[파키스탄]]에 신자가 많이 거주했었다. 원래 아흐마디야의 발생지가 오늘날 인도 영토인 [[펀자브]] 주 [[https://en.wikipedia.org/wiki/Qadian|카디안]]이기도 했고.[* 이 때문에 이슬람주의자들이 아흐마디야를 부르는 멸칭 중 하나가 까디야니이다.] 그러나 1947년 인도-파키스탄 분리 때 아흐마디야 [[칼리프]]가 파키스탄의 [[https://en.wikipedia.org/wiki/Rabwah|루브와]][* 지금도 주민의 97%가 아흐마디야 신자인데 근본주의에 의해 여기 주민들도 탄압받는 건 마찬가지다.]라는 소도시로 옮겨왔지만, 파키스탄이 점점 [[이슬람 근본주의]]화되면서 1974년 파키스탄 헌법은 아흐마디를 이슬람에서 배제했고, 1984년 [[무함마드 지아울하크]] 군부 정권이 Ordinance XX라는 악법으로 아흐마디야가 스스로를 이슬람이라 일컫는 것도 금지했다. 결국 1984년 아흐마디 칼리프는 파키스탄을 등지고 [[런던]]으로 본부를 옮겨야 했다. 아흐마디야가 박해의 집중 타겟이 된 이유를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본래 아흐마디야의 기원은 남아시아의 흔하디 흔한 수피 교단의 하나였으나, 아흐마디야가 교리 및 체계를 현대화했고 아흐마디야 신도들 중에서 지식인 계층이 나오면서 [[이슬람주의]]에 대한 위협요인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연유로 남아시아의 [[이슬람 근본주의]] 신학자 [[아불 알라 마우두디]]는 아흐마디야 교리를 공격하는 책을 출간하는데, 문제는 아불 알라 마우두디는 사우디아라비아 측의 원조를 이유로 우르두어로 글 쓰는 사람 중에서 책이 가장 많이 보급된 사람이라는 데 있었다.[* 아불 알라 마우두디 전집에 아흐마디야 교리 비판서가 포함되어 있다.] 아불 알라 마우두디 본인부터가 아흐마디야 신도들에 대한 제노사이드를 직접 주장했던[* 다 죽이자고 한 것 까지는 아니지만, 아흐마디야 신도가 외무부 장관에 임명되자 해임시켜야 한다는 시위를 주도하였다.] 사람인 것도 있어서 남아시아 각지에서 아흐마디야 신도들에 대한 사적제재 문제가 심각해졌다. 실질적 창시자인 미르자 굴람 아흐마드가 주류 이슬람의 눈에서는 많이 어긋나 보이는 존재이기도 하고 사우디아라비아의 지원을 얻으려는 [[이슬람주의]] 정당 [[파키스탄 이슬람 회의]]의 만행도 있어서 파키스탄에서는 힌두교나 기독교보다 더 박해당한다. 힌두교나 기독교를 박해하면 다른 나라들의 지탄을 받고 외교 문제로 번지게 되지만, 아흐마디야 박해는 별다른 부작용 없이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을 만족시켜주는 정책이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코를 하기 십상이고, 인도에서는 덜하지만 여기서는 이슬람을 종파 가리지 않고 싸잡어서 통계내는 지라... 파키스탄 출신이면서 '박해당하는 무슬림'이라고 소개되는 자들은 대개 [[시아파]] [[하자라인]]과 이들이다.[* 파키스탄내 아흐마디 수는 60만에서 400만 까지 오르락 내리락 한다. 최대수치라면 파키스탄은 아흐마디 신자가 가장 많은 국가이다!] 이론 물리학자이며 무슬림은 물론 파키스탄 최초의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1979년]])인 [[압두스 살람]](1926~1996)도 아흐마디 신자였다. 때문에 노벨상 수상자임에도 불구하고 파키스탄내에서 공식적인 취급은 좋지 못하다가[* 파키스탄의 역사책이나 과학책에서도 소개되지 않았고, 묘비에 적힌 '최초의 이슬람 노벨상 수상자'라는 문구도 정부의 명령으로 삭제당했다. 물론 아예 없는 것은 아니고, 몇몇 국내 연구소는 그의 이름을 따 지었고, 파키스탄 출신 과학도는 그를 높게 평가한다. 물론 그가 조국에 기여한 바에 비하면, 일천한 것이 사실이다.] 최근에 와서야 재평가되는 분위기이다.[[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4&oid=001&aid=0008874780|#]] 사실 이슬람 선교 단체에서 맨날 자랑하는 [[이븐 시나]] 역시 시아파 소수종파 출신이다. 이단 종파를 믿는다는 이유만으로 [[압두스 살람]]을 [[기록말살형|기록말살]]하려면 당장 중세의 유명한 무슬림 학자들 상당수가 이름이 파여야 하지만,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이 이중 잣대가 심한지라... 이슬람 교리대로 따진다면 선지자는 이슬람 이단을 도와주지 말라고 했지, 기록말살을 하라고 명령한 적이 없다.[* 하디스에서는 [[메디나]]에서 무함마드와 대립하고 결국 끝까지 반목을 청산하지 못해 '위선자'라는 비판을 들었던 우바이둘라가 전투에서 승리를 거둔 내용이 모두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즉 압두스 살림이 노벨상 탄 사실을 기록말살한 행동은 순나(순니파 무슬림들의 따라야 하는 무함마드의 모범적 언행) 기준으로도 어긋난 행동이라 볼 수 있다.] [[인도네시아]]에도 아흐마디야 신자가 좀 있는데, 여기서도 박해를 받고 있다. 아흐마디야 신자들이 신앙생활 하는 것을 막지는 않긴 하지만 2005년 인도네시아 울라마(이슬람성직자)협회에서 아흐마디야를 이단으로 판결하고 2008년부터는 아흐마디야 선교가 정부에 의해 금지되었다고. 심지어 라마단 기간에 이상한 핑계로 아흐마디 모스크를 폐쇄하기도 한다. 해외 선교에도 힘을 쓰고 있다. 미국의 현대 이슬람 역사의 초창기에도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아프리카가 주요 목적지이지만, 전세계를 가리지 않는다. [[가나]], [[말리]]나 [[탄자니아]], [[수리남]], [[가이아나]] 등지에서는 선교의 여파로 신자가 무슬림 중 상당비율을 차지한다. 활발한 선교로 [[나이지리아]]나 [[탄자니아]]에서는 200만이 넘는 아흐마디야 신자를 보유하게 되었다. 한국에는 아흐마디야 주석을 단 쿠란이 소량 보급되었고, 아직 아흐마디야 [[모스크]]는 없다.[* 2015년에 일본 [[아이치현]]에 아흐마디 모스크가 생겼다. 일본 내 아흐마디 신자는 3백여명으로 추산된다.] 한국에 거주하는 무슬림들의 절대다수가 동남아시아, 남아시아, 중앙아시아에서 온 [[수니파]] 무슬림이기 때문이다. 한국에 체류한 파키스탄인 이주노동자 인구 가운데에서도 없지 않아 있는 편이다. 물론 대놓고 자기가 아흐마디야 라고 광고하는 경우는 드물고,[* 아흐마디야 신도들의 성이나 이름은 여타 순니파 무슬림들과 동일하기 때문에 고향 관련 정보 등을 공개하지 않으면 알기 힘들다.] 그렇다고 [[신천지]]처럼 몰래 신도 사칭하면서 사기치는 짓을 하는 것도 아니고 해서 유야무야 뭍혀가는 편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