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안드로마케 (문단 편집) ==== [[트로이]]의 [[왕세자빈]] ==== [[파일:Hector-Andromache-hector-and-andromache-11440131-1920-800 (1).jpg|width=750]] '''▲ 영화 [[트로이(영화)|트로이]]에서 묘사된 [[헥토르]]와 안드로마케 부부. 배우는 세프론 버로즈.''' [[헥토르]]의 정숙한 처로서 아들 [[아스티아낙스]]를 낳고 행복하게 살고 있었는데, 남편의 동생 [[파리스]]가 스파르타의 왕비 [[헬레네]]를 납치해 와 [[트로이 전쟁]]이 일어난다. 헥토르는 트로이의 총사령관이자 최고의 무장으로 전쟁에서 맹활약했고, 그녀의 오빠인 포데스 역시 헥토르와 함께 참전했다. 하지만 헥토르가 [[아킬레우스]]의 절친인 [[파트로클로스]]를 죽이고, 이때 벌어진 시체 쟁탈전에서 오빠 [[포데스]]가 [[메넬라오스]]에게 사망하고, 시신도 끌려가 치욕적으로 훼손당했다. 친구의 죽음에 분노한 아킬레우스는 헥토르와 결투를 하게 되는데, 안드로마케는 남편이 도망쳐서라도 돌아오기를 바랬다. 호메로스의 《일리아스》 6권에 이러한 안드로마케의 심리가 잘 드러나있다. 전투를 앞두고 아내와 아들을 찾아간 헥토르에게 안드로마케는 차라리 비겁자가 되라며 싸우러 나가지 말 것을 애원하는데, 이에 대한 헥토르의 답변이 유명하다. >"난들 어찌 그런 모든 일들이 염려가 안 되겠소, 여보! >하지만 내가 만일 겁쟁이 모양 싸움터에서 물러선다면 트로이아인들과 옷자락을 끄는 트로이아 여인들을 볼 낯이 없을 것이오. 그리고 내 마음도 이를 용납하지 않소. 나는 언제나 용감하게 트로이아인들의 선두 대열에 서서 싸우며 아버지의 위대한 명성과 나 자신의 명성을 지키도록 배웠기 때문이오. >나는 물론 마음 속으로 잘 알고 있소. 언젠가는 신성한 일리오스와 훌륭한 물푸레나무 창의 프리아모스와 그의 백성들이 멸망할 날이 오리라는 것을. >'''그러나 트로이아인들이 나중에 당하게 될 고통도, 아니 헤카베 자신과 프리아모스 왕과, 그리고 적군에 의하여 먼지 속에 쓰러지게 될 수많은 용감한 형제들의 고통도,''' >'''[[네오프톨레모스|청동 갑옷을 입은 아카이아인들 가운데 누군가]]가 눈물을 흘리는 그대를 끌고 가며 그대에게서 자유의 날을 빼앗을 때 그대가 당하게 될 고통만큼 내 마음을 아프게 하지는 않소.''' >(중략) '''그대가 끌려가며 울부짖는 소리를 듣기 전에 쌓아 올린 흙더미가 죽은 나를 덮어 주었으면!"''' >---- >- 《[[일리아스]]》 6권 : 445~470 그가 바란 대로 헥토르는 아킬레우스와의 결전 끝에 목숨을 잃었고, 아내가 그리스군의 손에 넘겨지는 것을 보지 않을 수 있었다. 아킬레우스에게 패배한 헥토르는 그 시체가 전차에 매달리는 치욕까지 당하지만, 다행히 [[프리아모스]] 왕이 시신을 되찾아와 장례를 치른다. 이후 [[오디세우스]]의 지략으로 트로이가 함락당하고, 시아버지 프리아모스와 아들 아스티아낙스는 아킬레우스의 아들 [[네오프톨레모스]]에게 잔인하게 살해당한다. 이 상황에서 더 나빠질 상황이 있었을까? '''있다.''' 트로이 정복 최고의 전리품이자 헥토르 말고 남자를 모르는 안드로마케를 차지하는 것 이상의 달콤한 유혹은 없었기 때문에, 그리스의 장수들은 누가 헥토르의 아내를 차지할 것인가에 대해 자신들의 공을 늘어놓고 다퉜다. 여기서 네오프톨레모스는 아버지 아킬레우스의 공로를 내게 물려준다고 했으니 자신이 안드로마케를 가지겠다고 했다. 안드로마케는 전령으로부터 이 말을 듣고는 통곡했다. 결국 안드로마케는 남편 [[헥토르]]를 죽인 [[아킬레우스]]의 아들이자, 본인 역시 아들 [[아스티아낙스]]를 죽인 원수 [[네오프톨레모스]]의 첩이자 성[[노리개]]가 되어 끌려가 그와 억지로 몸을 섞게 된다. 더 충격인 건 '''당시 네오프톨레모스는 단 10세에 불과했다.'''[* 네오프톨레모스의 어머니는 아킬레우스가 트로이 전쟁에 참가하지 않으려고 숨어있을 때 그에게 강간당해(혹은 눈 맞았거나) 네오프톨레모스를 임신했고, 트로이 전쟁이 시작하고 10년 후 그가 참전한다. 정확하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나이를 많이 올려잡을 순 없고, 대충 10세 언저리인 것은 맞을 것이고, 위대했던 전사의 아들이니 아주 좋은 유전자를 타고 났을 것이며, 처형도 가능했고 트로이 전쟁이 끝나고 얼마 되지 않은 《[[노스토이]]》때 안드로마케가 둘 사이의 첫 아이인 [[몰로소스]]를 임신했던 것으로 볼 때 좀 육체적으로 조숙했을 거라는 가정은 할 수 있다. 2차 성징이 오고, 전립선을 비롯한 생식기가 발달되어야 사정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실제 후기 [[청동기 시대]] 동지중해 지방의 전쟁 관습 중에는 정복당한 지역의 왕이나 귀족들을 어린 소년의 손으로 죽임으로써 적에게 최대한의 모욕을 안기는 풍습이 있었다. 따라서 트로이가 함락된 뒤 트로이의 왕과 귀족들을 죽일 때, 그들에 대한 모욕과 아킬레우스의 복수의 의미로 아킬레우스의 어린 아들에게 처형을 맡긴 것 자체는 당시의 관습이었다.] >'''"사랑하는 헥토르, 당신은 내게 더 바랄 것 없는 남편이었어요. 지혜도, 가문도, 부도, 용기도 뛰어났어요. 당신은 내 아버지 집에서 나를 숫처녀로 받아 처녀인 나와 맨 처음으로 결혼했어요. 그런데 지금 당신은 죽고, 나는 전쟁 포로가 되어 헬라스로 배에 실려가 예속의 멍에를 지게 되는군요. 그러니 당신이 울고 계시는 폴뤽세네의 죽음도 내 불행에 비하면 작다고 생각되지 않으세요? 제게는 모든 사람들의 마지막 피난처인 희망조차 없으며, 저는 또 제가 얼마만큼은 괜찮게 지내게 되리라고 저를 기만하지도 않아요." ''' >---- >- [[에우리피데스]]의 비극 《트로이의 여인들》 : 673~684 안드로마케가 어린 [[네오프톨레모스]]와의 사이에서 몰로소스라는 아들을 낳았다는 것은 어느 전승에서나 똑같지만, 이후에 대해서는 네오프톨레모스가 에페이로스를 건국했는지, 프티아로 귀환했는지와 안드로마케를 단순히 첩으로 여겼는지, 진심으로 사랑했는지에 따라 갈린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