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안면도 (문단 편집) === 1990년 안면도 사태 === 원자력 발전소 가동 과정에서 생성되는 방사성 폐기물을 보관하는 임시저장시설이 포화상태에 임박하면서, 정부는 방사성 폐기물의 안전한 보관과 처리를 위하여 1986년부터 방사성 폐기물 처리장 추진계획을 수립하고 대체부지를 물색하였다. 그 결과 안면도에 방사성 폐기물 처리장을 짓기로 결정하고, [[1990년]] [[11월 3일]] 과학기술처는 태안군 안면도 일대에 방사성 폐기물 처리장을 신축하는 계획을 발표하였다. 그러자 안면도 지역 주민들의 엄청난 반발이 뒤따랐다. 결국 [[11월 8일]], 1만 5천여 명의 주민들과 환경단체 운동가들이 경찰서에 불을 지르고 경찰관을 연금하는 등의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안면도 내 이장단들은 일제히 사퇴를 하였으며, 중고등학생들은 등교를 거부하고 자체 집회를 여는 등 반발시위에 동참했다. 이 시위로 주민 7명이 구속되었다. 결국 정부는 주민들의 반대에 못이겨 안면도 방사성 폐기물 처리장 건설 계획을 백지화한 뒤, 방폐장 후보지 선정을 지역 주민과의 협의 하에 민주적이고 공개적으로 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방폐장이 대표적인 혐오시설이다보니 이와같은 [[님비현상]]은 계속되어 1995년 굴업도 사태, 2003년 [[부안사태]] 등 계속해서 위치 선정에 난항을 겪었다. 이로써 [[2005년]] 방폐장은 [[경상북도]] [[경주시]]가 유치에 성공했고, 현재 [[월성 원자력 환경관리센터]]가 들어섰다. 경주시는 방폐장 유치를 조건으로 [[한국수력원자력]] 본사 이전 등 1조원 규모의 경제적 지원을 받아 인구증가와 지역발전의 원동력이 되었다. 이 사건은 [[부안사태]]와 더불어 충분한 행정PR 없이 일방적인 행정을 추진하면 어떤 부작용이 초래될 수 있는지에 대한 대표적인 사례로 남아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