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안무(독립운동가) (문단 편집) === 최후 === 1924년 9월 6일 오후 3시, 30여 명의 병사들과 함께 유격전과 군자금 모집에 힘을 쏟던 안무는 연길현 모아산 북쪽 산기슭에서 일본 경찰의 급습을 받고 총격전을 벌이다가 총상을 입고 체포되었다. 그는 중상을 입고 용정의 자혜병원에 입원되었으나 일본에 의해 치료를 받을 수 없다며 끝까지 치료받기를 거부하다가 다음날 9월 7일에 사망했다. 향년 41세. 안무의 유해는 용정 일본영사관 지하실에 6일간 보관되었다가 용정 시내 영국덕이에 묻혔다고 하는데 이는 한인들의 유혈폭동을 우려한 일제 경찰의 조치였다. 안무 장군의 순국소식에 독립운동가뿐만 아니라 간도의 한인 모두가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만주 항일투쟁을 연구한 고구려연구재단은 “안무가 김좌진, 홍범도와 달리 부각되지 못한 것은 청산리 봉오동 전투에서 2인자였기 때문”이라면서 “그러나 1920년대 간도 지역에서 가장 오랫동안 독립군을 이끌고 일관성있게 무장투쟁을 벌인 항일운동가”라고 평가했다. 안무 장군에게는 세 아들과 딸이 있었으며, 2009년 대한민국 법무부는 중국에 살던 안무 장군의 후손을 대한민국에 영구 귀화시켰으며, 둘째 아들의 딸은 서울에 살고 있다고 전해지며 남편은 장면 총리 내각을 역임했다고 한다. 안무 장군의 후손 유족들은 현재 서울 등지에 살고 있다고 한다. 대한민국 정부는 안무 장군의 이러한 공적을 인정하여 1980년안무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1994년 9월에는 국가보훈처의 이달의 독립운동가에 선정되었다. 또한 2020년 청산리 봉오동 전투 100주년을 기념하여 함께 싸운 홍범도함 김좌진함의 해군함정 이름에 이어서, 널리 알려지지 않은 숨은 영웅을 재조명하는 의미를 부여하여 2020년 11월 진수된 [[도산안창호급 잠수함]]의 2번함을 '안무'함으로 명명하였다.[* 그러나 자주국방네트워크 신인균 대표가 자신의 방송에서 안무는 고려공산당의 간부였고 그 고려공산당이 독립보다는 적화를 우선하여 오히려 독립군을 위축시켰음을 들어 함명으로 부적합함을 제기하는 등 일각의 부정적 의견(신인균 본인은 검증되지 않은 내용에 대한 방송으로 업로드 네시간 만에 스스로 삭제한 바 있다.)으로 논란이 일기도 하였다.[[https://www.youtube.com/watch?v=Tx0QLHe58PI|#]]] [[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분류:순흥 안씨]][[분류:종성군 출신 인물]][[분류:1883년 출생]][[분류:1924년 사망]][[분류:건국훈장 독립장]]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