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안시성(영화) (문단 편집) === [[주필산 전투]] === * 전투 전개 과정을 간략히 축약했다. [[당태종]]은 [[아사나사이]]가 이끄는 돌궐 기병 1천 명을 이용해 [[고연수]]·고혜진을 유인했고, 사신을 보내 "연개소문을 문책하려고 할 뿐, 고구려를 공격할 뜻은 없다"는 거짓 의사를 전해 고연수를 방심시켰다. 이어 [[이세적]]·[[장손무기]]에게 각각 병력을 각각 나눠줘서 분산시킨 뒤, 자신도 기병을 거느린 채 [[고연수]]·고혜진을 재차 방심시켰다. 그러자 [[고연수]]·고혜진은 [[당태종]]을 향해 [[닥돌]]했고, 그 사이에 [[이세적]]·[[장손무기]]가 공격하는 등 포위·섬멸 작전에 고연수가 무너진 것이다.영화에서는 [[아사나사이]]의 돌궐 기병이 후방에서 고구려군을 기습한 순간, [[당태종]]이 총공격을 명령해 고구려군이 무너진 것으로 축약해서 묘사했다. * 영화에서는 밤낮으로 며칠을 진군하여 안시성에 도착하는 것으로 나오지만 주필산 전투는 당나라군이 안시성을 포위한 상태에서 안시성 8리 밖에서 일어난 전투이다. 당시 고구려군 대열만 40여 리에 뻗쳤으니 안시성 안에서도 주필산 전투의 전황이나 함성소리는 훤히 보이고 들렸을 것이다. * [[주필산 전투]]에서 [[고구려/군사|고구려군]] 15만 중에 14만 이상 손실을 입은 것으로 나오지만 실제 역사서에는 단순히 많다고 언급되는 전사자[* 혹은 신당서의 2만이 죽었다는 기록.], 그리고 잔여부대 가운데 압송된 6500명, 석방포로 3만 명 정도가 기록되어있다. 고연수가 항복한 6월 23일부터 8월 10일까지 당군은 안시성 공략에 착수하지 못하는데 이외의 고구려의 10만이 잔여병력 내지는 별개의 본대로서 전쟁의 변수가 되었을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실제로도 고연수가 항복한 645년 6월 23일의 1차 전투 이후 고구려군과 당군 사이의 추가적인 대규모 전투 정황이 파악된다. 자세한건 [[주필산 전투|해당 문서 참조]].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