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안시성(영화) (문단 편집) === 연개소문과 안시성주의 불화설? === '버림받은 자들의 성'이라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 [[양만춘]]과 [[연개소문]] 사이의 갈등 가능성을 극적으로 과장하여 이야기를 전개한다. 현전하는 고구려 기록이 당의 공격을 막아낸 명장인 '''안시성주의 이름도 모를 정도로''' 너무나도 미비해서 하나의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감독의 상상력과 여러가지 가설을 덧붙일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실제 역사에서 연개소문과 안시성 사이의 갈등은 그 자체부터가 '카더라'로 진위 확인이 되지는 않는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안시성이 방기되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 지리적으로 보면 안시성은 방기되기는커녕 매우 중요한 방어 요충지로 여당전쟁 시대를 관통하며 기록이 이름을 드러낸다. 당장 당나라와의 전쟁을 다루고 연구한 서적들에서 안시성 전투가 차지하는 중요성과 평가만 봐도 연개소문이 매국노가 아닌 이상 성립할 수 없는 망상일 뿐이다. 기록에 남아 있는 역사라곤 [[안시성 전투]] 당시, 당 태종이 '내가 소문을 듣기로 안시성은 험하고 군사가 날래며, 그 성주는 재능과 용기가 있어서 막리지의 난(연개소문의 쿠데타) 때에도 성을 지켜 굴복하지 않았고, 막리지가 공격하였으나 함락시킬 수 없어서 그에게 주었다고 한다.'라고 발언[* [[http://www.culturecontent.com/content/contentView.do?search_div=CP_THE&search_div_id=CP_THE009&cp_code=cp0432&index_id=cp04320063&content_id=cp043200630001&search_left_menu=6|신당서 고려전]]]한 것이 전부이다. 그것도 발언을 잘 읽어보면 ‘연개소문과 사이가 나쁘니 어찌해볼 수 있겠네?’라는 일부 묘사와는 영 딴판으로 ‘저렇게 튼튼한 성은 건드리지 말자’라는 것이 발화의 의도이고 실상에 더 가깝다. 사실관계만 따지자면 당 태종이 들은 소문이 진실인지도 불분명하고, 사실이라고 해도 이것이 연개소문의 갑작스러운 반란으로 인한 단순 충돌인지 아니면 처음부터 안시성주가 연개소문의 반대파였는지는 알 수 없다. 기록에 언급된 저 한마디를 제외하면, 연개소문이 정권을 장악한 후 안시성주와 안시성에 대해 어떤 조치를 취하거나 갈등을 벌였다는 기록은 없다.[* 이 풍문을 날조, 과장하여 '연개소문 정권 때 지방 군벌들이 사분오열 난립하고 일부는 당나라에 줄줄이 항복하기까지 했으며 여당전쟁에 있어 연개소문의 공은 전무하다.'는 등 고구려 말기상에 관한 왜곡된 인식이 비주류 역덕후들 사이에 적지 않다.] 양만춘과 연개소문 사이의 이러한 갈등 가능성을 적극적으로 해석하여 주필산 전투 전개 및 여당전쟁 수행에도 차질을 유발했다는 가설을 낸 경우도 있긴 있었다.[*노태돈,2009,93-94 노태돈, 『삼국통일전쟁사』, 서울대 출판부, 2009, 93~94쪽][*서영교,2013 서영교, 고대 동아시아 세계대전(무장 중립국 안시성), 국방일보, 2013] 하지만 안시성이 버림받거나 마치 독립적인 군벌인양 전쟁을 수행했다고 보는 것은 극단적인 축에 속하며 더군다나 이미 견해가 수정된 설이다. 실제로도 고구려-당 전쟁 기간 동안 안시성은 중앙의 통제를 받는 기록이 남아있으며 안시성 외곽에서 벌어진 전투는 다른 요인으로도 충분히 설명이 가능하기 때문이다.[*서영교,2015 서영교, 주필산(駐蹕山) 전투와 안시성(安市城), 2015] 그러나 불화 그 자체가 존재했을 가능성은 있다. 연개소문이 시해한 영류왕에 대한 평가가 지금까지도 엇갈리고 있는 데다 한 나라의 왕이 대신의 손에 죽은 사건이 발생한 만큼, 영류왕이나 당에 대한 입장이 어떠하든 연개소문의 움직임을 부정적으로 본 이들도 있었을 것이다. 일단 현재까지 있는 기록에서 분명한 것은 '''안시성의 연개소문 반대는 다른 성에 비해 분명하게 더 강했고, 연개소문이 직접 군대를 끌고 안시성을 공격했으며, 안시성은 연개소문에 맞서 싸워 성을 지켰다'''는 점이다. 다만, 보장왕 등극 직후 당 태종의 말처럼 갈등이 있었으나 당이라는 공동의 적을 의식했든 어떠한 이유에서든 타협이나 화해 내지는 포섭이 이뤄졌을 가능성이 높다. 연개소문이 정변을 일으킨 때인 보장왕이 즉위한 해에서 수년이 지난 뒤에야 고구려-당 전쟁이 벌어졌기에 시간차가 있으므로 이 역시 가능한 일이다. 즉, 고구려-당 전쟁 당시 상황으로 추정하면, 전쟁 당시 둘의 관계가 영화에서의 설정처럼 별개의 군벌처럼 움직였다 보긴 힘들다. 그러나 그 이전 상황에 대해 제대로 밝혀진 게 없기에 불화 그 자체는 존재했을 가능성도 있지만 이는 [[양만춘]]의 인물됨을 강조하는 언급이지 그 당시의 고구려 내부의 대립과 분열을 추정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당장 이세민 최측근 인사들 상당수는 이세민이 즉위하기 이전에는 서로 죽고 죽이던 적이었다. 사실 상당수 정도도 아니고 당시 당나라군 진영에서 순혈이라 할만한 인사는 [[장손무기]], [[유홍기(당나라)|유홍기]] 등 소수에 불과하니 영화 설정이나 역덕들 사이에 일부 유포된 논리를 공평하게 적용하자면 당나라 진영은 개판도 그런 개판이 없을 것이다. 요컨대 안시성주와 연개소문의 대립이나 불화 자체가 사실이었을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영화에 묘사된 정도까지는 아니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이야기.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