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안시성(영화) (문단 편집) === 갑옷 === || [[파일:안시성(영화)_양만춘_티저.jpg|width=100%]] || || {{{#e2d7d2 '''▲ 스틸컷'''}}} || ||<-3> [[파일:attachment/근초고왕(드라마)/b0120821_4e97ba7dece8f.jpg|width=570]] || ||<|2> 올바르게 고증한 드라마 [[근초고왕(드라마)|근초고왕]]의 [[고국원왕]][* 고국원왕의 종장판 투구가 만곡형이 아니라는 점이나 (드라마의 다른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목가리개는 탈착형이다. 해당 드라마에서 목가리개를 착용한 모습이 나오기도 한다.), 흉갑, 대퇴, 하퇴갑의 갑찰이 외중식으로 교차하지 않고 타일처럼 가지런히 붙어있는 점, 상박갑의 갑찰이 내중식인 점 등 자잘한 오류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옆 사진의 주몽 갑옷에 비하면 더없이 훌륭한 고증이다.'''] || 통구 12호분 벽화 ||<|2> 드라마 [[주몽(드라마)|주몽]]의 주몽(반면교사) || || 쌍영총 벽화 || [[고구려]]의 구체적인 역사 기록은 비교적 미비한 편이나, 복식 자료 같은 경우 고분 벽화 등에 나름대로 남아있는 편이다. [[무용총]], 안악 3호분 고구려군 행렬도 등이 대표 사례. 비록 안악 3호분(4세기)과 [[안시성 전투]](7세기)는 시기 차이가 있지만 이후 발견되는 유물적인 증거는 고구려군이 대체로 [[찰갑]] 형태의 갑옷을 입었음을 알려준다. 포스터에서 등장하는 저런 [[판갑]] 계열의 갑옷은 [[가야]] 시기에나 잠깐 입었고, [[광개토대왕]]의 [[임나]] 정벌(서기 [[400년]]) 이후로는 급속도로 사라졌기 때문에 고증 오류라는 지적이 있다. 또한 당 태종 이세민의 갑옷 역시 하반신엔 일본 갑옷까지 뒤섞여있다. 그보다 후대 인물이지만 상급 지휘관이였던 고선지를 비교적 고증대로 상상한 아래의 그림을 보면 영화상 [[태종(당)|이세민]]의 갑옷과는 차이가 있다. 심지어 여기에 여기에 이세민 친위부대에게 정체불명의 얼굴 보호구를 덮어놓았다. || [[파일:/image/028/2005/01/17/00900000012005011002156644.jpg]] || 다만, 영화의 지향점이 [[남한산성(영화)|남한산성]] 같은 치밀한 고증 위주의 정통 사극이 아닌, '한국의 신화'를 그려내는 쪽이란 걸 감안해야 할 것이다. 즉, [[킹덤 오브 헤븐]]이 아닌 [[300(영화)|300]]에 더 가까운 영화다.[* [[300(영화)|300]] 역시 역사적 사건을 배경으로 하지만 원작 만화대로 판타지에 가까운 액션 영화 쪽으로 방향을 잡았고, 고증 문제에선 비교적 자유로울 수 있었다. 스파르타 병사들의 붉은 망토가 바로 고증을 희생하고 연출을 살린 대표적인 예시다. 그런데 적어도 300은 그래픽노블 원작의 느낌을 완전히 영화로 가져와 호평을 받았다. 안시성은 무슨 만화를 원작으로 한 것도 아닌데 300 같은 판타지 영화를 만들었다.] 이에 대해 김광식 감독은 인터뷰로 설명한 바 있다. > [[방산비리|"일반적으로 '고구려'의 무사라 하면 철갑기병대인 '개마무사'를 떠올린다. 하지만 안시성에는 개마무사가 없었다. 연개소문의 중앙정부 군대가 운영했던 개마무사였지만 전체의 10% 정도였고 국경을 지키는 변방의 성에는 개마무사가 상시 필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들은 활을 쏘고 말을 타는 병종으로 구성돼 있었다. 또 당시 고구려는 중앙집권국가가 아니었고 평양성과 안시성은 멀리 떨어져 있었다. 중앙정부에서 같은 모양의 갑옷을 제작해 변방까지 일괄 지급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 알아서 만들어 입는 시스템이었다. 따라서 같은 국가라도 각 성은 각자의 특성을 유지했을 거로 보인다. 그래서 안시성에 개성을 주려고 했다. 전투 복장도 자유롭고, 성주와 병사들과 성민들의 관계도 소탈하게 표현하고 싶었다."]] >----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22&aid=0003306165|'안시성' 갑옷은 왜 고구려 고분 벽화와 다를까]] 하지만 인터뷰 내용 자체도 비판을 피할 수가 없다. 기본적으로 고구려는 이미 5세기 무렵에 중앙집권 체제를 수립했다. 단순히 양원왕 시기 이후 귀족연립 체제가 형성되었다. 이후 연개소문이 영류왕을 살해하면서 연개소문 1인 체제가 수립되었고 각 지방에 영주가 있었다는 부분을 가지고 중앙집권 체제가 아니었다고 말하는 것은 이 시기에 고구려란 국가가 붕괴되었다는 말도 안 되는 소리인 셈이다. 오히려 역알못 소리나 안 들으면 다행인 상황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국경지대를 방어하는 지역에서 개별적인 장비를 사용하고 통일된 장비나 병기를 사용하지 않는 것은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포인트인 셈이다. 설령 장비나 병기의 종류를 어느 정도 다양하게 묘사하더라도, 그 정도를 적절히 조절해서 고구려 군대가 고구려 수뇌부에 소속된 관군이지 고구려 내 군벌의 사병이 아니었다는 사실만큼은 명확하게 느껴지도록 하는 게 옳다. 오히려 주인공들의 갑옷과 달리 일반 병졸들과 개마무사들의 갑옷은 비교적 정확하게 만들어졌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비교적이지, 개마무사의 갑옷에도 오류는 있다. 실제 고구려 기마병들은 아래쪽에서 찌르는 공격으로부터 효과적으로 방어하기 위해 외중식[* 갑찰 위쪽이 둥글고 위쪽으로 틈이 트여있는 방식] 갑옷을 입었는데 영화상에서는 내중식[* 아래쪽이 트인 방식. 외중식의 반대] 갑옷을 입고 있다. 또한 저 인터뷰 내용이 제작진의 의도라고 하지만 국적불명의 판타지 갑옷을 등장인물에게 입힌 점은 욕을 먹고 있다. 아무리 고구려의 신화적인 내용을 다룬다곤 하지만 갑옷 고증이 똥망인건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또한 거의 완벽에 가까웠던 고증을 보여준 [[남한산성(영화)|남한산성]]과 비교당하여 더욱 비참해지는 수준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