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안준호 (문단 편집) ==== [[서울 삼성 썬더스]] 감독 시절 ==== 그런데 2004년에 결국 [[서울 삼성 썬더스|서울 삼성]] 감독으로 다시 복귀했다. 이 때부터 흔히 아는 개그맨 이미지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작전타임]]에서 좋게 말하면 민주적인, 나쁘게 말하면 선수들이 개기는 모습이 그대로 드러났었다. 확실히 작전 타임에서 영 말이 잘 안 나오는 것을 알 수 있다. 긴 말 필요 없이 [[https://www.youtube.com/watch?v=zZCrS6v8a3M&t=285s|이 영상의 3분 33초부터]] 보자. > 안준호: 아 지금 가면 안돼! > [[이상민(농구)|이상민]]: 아 되지 왜 안돼! > 안준호: 돼? 돼? 돼? 그래? > 이상민: 아 된다니까!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혹자는 [[고려대학교]] 농구단의 [[박한]] 전 감독과 흡사하다고 한다.[* 만약 [[김응용]], [[김성근]]이나 [[허재]], [[전창진]], [[유재학]], [[이정철]] 같은 감독에게 저랬다면 어떻게 될지는 상상해보라(...).] 그 외에도 [[사자성어]]로 시즌 중 본인 팀 표현하기, 2008년 [[원주 DB 프로미|원주 동부 프로미]]와의 [[2007-08 KBL 챔피언결정전|챔프전]]에서 치악산 호랑이 잡으러 호랑이 굴에 간다 드립 등등... 이 때문에 [[별명]]은 안어벙, 순식간에 개그맨이 되었다. 그래서 2006년 2월 5일 [[전주 KCC]]와의 경기에서 양복을 벗어던지고 항의하다 테크니컬 파울로 퇴장당했을 때, 또한 2007년 12월 20일 [[인천 전자랜드]]와의 원정 경기에서 안준호 감독이 심판 판정에 분노해서[* 이 당시 경기 내내 파울콜에 불만이 많았던 탓에 항의하면서 "시종일관 경기를 이렇게 하는 거 아냐. 선수들을 왜이렇게 억울하게 만드냐고. 훈련한 걸 선수들이 경기에서 써먹어야 할 거 아냐!"라며 강하게 항의했다.] 몰수패를 각오하고 선수단을 벤치로 모두 철수시키자 '''오죽하면 저 사람 좋은 안준호가 저러겠냐'''라며 [[심판]]이 뭔가 잘못했을 거란 반응이었을 정도(...).[* 심지어 이 당시 엑스포츠 해설위원이었던 최인선 해설 또한 '''"웬만해서는 저렇게 흥분하지 않는 감독인데..."'''라고 말했을 정도다.] '''하지만 이걸로 안준호 감독의 능력을 과소평가하는 것은 절대 금물이다'''. ~~[[김상준(농구)|바로 후임이었던 어느 돌감독]]이 망쳐 놓았었던 후유증이 워낙 커서 그렇지...~~ 무엇보다 안준호 재임기간 동안 삼성은 '''플레이오프에 꾸준히 진출했고''', 우승 1회, 준우승 2회를 기록하며 모기업 공장이 있는 [[수원시|수원]]이 아닌 수도 [[서울특별시|서울]]을 대표하는 농구팀으로 당당하게 자리잡았다. 거기에 그의 재임기간 삼성이 전성기를 맞는 동안 그를 매몰차게 내쳤었던 [[서울 SK 나이츠|옆집 팀]]은 연고이전 첫 시즌 준우승, 07-08시즌 5위를 제외하면 내내 처참한 성적을 기록했었다. 무엇보다 안준호 감독의 능력은 바로 판 짜기에 능하다는 것. 대표적으로 [[2005-06 KBL 챔피언결정전|2005-06 시즌 챔피언결정전]]에서 [[서장훈]]과 [[올루미데 오예데지]]의 더블 포스트를 상대할 준비를 하던 모비스에게 전혀 예상 외의 [[강혁(농구)|강혁]] - 네이트 존슨의 2 대 2 플레이를 주력으로 삼아 허를 찔러버린 것이 대표적인 사례. 이 시즌에 삼성은 4강 플레이오프부터 챔피언결정전까지 7전 전승으로 모두 이기며 KBL 역사상 최초의 전승 우승의 위업을 달성한다. 선수들의 기량 파악에 능하고, 있으면 있는대로, 없으면 없는대로 시즌을 잘 꾸려간다는 장점이 있다. [[포워드(농구)|포워드]]진이 부족할 때는 아예 3[[가드(농구)|가드]] 시스템을 구사해서 상대를 누르기도 했는데, KBL에서 본격적으로 3가드 2센터 시스템을 쓴 것은 안준호 감독이 처음. 그 외에도 선수들이 개겨도 대충 받아주면서 팀 내의 분란의 요소를 잘 막아낸 것도 높이 살 부분이다. 작전 타임의 경우, 안준호 감독 자신은 이미 정해진 패턴을 이름 부르면서 확인만 하는 거라고 했다. 다만, 말이 영 개그화되는 것이 문제일 뿐. 그리고 정해진 패턴과 시즌 운용에 있어서는 탁월한 감독이다. 다만, 순간적인 전략과 [[임기응변]]에 있어서 다소 아쉬운 점이 드러났을 뿐이지, 선수들에 맞춰서 판을 짜오는 것은 KBL에서 손꼽히는 감독이다. 무엇보다 서울 삼성은 안준호 감독이 있을 때, 7년 연속 PO 진출 및 세 번의 챔프전 진출, 1번의 우승을 차지했다. 그리고 2010-11 시즌 챔프전 진출에 실패했다고 그와의 재계약을 포기하고 대신 임명한 ~~도저히 감독으로 인정할래야 인정할 수가 없는~~ [[김상준(농구)|김상준]] 감독 체제에서 삼성은 경기력이 동네 농구 수준으로 떨어지며 14연패의 수모와 함께 2011-12 시즌 중 2011년엔 단 한 번도 홈경기 [[승리]]를 못 했다. 7연속 [[포스트시즌]]에 개근하던 강호가 한순간에 [[꼴찌]]로 시즌을 마감한 것은 [[덤]]. 결국 시즌이 끝나자마자 김상준 감독은 자진사퇴하고 [[김동광]] 감독이 재등용되었지만, 김동광 감독도 팀을 추슬리기에는 더딘 편이었고, 결국 그도 2013-14 시즌 중 자진사퇴한다. 그러다 [[이상민(농구)|이상민]]을 감독으로 바꾼 이후 15-16 시즌부터 확실히 암흑기를 탈출할 수 있었다. 그 부흥기도 얼마 가지 못했다는 게 문제지만(...) 2016-17 시즌의 준우승을 끝으로 다시 하위권을 전전하고 있으며, [[설상가상]]으로 모기업도 [[제일기획]]으로 넘어가서 투자가 점차 줄어들고 있다. 한편 안준호 감독 재임기간 동안 암흑기를 걷던 [[서울 SK 나이츠]]는 2012년부터 '''[[2017-18 KBL 챔피언결정전|2017-18시즌 플레이오프 우승]]''', 2012-13시즌 정규시즌 우승, 2019-20시즌 정규시즌 1위를 거두며 ~~뭔가 퐁당퐁당스럽지만~~ 암흑기를 벗어났다. || '''경기''' || '''상대 구단''' || '''결과''' || || 2005-2006 KCC 프로농구 [[2005-06 KBL 챔피언결정전|챔프전]] || [[울산 현대모비스 피버스|모비스]] || 4:0 스윕승[* 역대 최초 챔피언결정전 스윕승이다.] || || 2008-2009 동부프로미 프로농구 4강전 || [[울산 현대모비스 피버스|모비스]] || 3:1 승[* 역대 최초 정규리그 1위팀이 4강에서 탈락했다.] || 게다가 안준호 감독 재임 기간 동안 삼성이 모비스에게 강했다는 것도 [[재평가]]되었다. 7시즌 동안 플레이오프에서 두 번 만나서 다 이겼으며, 정규시즌에도 앞서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후에 안준호 감독이 물러난 뒤 후임 감독들이 [[울산 현대모비스 피버스|모비스]]에게 철저히 승수 자판기로 전락당하면서 22연패까지 당했음에도 삼성과 모비스와의 상대전적이 비등했다.]. 유재학 감독의 모비스를 상대로 정규시즌 26승 16패를 기록했으며, 플레이오프에서는 7승 1패로 총 33승 17패를 기록했다. 상기했다시피 플레이오프에서는 그냥 이긴 게 아니라, 챔프전 최초 4전 전승과 4강 플레이오프에서 최초로 1위팀을 꺾고 챔피언결정전 진출 이게 바로 안준호 시절의 삼성이 유재학의 모비스를 상대로 세운 기록이다. 그가 나가고 난 뒤 4시즌 동안 삼성의 모비스 상대전적은 2승 22패인데다 그 2승도 2011-12 시즌의 [[김상준(농구)|김상준]] 체제 아래에서 이뤄낸 것이다. ~~김상준: [[이상민(농구)|상민아]], 내 입장이 되어보니까 어떠냐? 답답해 죽겠지?~~ 이 또한 이상민이 15-16 시즌에 모비스전 연패를 간신히 끊어냈다[* 그리고 이상민은 그 다음 시즌 모비스와 상대전적 4승 2패로 6년만에 모비스 상대 우세를 기록했다. 마지막 경기에서 111:70(전반 스코어 64:20으로 KBL 한 경기 전반 최다 점수차 승리)으로 시즌 최다 점수차 승리를 기록한 건 덤.]. 다만, 이 시기에 팀이 하도 잘 나간 덕에 잘 부각되지는 않았지만, 안준호도 비판받는 부분이 하나 있는데, 바로 '''신인 육성'''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전성기에 돌입한 멤버들로 우승을 했지만, 외국인 선수나 [[이상민(농구)|이상민]], [[이승준(농구선수)|이승준]]을 제외하면 이렇다 할 보강 없이 멤버를 그대로 끌고 가면서 성적은 점점 내려갔고, 사퇴 이후 팀의 고령화 문제가 터지며 암흑기로 가는 원인을 만들었다. 성적 때문에 불리한 드래프트 픽을 받아 어쩔 수 없다는 평가도 있지만, 비슷하게 픽 운이 없었던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전자랜드]]가 [[정병국(농구)|정병국]]을, [[울산 현대모비스 피버스|모비스]]가 [[함지훈]]을, [[부산 kt 소닉붐|kt]]가 [[박상오]] 등을 발굴한 걸 보면 설득력이 좀... 결정적으로 안준호 시기에 지명한 선수들 중 그가 떠난 이후에도 남아 있던 선수가 [[이관희]], [[이시준]] 뿐임을 감안하면 확실히 육성 쪽에선 별로라는 걸 보여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